미국의 인디 영화 스튜디오, 안나푸르나 픽처스의 장래가 어둡다.

여러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안나프루나는 2017년 가을 확보한 자금 3억 5천만 달러 대부분을 소진했으며, 이미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거나 곧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자들은 이번 주까지 채무 탕감 해결책을 요구했고, 일부 채권자가 파산 선고를 강력히 추진했다고 전해진다.

인디 영화계의 ‘구세주’가 된 상속인 메건 엘리슨

2011년 설립한 안나푸르나는 8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할리우드의 대표 인디 스튜디오로 자리매김했다. 설립자 메건 엘리슨은 전 세계 부자 순위 10위에 들어가는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의 딸로, 가족의 막강한 재력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 쏟아부었다. 메건은 블록버스터가 영화 시장을 잠식한 상황에서 나타난 ‘취향을 만드는(taste-maker)’ 투자자였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나 캐서린 비글로우의 [제로 다크 서티]는 안나푸르나의 투자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메건의 안목과 과감한 투자 덕분에 안나푸르나는 아카데미 시상식 단골 제작사가 됐다. [아메리칸 허슬]과 [그녀]로 같은 해 작품상 후보 지명을 두 번 받은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총 52회 후보 지명을 받았다. 작년에도 [바이스]와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이 분장상과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독립 영화 시장의 ‘큰손’이 된 안나푸르나는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 B와 영화 제작 계약을, 훌루와 TV 시리즈 제작 계약을 맺었다. 최근 상업 영화로 영역을 넓혀 MGM과 [본드 25(가제)] 미국 내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영화 디트로이트 (2017) 바이스 (2018)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2018) 디스트로이어 (2018) 북스마트 (2019)
순제작비 (달러) 3,400만~4,000만 6,000만 1,200만 900만 600만
박스오피스 성적 (달러) 2,410만 7610만 2,060만 550만 2,380만
추정 손실 1,500만~2,000만 800만~1,000만 700만

2017~2019년 안나푸르나 픽쳐스 주요 영화 제작비 및 박스오피스 성적

실적 부진과 재정 위기 도래

안나푸르나의 위기는 회사의 몸집을 키우면서 시작됐다.

안나푸르나는 현재 영화 제작과 배급, TV 시리즈 제작, 게임과 음악 산업까지 다양한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늘어나고 규모가 커진 만큼 투자는 더 필요했다. 반면 수익은 그만큼 커지지 못했다. 특히 지난 2년간 제작, 배급한 영화의 성적이 부진했다.

재작년 개봉한 [디트로이트]의 전 세계 박스오피스 성적은 2,410만 달러로 순수제작비 약 4000만 달러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바이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디스트로이어] 등 작년 공개한 영화도 7백만 ~ 2천만 달러 정도 손실을 냈다. 올해 개봉한 [북스마트]도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영화제에서 극찬받았지만, 박스오피스 성적은 저조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배급 전략이 흥행 참패의 주요 요인이라 지적했다. 제한 개봉으로 입소문을 일으키며 상영관을 확보하는 대신, 한 번에 전국 개봉을 추진한 게 실패했다.

기업의 위기가 외부에 드러난 게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월, 안나푸르나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모두 재평가했고, 촬영을 앞둔 프로젝트 2개를 취소했다. 제니퍼 로렌스 주연 [허슬러스]는 비밀리 협상을 벌여 STX필름으로 배급사를 옮겨갔다. 니콜 키드먼, 샤를리즈 테론, 마고 로비가 출연할 ‘로저 에일스’ 영화는 촬영 며칠 전 배급을 철회했다. 예산 3천 5백만 달러를 두고 공동 제작사 브론과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몇 주 후 라이온스게이트가 배급권을 가져갔다). 당시 메건은 위기설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며, 안나푸르나는 위기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10개월 만에 파산 신청 루머가 나온 것을 보면 래리가 직접 나서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미지: MGM

안나푸르나의 미래는?

안나푸르나가 파산하면 미국 인디 영화계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텐트폴 영화에 잠식된 미국 영화계에 성인 관객 취향에 맞춘 인디 영화를 스튜디오 수준의 예산으로 제작하는 몇 안 되는 배급사이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영화 시장에서 개성 강한 목소리를 내는 스튜디오가 없어지는 건 다양성 측면에서 뼈아픈 손실이 될 것이다.

메건 엘리슨은 파산 신청 보도가 나간 후 전 직원에게 “안정감과 안나푸르나의 특별한 문화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멈출 생각이 전혀 없다.”라며 회사를 계속 운영할 것이라 말했다. 엘리슨 가족 또한 여전히 회사를 지지하고 안나푸르나의 미래에 헌신할 것”이라 입장을 밝혔다. 당장은 메건과 래리 부녀 모두 파산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본드 25] 등 앞으로 제작, 배급할 영화의 박스오피스 성적이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