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4일,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29명이 숨지고 50명 이상이 다쳤다. 이 사건의 여파로 유니버설은 9월에 개봉하려던 [더 헌트]의 마케팅 캠페인을 취소했으며, 그다음 주말엔 영화의 배급 자체를 취소했다. 유니버설 내부에선 “지금은 이 영화를 개봉할 시기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대체 [더 헌트]는 어떤 영화이기에 개봉을 취소해야 했을까?

이미지: Blumhouse/Universal Pictures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스릴러 [더 헌트]는 크레이그 조벨 감독이 연출을 맡고, 베티 길핀과 힐러리 스웽크 등이 출연한다. 미국인 몇 명이 납치되어 유럽의 한 시골에 풀려나, 자신들이 ‘가장 위험한 게임’을 즐기려 돈을 낸 부자들의 사냥감이 된다. 영화 제목은 원래 공화당과 민주당 강세 지역을 의미하는 [레드 스테이트 대 블루 스테이트]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진보주의적 할리우드’를 ‘엄청난 증오에 찬 최고 수준의 인종차별주의자’라 비난하며 “곧 나올 영화는 혼란을 일으키고 불붙이기 위해 만든 것”이라 말했다. 트럼프는 영화의 제목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어느 모로 봐도 [더 헌트]를 의미했다. 정작 이게 어떤 영화인지는 잘 모른다. 9월 말 개봉이라 지금까지 나온 관련 정보는 짤막한 시놉시스, 출연진과 제작진 정보, 공식 예고편 정도다. 이 영화가 사회 분열을 일으킬 만큼 위험한 걸까?

‘더 헌트’, 영화의 정체가 궁금하다

The Hunt Trailer #1 (2019) | 출처: Blumhouse/Universal Pictures
 

첫째. 사냥당하는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인가?
예고편에서 사냥당하는 사람들은 와이오밍, 미시시피, 플로리다주에서 왔다고 말한다. “매년 엘리트 무리가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을 납치한다.”라는 대사도 있다. 이를 통해 사냥당하는 사람들은 공화당 강세 지역인 미국 남부나 중서부 출신의 평범한 시민임을 알 수 있다. 반면 예고편 초반엔 납치된 이들이 미국 국기 앞에서 총을 들고 있는 사진, 코뿔소를 사냥하고 기념 포즈를 취한 사진 등이 나온다. 사람들의 행동은 보수층, 나아가 우파 또는 네오나치와 관련 있어 보이고, 이들 중 일부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어 사냥당하는 이들을 트럼프 지지자와 연관할 수 있다. 하지만 예고편으로 모든 걸 판단하기는 어렵다.

둘째. 사냥하는 ‘글로벌주의자 엘리트’는 ‘진보주의자’인가?
[더 헌트]의 공식 시놉시스에는 사냥하는 이들을 ‘글로벌주의자 엘리트’라고 명시한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게임을 운영하는 사람(힐러리 스웽크)에게 거액의 돈을 쥐여주고 사람 사냥을 즐긴다. 주어진 정보로만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잔인한 게임을 즐길 만큼 엄청난 부자이며, “우리가 돈을 냈으니 이 나라는 우리의 것”이라고 말할 사람들이란 것이다. 이들이 트럼프의 말대로 진보주의적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바뀌기 전 제목으로 민주당과 공화당 간 갈등을 노골적으로 차용했음은 알 수 있지만, 유니버설이 이에 대해 우려한 만큼 제작 과정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셋째. [더 헌트]는 인종차별적 영화인가?
트럼프는 [더 헌트]를 인종차별적이라 비난했는데, 지금까지 나온 정보로는 인종차별적 성격이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예고편에 등장한 인물들은 사냥을 당하는 쪽이든 하는 쪽이든 모두 백인이기 때문이다. 다른 인종은 전혀 등장하지 않은 채 백인들 간 쫓고 쫓기는 모습만 나온다. 영화 설정 자체가 계급과 정치 갈등을 노골적으로 가져오고 있으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인종차별적 내용을 담은 영화는 아니다.

개봉하지 말아야 한다 vs 개봉해야 한다

이미지: Blumhouse/Universal Pictures

최소한 지금까지 나온 정보만 고려하면 [더 헌트]는 논쟁적 영화가 될 것 같다. 당장 개봉 취소 결정에 찬반도 엇갈린다. 찬성 측은 대중문화에서 대중이 특정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며, 어떤 것들은 영화로 만들어지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고 본다. 다른 이유는 지극히 정치적이다. 총기 규제를 외치는 강력한 목소리가 힘을 얻은 상황에서 자유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를 총으로 사냥하는 영화가 나온다면 트럼프와 보수파에 힘 싣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반대 의견은 ‘검열’을 우려한다. 엘파소와 데이턴의 사고 이전에도 7월 25일부터 7월 30일까지 미국 전역에서 5건의 사고가 있었다.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총기 사건 때문이라도, 언젠가 다뤄야 할 총기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영화를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 헌트]가 인종차별적이라는 트럼프의 주장도 반박한다. 예고편엔 백인만 나오기 때문에 인종차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겟아웃]과 [어스]를 만든 블룸하우스가 하루아침에 인종차별주의로 급선회했을 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개봉에 대해 의견이 어떻든 [더 헌트]는 당분간은 미국 극장에서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영영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건 아니다. 현지 언론은 유니버설과 블룸하우스가 영화 제작비 회수를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개봉할 것이라 본다. 지금부터 서두른다면 미국 내 영화제 몇 군데에서 공개 가능하며, 영화 전편을 미리 공개해 입소문을 타 개봉으로 이끌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 무엇보다 요란하게 개봉을 포기하면서 일반 관객의 관심 밖이었던 저예산 스릴러가 화제가 됐다. 이 정도면 개봉 취소라는 초강수가 고도의 마케팅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