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우주는 언제나 수수께끼로 가득한 공간이다. 미지에 대한 신비와 공포를 동시에 지닌 광활한 곳. 그렇기에 지난 60년 간 탐사선을 보내면서도 ‘우주’ 자체와 그곳에 있을지 모르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을 그린 이야기들이 탄생한 것은 아닌가 싶다.

넷플릭스 [어나더 라이프]도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다. 드라마는 지구에 떨어진 거대한 외계 물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보낸 것인지 알아내려는 인간의 이야기다. 우주 배경의 SF 장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롯이지만, [배틀스타 갤럭티카] 시리즈의 케이티 색호프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은 장르 팬들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어나더 라이프]가 볼만한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음… 솔직히 본인은 꽤 재미있게 봤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선뜻 추천하긴 어려울 것 같다.

시작하기에 앞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겠다. 조금 박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나더 라이프]가 로튼토마토에서 썩토, 그것도 6%라는 처참한 스코어를 받고 시청자에게도 썩 좋지 못한 평가(로튼 60%, IMDb 4.8)를 받은 데엔 이유가 있다. 이를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10편의 에피소드를 가볍게 즐기겠으나 반대의 경우 아마 첫 에피소드도 견디지 못하고 이탈할 것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우선 이야기와 설정에 참신함이 부족하다. [어나더 라이프]는 다른 작품에서 본듯한 장면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인터스텔라], 프리퀄을 포함한 [에이리언] 시리즈, [라이프], [서런 리치: 소멸의 땅] 외에도 정말 많은 작품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설상가상 이들이 잘 섞이지 않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저 뭉텅이로 가져와서 이어 붙인 기분이랄까?

그동안 정말 많은 우주 SF 장르물이 나온 만큼, 매력적이고 새로운 설정을 만들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라 해도 화자에 따라 몰입도 차이는 하늘과 땅 수준인데, 이러한 관점에서 [어나더 라이프]는 실패한 스토리텔러다. 과한 기시감의 장점을 굳이 꼽자면 장르 입문자에게는 의외로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정도? 깊이는 얕을지언정, 어쨌든 다른 작품의 매력적인 설정을 끌어왔으니 말이다.

캐릭터 설정과 갈등의 인과관계도 아쉽다. 다행히 첫 에피소드 정도에서만 드러나고 대부분 해소되기는 하나, 처음부터 이런 부분이 눈에 띄면 다음 에피소드를 시청할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사실이기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우주로 향한 살바레 호의 사령관 니코(케이티 색호프)와 부사령관 이언은 항로를 두고 의견이 충돌한다. 전자는 임무 기간이 몇 개월 늘어나는 대신 안전한 방법을, 후자는 실패할 확률이 11% 정도 되더라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선원은 이언의 의견에 동의하는데,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대립이다. 문제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니코가 ‘안전이 우선이라 임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라며 비난했다는 것. 아니, 뭐라고? 우주선이 폭발하기라도 하면 임무를 수행할 사람도 없어지는 상황 아닌가?

이미지: 넷플릭스

그래 백 번 양보한다고 치자. 본인들의 손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한시가 급하니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 반대하는 명확한 이유도 제시하지도 않은 채 니코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이언의 지시에 따른다. 이른바 쿠데타가 일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성공 확률 89%의 도박이 성공했을까? 아니, 성공은커녕 목숨을 잃을 처지에 놓이게 되니 니코를 찾아가고 결국 그녀의 도움으로 모두가 위기에서 벗어난다. 얼마나 민망했을까…

재미있는 점은 니코와 이언을 제외한 살바레 호의 선원들의 나이는 20대가 대부분이고 아무리 많아야 30대 초반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쉽게 선동 당하고 감정 컨트롤과 위기 대처 능력이 부족하며, 그리고 각 분야의 대표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프로 의식도 없어 보인다. 제작진이 생각하는 오늘날 2-30대는 저런 이미지라는 착각인가 싶어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

줄기차게 단점만 들췄는데 이제는 [어나더 라이프]의 장점을 살펴보자. 우선 첫 번째, 초반만 견디면 갈수록 이야기 전개에 속도와 재미가 붙기 시작한다. 지난달 리뷰했던 [아스달 연대기]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본 사람이 승자’인 셈이다. 시작부터 잘하면 안 된다는 업계 미신이라도 있는 건지 원.

이미지: 넷플릭스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는 않다. 우주선에 결함이 생기거나, 외계 바이러스 때문에 고생을 하는 등 우주 SF물에서 흔히 벌어지는 위기와 사건의 연속이다. 그러나 첫인상이 워낙 안 좋았던 탓도 있고, 시리즈 특유의 긴장감 덕에 ‘그래도 처음보단 훨씬 나아졌네’하면서 서서히 이야기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첫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평균 40분이라는 짧은 방영 시간도 속도감에 큰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꼽는 최고 에피소드는 4화 ‘과거의 늪’과 마지막화 ‘만남’이다. 니코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과거의 늪’은 니코의 불안하고 복잡한 심리를 깊이 있게 묘사하면서, 퍼즐을 푸는 듯한 긴장감과 재미를 안기는 데 성공한다. 외계인들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밝혀지는 ‘만남’도 반전의 묘미는 물론이고,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기까지 한다.

[어나더 라이프]를 빛낸 두 번째이자 가장 큰 장점은 니코라는 캐릭터다. 농담 삼아서 하는 말인데, 제작진이 여기에 온 힘을 쏟은 나머지 캐릭터들을 대충 만든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미지: 넷플릭스

니코를 보면 [에이리언] 시리즈의 엘렌 리플리가 떠오른다. 탁월한 리더십과 주체적인 성격, 희생 정신과 뛰어난 전투력, 그리고 온갖 역경을 거치면서 성장한다는 점까지 닮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두 캐릭터가 완전히 똑같은지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리플리를 모티브 삼기는 하나, 니코는 [어나더 라이프]에 완벽하게 녹아든 시리즈 만의 캐릭터다. 앞서 단점으로 언급했던 기시감의 영역에서 벗어난 셈이다. 캐릭터에게 트라우마를 안기거나 지구에 남편을 두고 오는 등의 세부적인 설정도 차별화 요소지만, 무엇보다도 케이트 색호프의 퍼포먼스가 정말 큰 역할을 한다. 이 배우가 없었다면 니코도 없었고 [어나더 라이프]를 볼 이유도 함께 사라졌을 것이다. [배틀스타 갤럭티카]를 통해 쌓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이 작품을 살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분명 [어나더 라이프]은 약점이 명확한 우주 SF물이다. 기시감을 논외로 치더라도 초반의 이해할 수 없는 전개는 시청자들을 대거 이탈시킨 주범이나 마찬가지다. 첫 시즌을 보는 내내 직접 느꼈기에 애써 포장하거나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개인적으로 두 번째 시즌이 꼭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 끝나버린다면 [어나더 라이프]가 시즌 중반부터 보여준 긴장감과 속도감 넘치는 전개, 케이트의 색호프의 퍼포먼스가 눈에 아른거릴 것 같다. 아니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야 외계인들의 진짜 목적을 알았는데 여기서 끝내는 건 좀 너무하잖아 솔직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