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는 넷플릭스가 미국 내 극장 체인 1위 업체인 AMC, 캐나다 극장 체인 1위 시네플렉스와 몇 달 동안 상영 관련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 업체가 가장 집중하는 영화는 [아이리시맨]으로, 마틴 스콜세이지와 로버트 드니로의 9번째 합작이자 2020년 아카데미상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작품이다. 여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협상 자체는 진통을 겪고 있지만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지는 있는 듯하다. 협상이 타결되어 넷플릭스 영화가 전국 규모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상영된다면, 넷플릭스와 극장 모두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아이리시맨’은 어떤 영화일까?

이미지: 넷플릭스

조직범죄와 미국 정치의 교차를 해부하는 작품으로, 스콜세지의 전작 [좋은 친구들], [카지노]와 결을 같이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젝트는 10여년 전 발표되었지만, 작품이 품은 야심과 그만큼 거대한 제작비 때문에 파라마운트가 미국 배급을 포기하며 좌초될 뻔했다. 2017년 넷플릭스의 강력한 지원 아래 촬영이 시작됐고, 현재는 포스트 프로덕션에 한창이다. 배우들의 얼굴을 젊게 만드는 디에이징 작업 때문에 작업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9월 27일 뉴욕영화제 개막작으로 첫 선을 보이고, 10~11월에 일부 극장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넷플릭스와 [아이리시맨] 제작 계약을 할 때 자신의 영화가 전 세계 극장에 상영되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었지만, “넷플릭스가 정말 영화를 사랑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기꺼이 함께할 것이라 밝혔다.

넷플릭스가 태도를 바꾼 이유

이미지: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지금까지 자체 제작 영화 중 일부만 제한적으로 극장에 걸었다. [버드 박스], [7월 22일], [카우보이의 노래] 등은 뉴욕과 LA 등 대도시의 소규모, 인디 극장 체인에서 넷플릭스 공개 1~2주 전에 상영했다. [로마]는 예외였는데, 미국에선 넷플릭스 공개 3주 전 극장 상영을 시작했고, 넷플릭스 공개 후에도 전 세계 일부 극장에서 상영을 계속했다. 알폰소 쿠아론이라는 거장의 명성과 베니스 영화제 작품상, 아카데미 감독상을 비롯해 전 세계 유수 시상식의 상을 쓸어담으며 일으킨 버즈 덕분이었다.

극장 개봉은 고퀄리티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A급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넷플릭스가 내세운 조건이었다. 전 세계 1억 5천만 명 이상 가입자를 위해 콘텐츠를 만든다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유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AMC, 리걸, 시네마크 등 미국 대형 극장 체인이 주장하는 ‘3개월 극장 개봉 후 스트리밍 서비스 공개’는 넷플릭스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았다. 전통 배급 방식을 거부한 결과, 넷플릭스 영화는 소규모 체인, 인디 영화 전문관 등에 상영되며 미국이든 한국이든 지방 구석구석까지 갈 순 없었다.

넷플릭스가 대규모 상영을 추진하는 것은 현재 공개를 앞두거나 제작 중인 대규모 예산 영화에서 더 큰 수익을 올리려는 전략으로도 보인다. 넷플릭스는 [아이리시맨] 외에 마이클 베이 감독의 [식스 언더그라운드], 드웨인 존슨 주연 [레드 노티스] 등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영화를 제작한다.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의 분석대로 “프랜차이즈 스타일의 블록버스터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대규모 극장 개봉이 필요”함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극장의 사정

이미지: 20세기폭스코리아

AMC나 시네플렉스 또한 넷플릭스의 제안을 고려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세기폭스 국내 배급 책임자였던 크리스 아론슨은 미국 극장주가 스튜디오에 개봉 후 3개월 홀드백 기간을 제시하지만, “실제 극장 개봉 영화의 95%가 42일 후엔 수익을 얻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스튜디오는 더이상 돈을 벌지 못할 영화는 빠르게 2차 시장으로 넘기길 원하지만, 극장주는 홀드백 계약 기간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이 문제로 스튜디오와 극장주는 꾸준히 갈등해 왔다.

극장주의 태도는 그동안 완고했다.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장 좋은 마케팅은 극장 상영이다.”라며, 전통 극장 개봉 기간을 지키라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미디어 기업이 앞다투어 독자적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하는 내년 초엔 상황이 바뀐다. 스튜디오는 극장 상영으로 수익을 얻기 어렵다 판단한 영화는 모두 스트리밍 서비스로 공개할 것이다.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을 노리는 블록버스터만 극장에 걸리는 최근 경향은 더 심해질 것이다. 올해 여름 [엑스맨: 다크 피닉스],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등 큰 영화들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 벌어진다면 극장도 결코 이롭지 않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넷플릭스와 AMC가 대화를 계속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오랜 갈등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영화 배급일을 해왔던 아론슨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튜디오와 극장은 우리가 사업을 하는 방식의 모든 측면을 살펴보고 발전을 위해 다른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그의 말은 이상적이다. 극장 수익을 보장하고, 다양한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며, 스튜디오가 큰 손해를 보지 않는 중간 지점을 찾는 데는 지금보다 오랜 시간 진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