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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시대를 거스르는 베니스 영화제의 선택

할리우드 거물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혐의가 폭로된 지 약 2년이 되었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신뢰하고 가해자를 손가락질하는 흐름은 계속되었지만, 그 정도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8월 말부터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국제영화제다. 올해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필름메이커들의 영화가 어떤 곳에선 완전히 거부당했지만 어떤 곳에선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미투 운동이 전 세계를 강타한 건 확실한데, 지역마다 반응에 차이가 있는 무엇일까?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선 베니스 영화제

이미지: R.P. Productions

올해 베니스영화제는 경쟁 부문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나는 고발한다]를 초청했다. 1894년 독일군 간첩으로 몰려 불명예 전역 조치되고 감옥에 갇힌 프랑스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영화는 [피아니스트]에 필적할 만큼 훌륭하며, 경쟁 부문에 초청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로만 폴란스키가 1977년 13세 소녀 사만다 가이머에 대한 마약 사용과 음란행위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정식 판결이 내려지기 전 프랑스로 도주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1978년 이후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며 전 세계 영화 팬의 ‘존경’을 받아왔지만, 지난 2년간 상황은 변했다. 사건이 재조명되며 미국 영화과학 아카데미는 그를 제명했고, 미 법무부는 원칙을 고수하며 폴란스키의 미국 입국을 재차 막았다. 반면 폴란드 법원은 폴란스키의 미국 인도를 거부했다. 폴란스키는 베니스 영화제에 직접 참가하진 못했지만(이탈리아와 미국 간 범죄자 인도 조약 때문에 이탈리아 땅에 들어서는 순간 체포된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부인 샤론 테이트가 살해당했을 때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규정되었고, 최근엔 50여 년 전 자신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일을 했다는 여성들의 주장이 자신을 저주처럼 따라다닌다고 말했다.

영화를 공정히 심사하되 업적은 축하하지 않는다

이미지: 베니스 국제 영화제

초청은 초청이나, 심사는 별개의 문제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단을 이끄는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은 바르베라의 의견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다른 입장을 표시했다. 마르텔은 기자회견에서 폴란스키의 영화를 다른 영화와 동등하게 작품만으로 바라보겠지만, 피해 여성들과의 연대를 위해 폴란스키의 업적을 축하하는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나는 고발한다]가 초청된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폴란스키의 영화가 초청됨으로써 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나는 고발한다] 제작자는 마르텔의 발언에 출품 철회도 고민했으나, 마르텔은 “공정하게 심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다.”라고 입장을 명확히 했다.

네이트 파커, 우디 앨런… 리스트는 계속된다

이미지: 베니스국제영화제

올해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받은 ‘논란의 인물’은 로만 폴란스키로 그치지 않았다. 3년 전 [국가의 탄생]으로 주목받았던 네이트 파커도 새 영화를 내놓았다. 그는 대학 재학 당시 데이트 강간 혐의를 받았지만 처벌받지 않았고, 이후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알려지며 큰 비난을 받았다. [국가의 탄생]은 그해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었지만 파커의 과거가 조명되며 흥행에 참패했다. 파커는 신작 [아메리칸 스킨]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그동안 무지했던 점에 반성했고, 3년간 많은 것을 배웠고 변화했다고 말했다.

우디 앨런의 새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미국 배급은 아마존과 우디 앨런의 대형 송사로 미궁에 빠졌지만, 유럽 몇몇 국가의 극장에서 개봉했다. 프랑스 도빌 국제 영화제는 개막작으로 선정했고, 올해 하반기까지 유럽과 남미 국가 관객들은 앨런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앨런은 지난달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 지역에서 새 영화 촬영에 들어갔다. 여성 스태프를 성추행하고 괴롭혔던 혐의를 받은 케이시 애플렉의 감독 데뷔작도 미국에선 환영받지 못하지만 베를린 영화제에서 공개됐고,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선보인다. 왜 유럽은 미국과 비교해 성범죄 혐의를 받는 영화인에게 관대한 것일까?

미국, 유럽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창작과 창작자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진 못했다. 하지만 [토니 에드만] 제작자 재닌 자코프스키가 할리우드 리포터와 인터뷰에서 한 발언은 사고의 차이를 짐작하게 한다. “미국에서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업계에서 퇴출된다. 반면 여기 유럽은, 아직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것으로 찬양받는 ‘천재’의 개념이 남아 있다.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이미지: 베니스 국제 영화제

유럽의 분위기를 고려해도 올해 베니스 영화제의 결정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다양성 부족을 지적받았지만 올해 경쟁 부문에 여성 감독 작품은 2편만 초청한 걸 보면 개선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또한 폴란스키와 파커까지 성범죄 혐의가 제기된 이들을 초청하는 것도 멈추지 않을 듯하다. 바르베라는 폴란스키를 초청한 것에 대해 살인자이자 바로크 시대 가장 유명한 화가인 카라바지오와 폴란스키를 비교하며 두 사람의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알레시아 소나다니노 (유럽 여성 시청각 네트워크 위원장)은 16세기와 21세기를 비교할 순 없다며 “베니스가 그저 젠더 이슈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이라 비판했다.

로라 케어(스위스 여성 시청각 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베니스가 논란이 될 만한 작품을 초청하는 것이 “마치 시대 변화를 막는 마지막 공룡으로 남는 걸 즐기는 듯하다”라고 지적했다. 칸, 베를린, 로카르노 등 다른 유럽 영화제가 몇 년간 변화를 위해 노력한 것에 비교하면 베니스는 “변화를 못 좇아가고 있든지, 아니면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바르베라가 집행위원장에 오른 후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로서 명성을 되찾기 위해” 할리우드와 넷플릭스 영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일종의 ‘오스카 전초전’이 되어 화제성 면에선 칸 영화제를 눌렀다. 젠더 이슈에 대해 논의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여도, 결국 세계의 시선을 끌 수 있다면 젠더 이슈 따위는 신경 안 쓴다는 태도 또한 분명하다. 멜리사 실버스타인(위민 앤 할리우드 창립자)이 지적한 대로 “이들을 초청하는 것, 그리고 X도 신경 쓰지 않는 것 자체가 그들의 결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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