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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현재를 미러링하는 다크 판타지 ‘카니발 로’

우리는 이야기에서 현재를 찾는다. 역사든, 소설이든, 영화든, 우리는 누군가의 경험을 양분으로 삼아 흥미로운 세계를 만든 이야기를 즐긴다. 독자나 관객은 이야기 안에서 내 처지를 냉정하게 돌아보거나 힘든 삶을 위로받는 등 나의 수준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또는 다른 코드로 유사하게 구축한 세계를 발견하고 다양한 주제에 대한 나의 관점을 확인한다. 이때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말하듯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8월 30일 공개된 아마존 신작 [카니발 로]는 과할 만큼 현실을 반영한 판타지 드라마다. 요정과 신화 속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가 배경이며, 날개 달린 요정, 양의 뿔과 발굽을 단 영국 민담 속 괴물 퍽, 반인반마 센터로우스 등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과 함께 좁고 어두운 도시에서 함께 살아간다. 드라마는 살인 사건, 종족 차별, 타 종족 간 로맨스, 가족 간 갈등, 정치적 암투, 마법과 끔찍한 괴물의 존재 등 다양한 이야기를 세계관 안에 욱여넣었고, 2019년 세계적 이슈인 난민 문제를 판타지 장르를 빌어 논한다.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카니발 로]는 18세기 영국의 한 대도시를 옮겨 놓은 듯한 ‘버그’라는 가상 도시의 가장 어둡고 열악한 지역의 이름이다. 이곳엔 모국의 전쟁을 피해 버그에 도달한 ‘페이’가 터전을 잡고 살아간다. 수년 전, 인간은 페이의 땅 ‘티어나녹’을 탐내며 양쪽으로 갈라 전쟁을 벌였다. 페이와 인간 연합군이 패배했고, 페이들은 종족을 말살하려는 ‘팩트’를 피해 목숨을 걸고 난민선에 오른다.

간신히 살아남아 버그에 도착해도, 페이 난민들은 버그에서 이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고향에서 어떤 일을 했든 이곳에선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모든 범죄와 차별의 표적이 된다. 인간에게 고용되어 허드렛일을 한다면 그나마 나은 처지다. 범죄 조직에 들어가거나 몸을 파는 경우도 있고, 몇몇은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한다.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수십여 년 전 페이에 호의적인 인간은 지금은 페이 난민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삶의 터전을 차지했다며 대낮에도 이들을 폭행한다. 공권력도 페이를 보호하지 않는다. 국가 지도자들은 페이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과 난민을 추방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팽팽하게 맞선다. 페이와 인간의 결합은 용납되지 않으며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페이가 받는 차별과 멸시는 인간의 역사에서 수백 년 동안 존재했고 지금도 있는 다양한 ‘차별’ 유형을 압축해 놓았다. 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카니발 로]의 이야기는 파일로(라이크로프트 필로스트레이트, 올랜도 블룸)와 그의 연인이었던 페이 비녯 스톤모스(카라 델레바인)이지만, 다양한 주요 캐릭터가 독립적인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파일로와 비녯은 티어나녹 전쟁 때 사랑에 빠졌지만 버그군이 철수하면서 헤어졌고, 다시 만났을 때 비녯은 파일로를 증오하게 된다. 드라마는 두 연인이 천천히 옛 감정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과 함께 파일로가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며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밝히는 과정, 비녯이 버그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도 그린다.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비녯이 목숨을 걸고 탄 난민선의 소유주 스펀로즈 가 남매는 스스로가 ‘진보적’이라 믿는 종족 차별주의자이지만, 누나 이모진은 동생의 투자 실패를 만회하려 상류사회에 진입하려는 ‘퍽’ 아그레우스와 협력 관계를 맺는다. 이들은 페이를 인간과 같은 존재로 여기지 않는 인간들의 차별적이고 경멸적인 태도를 담았다. 버그의 수상은 밖으로는 버그의 페이 난민을 모두 추방하려는 야당의 정치 공세에 맞선다. 수상보다 권력욕이 더 강한 그의 아내는 아들을 위해 상상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다. 망나니로 유명한 수상의 아들 조나는 야당 당수의 야심 많은 딸 소피와 손잡고 버그 전체를 개편하려 한다.

각 이야기는 독자적이면서도 서로 교차하며 [카니발 로] 시즌 1의 전체 흐름인 ‘페이 난민에 대한 차별’이란 그림을 그린다. 어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지만, 어떤 건 설익은 밥처럼 전개가 거칠고 메인 주제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에 집중하기보단 퀼처럼 여러 이야기로 엮어 구축한 세계관을 즐기는 걸 권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평면적인 캐릭터나 ‘숙성이 덜 된’ 스토리라인을 보완한다. 블룸과 델레바인은 그동안 연기력보다는 외모나 화제성으로 유명했지만, [카니발 로]에선 맡은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이들이 해석하고 표현한 인물이 시청자의 기호에 잘 맞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릴 듯하다.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최근 TV 시리즈 대부분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 드라마 시리즈 등 검증된 IP를 가져와 만든다. [카니발 로]는 ‘오리지널’ 판타지 시리즈로서 호기심을 끌었고, 시청자들에게 현실을 그대로 옮긴 우화를 선보였다. 시즌 1에 대해선 “설정은 흥미롭고 현실 반영은 돋보이나 고민이 덜 들어간 것 같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인데, 이 평가만 보고 시청을 포기하기엔 아깝다. 현실 이식과 세계관 구축에 힘을 쏟은 시즌 1은 인간과 페이 간 갈등이 극에 다다른 채 끝났다. 앞으로 “난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종족 간 차별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등 현실에선 아직 찾지 못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는다면, 시즌 1을 만회하면서 시간을 들여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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