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공개된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약 4년 전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실화 사건에 영감을 얻었다. 한 10대 소녀가 성폭행 피해를 거짓 신고한 혐의로 기소되고, 두 형사가 끈질긴 추적 끝에 진실을 밝힌다는 내용이다. 공개 직후 모두 “성폭력 생존자로 시선을 옮겨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슴 아픈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소녀의 삶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지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는데, 사건이 8부작 미니시리즈로 제작된 과정을 정리해본다.

첫번째, 두 기자의 끈질긴 탐사보도

이미지: 넷플릭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영감을 준 사건이 세상의 주목을 받은 건 비영리 언론매체 소속 기자들의 오랜 탐사보도 덕분이다. 마셜 프로젝트 소속 기자 켄 암스트롱은 고향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성폭행 허위 신고해 기소된 19세 여성의 사건이 몇 년 후 콜로라도에서 여성을 강간한 범인이 잡히며 사건이 뒤집힌 것이다. 6개월 후,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서 활동하는 프로퍼블리카 기자 T. 크리스천 밀러도 콜로라도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기자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던 것은 몰랐다.

서로 같은 사건을 조사하던 두 기자는 힘을 합쳤다. 밀러는 암스트롱이 같은 사건을 추적하고 있음을 알고 공동 탐사 보도를 제안했다. 두 사람은 인터뷰에서 “공동 취재하기로 합의하고, 그동안 모은 기록을 확인해보니 각자가 이야기의 반쪽을 들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모든 기록을 모은 이야기는 2015년 12월 마셜 프로젝트와 프로퍼블리카에 발행됐고, 공개 직후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2016년 팟캐스트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This American Life)]는 사건을 오디오 팟캐스트로 제작, 공개했다.

둘째, 극화 가능성을 발견한 제작자의 합류

수잔나 그랜트는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 지명을 받은 작가 겸 감독으로, 2015년 밀러와 암스트롱의 기사가 처음 공개된 때부터 관심을 가졌다. 그랜트는 “기사 자체도 정말 훌륭했지만, 내러티브 형태로 바꾸면 더 잘 전달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랜트는 [에린 브로코비치], [컨퍼메이션] 등 실화 각색 경험이 풍부하다. 그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제작자 사라 팀버먼에게 프로젝트를 가져갔고, 영화화를 목표로 작업에 돌입했다.

이들만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셰이본과 아일렛 월든 부부 또한 극화를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었고, 이전에 함께 일했던 팀버먼과 접촉했다. 팀버번은 “모두가 이 이야기를 전하려는 열망을 가졌다”라고 회상했다. 그의 중재로 네 사람과 유명 앵커 케이티 쿠릭까지 합세해 제작팀이 꾸려졌고, 치열한 입찰 경쟁을 벌여 사건의 영상화 권리를 가져왔다. 이들은 암스트롱과 밀러의 기사,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의 사건 부분 팟캐스트, 처음 일어난 워싱턴 사건 피해자(극중 ‘마리’)의 삶을 영상화활 권리를 얻었다. 두 기자와 피해자 또한 영상화에 동의했다. 암스트롱에 따르면 ‘마리’는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잘 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극화에 동의했다.

셋째, ‘실화’에 기대지 않기 위한 결정

이미지: 넷플릭스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제작자들은 실화 사건의 유명함에 완전히 기대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TV 드라마 제작에 동의하지 않은 관련 인물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캐릭터와 그들의 특성을 새롭게 구축했다. 수사관들의 이름과 성격이 모두 바뀌었고, 그 결과 사건을 추적하는 콜로라도 형사 두 사람은 각각 캐런 듀발, 그레이스 라스뮤센으로, 최초에 사건을 맡았던 담당 수사관은 파커 형사가 되었다.

제작자들이 가장 고심한 부분은 ‘마리’의 성폭행 장면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해당 장면은 1화와 이후 플래시백 형태로 등장한다.) 그랜트는 처음엔 사건을 ‘객관적’으로 써볼까 했지만, 곧 “사회에 아직 강간 포르노 문화가 만연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랜트는 모든 장면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그렸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속 사건 장면은 모두 ‘마리’의 시점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오디오로 마리의 심정을 표현한다. 범인의 시점에서 사건을 보는 장면을 쓰긴 했지만, 촬영은 하지 않았다.

넷째, #미투 운동이 드라마를 바꾸진 않았다

넷플릭스가 시리즈 제작을 확정한 2018년 1월, 할리우드는 하비 와인스타인 성폭력 이후 #미투 운동이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제작자들은 실제로 #미투 운동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회의도 했었다. 그랜트는 “지금 경향이 작품 내용을 바꾸게 될까 질문했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라고 밝혔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시의적절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작품 자체는 바뀌지 않지만, 제작하는 사람들의 경험은 달라졌다. 드라마는 토니 콜렛, 메릿 위버, 케이틀린 데버를 캐스팅하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6개월 간 드라마를 만들며 몇몇 크루 멤버들은 자신들이 겪은 성폭행과 성희롱을 제작자들과 공유했다. 그랜트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내게 말할 때마 때마다 이 이야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피해자성’을 규정해선 안 된다

이미지: 넷플릭스

밀러와 암스트롱의 보도는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1년 후 여성 혐오적 성폭력 수사 관행을 고발하는 책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를 내놓았다. 암스트롱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기사의 구조와 비슷하게 워싱턴 주와 콜로라도 주 경찰의 수사 방식을 비교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수사 방식이 효과적이고 아니었는지 접근한 점이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기자들과 제작자들 모두 기사, 팟캐스트, 책과 드라마까지 다양한 형태로 재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성폭력 피해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의 관점을 바꿀 수 있길 바란다.

극중 주인공 ‘마리’의 모델이 된 피해자가 이 드라마를 볼까? 암스트롱은 피해자의 소식을 전했다. “트레일러는 봤다고 합니다. 정말 훌륭했고, 보기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시리즈 전체는 보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