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업 코미디는 마이크 하나와 시원한 입담으로 관객을 울고 웃기는 공연이다. 일종의 1인극인 셈인데, 대본 쓰는 것부터 공연까지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코미디언의 역량이 그대로 드러난다. 로빈 윌리엄스, 엘렌 드제너러스 등 할리우드 스타 중 일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넷플릭스가 전 세계 서비스를 시작하며 성별, 인종, 민족, 언어가 다른 사람들의 배꼽 빠지는 코미디를 안방에서 볼 수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없다시피한 우리나라 또한 유병재에 이어 박나래가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에 도전했다. 10월 16일 공개될 [농염주의보]를 감상하기 전, 넷플릭스가 축적한 유명 코미디언의 다양한 공연을 보면서 웃어보는 걸 어떨까? 에디터들이 넷플릭스에서 즐겨본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을 추천한다.

존 멀레이니 –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 어려워

이미지: 넷플릭스

존 멀레이니: 더 컴백 키드(2015), 존 멀레이니: 라디오 시티 스탠드업(2018)

에디터 혜란: 존 멀레이니는 6년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작가로 활약하며 센스 넘치는 개그를 선보였다. 그가 만든 대표 캐릭터가 바로 SNL 시청자들이 배꼽 잡고 웃게 한 빌 헤이더의 ‘스테폰’이다. 멀레이니는 남들은 욕심만 낼 꿈의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후,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기 위해 도전했다. 항상 잘 되지는 않았기에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넷플릭스에 업데이트된 존 멀레이니의 ‘단독’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은 두 편으로, 각각 2015년과 2018년 매진 행렬을 이어간 공연 실황이다.

멀레이니의 주제는 ‘어른이란 무엇인가’ 또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1982년생, 올해 만 37세이지만 여전히 체격도 외모도 어려 보이는 그에게 어른, 성장은 가장 잘 어울리는 테마다. 두 공연 모두 개인의 경험에 바탕을 두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과 대학 졸업 후 방황한 순간, SNL에서 일한 경험, 결혼은 했지만 아이 없는 부부로 사는 일상을 재미있게 풀어간다. 어린 시절 빌 클린턴을 만난 순간부터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가 “재미없어!”를 외치게 만든 일들까지, 박수가 절로 나오는 깔깔 개그를 한가득 채운다.

멀레이니는 다른 코미디언처럼 성대모사를 잘하진 않고, 욕설을 시원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독특한 스웨거가 있진 않다. 어찌 보면 좋은 집에서 태어나 명문대를 졸업하고, 원하는 일을 하며 평범하고 고생 없이 살아온 “백인 청년”의 표본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한 자 한 자 공들여 쓴 듯한 대본에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가 했던 치열한 고민과 주변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가 마흔에는 ‘어른이 되는 것’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지 기대된다.

케빈 하트 – 스탠드업 코미디의 왕좌를 만나다

이미지: 넷플릭스

케빈 하트: 이거 실화다(2010), 케빈 하트: 왓 나우?(2016), 케빈 하트: 렛 미 익스플레인(2013), 케빈 하트: 네 멋대로 산다(2019)

에디터 홍선: 케빈 하트는 우리에게 [쥬만지], [겟 하드] 등 코미디 배우로 알려졌지만, 미국에서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일인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넷플릭스에서 케빈 하트를 검색을 하면 그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가 다른 코미디언보다 많고, [케빈 하트: 왓 나우]와 [케빈 하트: 렛 미 익스플레인]은 극장판으로 개봉했을 정도다. (케빈 하트가 어떤 우여곡절을 겪고 지금 무대에 섰는지에 관한 극장판만의 간단한 콩트가 있다) 공연 스케일도 대단한데, [왓 나우]는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필라델피아 링컨 파이낸셜 필드에서 열렸고, 이는 세계 최초로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스타디움에서 공연한 기록으로 남았다.

케빈 하트의 코미디 소재는 과거사와 가족이다. 코미디로 남을 까기에는 껄끄럽고, 오히려 자신과 가족들의 이야기이라면 속 시원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화적인 차이가 어느 정도 있어 현지 반응만큼 그의 이야기가 웃기진 않지만, 그런 약점을 특유의 몸짓과 표정으로 만회하며 웃음을 이어간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실력으로 극복하는 이야기에선 작은 감동도 느낄 수 있다. 배우와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케빈 하트는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하루빨리 완쾌해 마이크 하나로 세상을 웃길 그의 컴백을 기다려본다.

켄 정 – 마지막만 기억에 남는 리치 코리안의 고백

이미지: 넷플릭스

켄 정: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 (2019)

에디터 영준: 켄 정은 아시아계 코미디언들 중에서도 유머가 매운 편이다. ‘의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깨부수는 언변과 소재는 자극적이고 얼얼하지만, 그 안에서 공감할 요소가 많았기에 평소에도 유튜브에서 그의 퍼포먼스를 찾아서 보는 편이다(다른 아시아계 코미디언들도 상당히 좋아한다). 그래서 넷플릭스 [켄 정: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을 클릭하기 전까지만 해도 기대에 부풀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A급 소재를 B급 이하로 포장해서 들려줄까?’ 하는 기대. 결론부터 말하면, 켄 정의 이번 스탠드업 코미디는 ‘맛있게’ 매운맛 없이, 자기 자랑에 가깝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넷플릭스 스페셜은 켄 정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의사라는 직업을 두고 [사고친 후에], [행오버] 등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 사연, 그 과정에서 느꼈던 고민과 역경에 MSG를 한껏 치면서 말이다. 문제는 웃기지가 않다. 자극적인 언변에 실소는 몇 번 터졌으나, 평소 그의 퍼포먼스를 보며 터졌던 큰 웃음은 어디에도 없다. 이대로 끝났다면 정말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켄 정은 스탠드업 스페셜의 마지막 15분을 사랑하는, 그리고 암을 이겨낸 멋진 아내를 위해 바치면서 의외의 가슴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촬영 장소를 아이스 하우스 코미디 클럽으로 정한 이유도 아내와의 추억 때문이라고.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만약 또 한 번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원래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봐 할리우드! 작은 켄 정의 매운맛을 보여주마!

트레버 노아 – 거친 언사 한 마디 없이 빵빵 터지는 젠틀 코미디

이미지: 넷플릭스

트레버 노아 :농담같은 진실(2011), 트레버 노아: 다크 공포증(2017), 트레버 노아 : 그 엄마에 그 아들(2018)

에디터 원희: 넷플릭스에서는 영화, 드라마뿐 아니라 다양한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통해 재능 있는 코미디언을 만날 수 있다. 미국의 토크쇼 ‘더 데일리 쇼’에서 호스트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사회/정치적 이슈와 인종차별 문제를 재치 있게 풍자해 탁월하게 코미디로 승화한다.

트레버 노아의 코미디에는 삶의 애환이 녹아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스위스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났는데,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금지된 나라였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코미디언의 단독 스탠드업 쇼가 흔치 않았던 남아공에서 시작한 여정은 [트레버 노아: 농담 같은 진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자신을 향한 편견 어린 시선을 물리치고 성공적인 코미디언이 된 트레버 노아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흑인 인종차별을 풍자하며 거침없이 트럼프를 비판하기도 한다. 비판이라고 하지만 그의 코미디 쇼에는 욕이 등장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는 욕설을 쓰지 않는다는 그의 특징 덕에 훨씬 더 편안하게 웃으며 감상할 수 있다. 넷플릭스에 총 세 편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가 공개되어 있으니,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성대모사 연기와 함께 웃어보는 것은 어떨까. (‘농담같은 진실’은 10월 4일까지 서비스된다)

캐서린 라이언 – 유쾌하고 당당한 싱글맘 라이프

이미지: 넷플릭스

캐서린 라이언: 논란 제조기(2017), 캐서린 라이언: 글리터 룸(2019)

에디터 현정: 우선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에디터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처음이다. 이 세계는 정말 낯설고, 아직까지도 그 매력을 잘 알지 못한다.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스탠드업 코미디란 주제를 놓고 이리저리 시도를 하면서, 앨렌 디제너러스나 앨리 웡, 에이미 슈머처럼 유명인들의 쇼를 일부러 피해 갔기 때문일까, 초반 몇 분만에 정지 버튼을 클릭하고 또 클릭했다. 대여섯 편(혹은 더…)의 쇼를 길어도 20여분 안에 포기하기를 반복하니 과연 한 편을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 시무룩한 마음이 커져갈 때 발견한 게 캐서린 라이언의 [글리터 룸]이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처음으로 완주한 [캐서린 라이언: 글리터 룸]은 변화하는 여성의 가치관을 솔직하고 유쾌한 말솜씨로 펼쳐 보이는 쇼다. 아이와 단둘이 살아가는 30대 싱글맘의 일상에서 몸소 얻은 경험을 녹여내 정중하면서도 도발적인 태도로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남성에게 종속시키려는 시대착오적인 사회의 시선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 시간 가량의 한정된 시간에도 남자가 필요한 여자가 아닌, 아이를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와 긍정적인 에너지가 오롯이 전해진다. 캐서린 라이언과 그의 조숙한 딸과의 유쾌한 에피소드에 정신이 팔리다가도 뮤지컬 해밀턴이나 일본에 정착할 뻔한 일화를 들을 때면 여성이기에 더욱 정신이 번쩍 드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보다 정치적으로 확장된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즐거움도 있다. 특히 2년 전에 공개된 [논란 제조기] 때보다 한결 깊어진 시선은 앞으로 그의 쇼를 보고픈 마음이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