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국내 관객에게 생소한 오컬트 영화 [검은 사제들]이 등장했을 때, 사제복도 멋스럽게 소화한 강동원이 화제가 됐다. 그가 연기한 최부제란 인물도 기존에 보았던 성직자들과 달리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잦은 돌출 행동으로 친밀하게 다가왔다. 이후 [손 the guest]의 김재욱, [열혈사제]의 김남길, [사자]의 박서준 등 종교적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사제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해외 드라마는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성격의 성직자들이 등장하는데, 최근에는 굉장히 핫한 존재감으로 시청자들에게 엉뚱한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절제된 생활 속에서도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기는 해외 드라마의 핫한 성직자들을 소개한다.

플리백(Fleabag) – 신부(앤드류 스콧)

이미지: 아마존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드라마, [플리백]. 충동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당혹감을 안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이름 없는 주인공 ‘플리백’이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관계와 시간의 긴 터널을 통과하는 여정을 그린다. 3년 만에 돌아온 시즌 2는 보는 사람마저 혼란스럽고 너덜너덜해지는 감정의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 달콤 쌉싸름한 매혹적인 로맨스를 선보인다. 그리하여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셜록]의 모리아티로 유명한 앤드류 스콧이다. 놀랍게도 그가 맡은 배역은 천진한 미소와 친밀감으로 보는 순간 무장해제시키는 신부님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에 충실한, 우리의 주인공 플리백은 가족 모임에서 처음 만난 신부에게 강렬한 호기심을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성직자란 테두리 안에 있음에도 쉽게 부서질 것 같은 묘한 매력이 있다. 게다가 제4의 벽을 능청스럽게 넘나들며 시청자에게 말을 건네는 플리백의 은밀한 비밀도 알아본다. 앤드류 스콧은 마치 이 역할을 기다렸다는 듯 불가항력적인 매력으로 플리백뿐 아니라 시청자의 마음까지 훔친다.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구글에서 ‘Hot Priest’를 검색하면 앤드류 스콧이 바로 보일 정도다.

영 포프(The Young Pope) – 교황(주드 로)

이미지: Sky Atlantic, HBO

[플리백]의 앤드류 스콧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 구역 터줏대감은 [영 포프]의 주드 로였을 것이다. [그레이트 뷰티], [유스]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이 연출한 이 10부작 드라마에서 주드 로는 도도하고 거만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젊은 교황을 연기한다. 감독 특유의 화려하고 호화로운 영상과 어우러져 안 그래도 잘 알고 있는 그의 잘생김이 유난히 도드라진다. 극중에서도 비오 13세(레니 벨라르도)의 잘생긴 외모는 수시로 언급되는데, “예수님만큼 잘 생기셨으나 예수님은 아니십니다”란 말에 “내가 더 잘 생겼을 걸. 속으로만 알게”라고 뻔뻔하게 응수하는 대담한 재치까지 갖췄다. [영 포프]는 정통적인 의미에서 발칙하고 거침없이 직선적인 젊은 교황을 통해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종교와 믿음, 인간의 유약한 마음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려낸다. 2020년 두 번째 시즌 [뉴 포프]가 공개되기 전에 바티칸의 심장부를 세련된 고급 화보로 뒤바꾸는 성스럽고 예술적인 존재감을 확인해보자.

이블(Evil) – 가톨릭 교회 조사관(마이크 콜터)

이미지: CBS

넷플릭스와 마블이 결별하면서 히어로에서 백수가 된 [루크 케이지]의 마이크 콜터가 방탄 피부 대신 믿음을 갖고 돌아왔다. CBS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드라마 [이블]에서 마이크 콜터는 사제의 꿈을 안고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사건을 조사하고 엑소시즘이 필요한지 결정하는 가톨릭 교회의 조사관 데이비드 아코스타를 연기한다. 아직 방영 초기이기에 데이비드의 비극적인 과거는 그의 제안으로 이제 막 초자연적인 세계에 들어선 프리랜서 심리학자 크리스틴과의 미묘한 밀당 관계처럼 신비로운 영역이지만, 호기심을 자아내기 부족하지 않다. 전작의 영향인지 때때로 객관적인 판단보다 주먹이 손쉬운 해결책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모순적인 이미지가 악마와 사이코패스를 가늠하는 낯선 세계에서 어떻게 보일지 기대된다.

데리 걸스(Derry Girls) – 신부(피터 캠피온)

이미지: 넷플릭스

1980년대 북아일랜드 가톨릭 학교의 말썽 많은 친구들의 시트콤 같은 일상을 그린 [데리 걸스]는 작은 역할이라도 캐릭터의 인장을 뚜렷하게 새기는데 능하다.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처럼 깜짝 등장해 어린 친구들을 사로잡은 피터 신부 역시 그중 하나다. 시험날 아침 눈물 흘리는 성모 마리아상을 목격한 학생들의 기적을 알기 위해 찾아온 젊은 신부는 반짝반짝 빛나는 머릿결과 강아지 같은 큰 눈망울,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전통적인 미남형으로 단숨에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 역시 학생들이 목격한 기적에 크게 감명받는데, 안타깝게도 기적 자체가 거짓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도리어 신부 생활에 큰 위협을 맞는다. 불현듯 나타나 순식간에 사라진 피터 신부는 시즌 2에 다시 깜짝 등장한다. 이번에는 가톨릭교와 신교도 학생들의 종교적인 화합을 꾀하지만, 지난번 학생들에게 깜빡 속았던 것처럼 그의 믿음은 여전히 순진하다.

엑소시스트(The Exorcist) – 구마사제(알폰소 에레라, 벤 다니엘스)

이미지: FOX, 아마존

드라마 [엑소시스트]는 컬트 호러의 고전으로 불리는 1973년 동명 영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원작처럼 두 명의 신부를 내세운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신부 토마스 오르테가와 오래전 비극적인 사건으로 신부직을 내려놓은 마커스 킨이 어둡고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두 사람은 갑자기 변한 딸을 의심하는 안젤라의 집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고 점차 파트너로 합심하는데, 정반대 성향을 가진 두 인물의 사제 브로맨스는 드라마의 흥미를 배가한다. [센스8]에서 리토의 연인 헤르난도를 연기했던 알폰소 엘레라는 선량하고 친근한 모습부터 유약하게 흔들리는 모습까지 요동치며 변화하는 모습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곧 [더 크라운] 시즌 3에서 볼 수 있는 벤 다니엘스는 악에 맞서기 위해 거칠게 움직이며 갈등을 점화한다. 아쉽게도 시즌 2를 끝으로 더 이상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프리처(Preacher) – 목사(도미닉 쿠퍼)

이미지: AMC, 아마존

작은 교회의 목사 제시 커스터는 앞서 소개한 인물들과 다르다. 믿음이 충만하지도 사명감이 투철하지도 않다. 목사를 그만두려 할 때, 우연히 말하는 대로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는 제네시스란 능력을 얻고, 전 연인 튤립과 뱀파이어 캐시디와 함께 신의 존재를 찾아 무작정 여정에 나선다. 과거 범죄 세계에 몸담았던 그는 자신의 능력을 탐내는 조직과 불멸의 살인자에게 쫓기자 폭력으로 응수한다. 고집스럽고 타협 없는 제시를 연기한 도미닉 쿠퍼는 거칠고 섹시한 매력으로 다른 개성 강한 캐릭터들(튤립, 캐시디)과 다채로운 케미를 연출한다. 튤립 앞에서는 순정 마초남이 되었다가 캐시디와는 시니컬한 브로맨스를 보여준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관계는 좁혀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지만, 능력과 신의 존재에 집착하는 제시의 고집은 변함이 없다. [프리처]는 올해 시즌 4를 끝으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과연 제시는 그토록 얻고자 했던 답을 찾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