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예술 작품과 마주하면 작품을 완성한 이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작품을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부터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까지 이어지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선 당사자에게 직접 묻는 것이 최고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작가와 작품을 빼곡히 해설한 글을 통해 궁금증이 해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활자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의 아쉬움을 충족하기에는 영상 만한 게 없다. 우리가 몰랐던, 혹은 그동안 궁금했던 아티스트의 삶과 이들이 세상에 미친 영향력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트래비스 스콧: 날 수 있어(Travis Scott: Look Mom I Can Fly)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원희 ★★☆ 트래비스 스콧의 명반 ‘애스트로월드’가 만들어지기까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평소에 힙합 장르의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트래비스 스콧의 ‘애스트로월드’는 수록곡 모두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들을 만큼 즐겨 듣는다. 사실 음악을 듣는 것 외에는 가수에 대해 따로 찾아보거나 하지 않아서 트래비스 스콧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마침 넷플릭스에 트래비스 스콧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어 그의 삶의 단편을 들여다보고 싶어 이 작품을 선택했다.

감상평: 2018년 그래미 올해의 랩 앨범상 후보에 올랐던 앨범 ‘애스트로월드’의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 흔한 해설 내래이션이나, 다큐멘터리를 향한 트레비스 스콧의 직접적인 설명 혹은 소감이 등장하지 않고 정말 날 것 그대로의 영상 기록이 담겨 있다.

트래비스 스콧의 공연 실황부터 시작하는데, 가수가 보여주는 열정만큼이나 활활 타오르는 팬들의 열기로 매번 부상자가 속출할 정도로 공연장의 격렬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그 사이마다 등장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통해 트레비스 스콧의 음악적 재능의 떡잎을 확인할 수 있다. 거대한 공연장의 관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 그런 팬들과 늘 호응하는 래퍼 본연의 모습, 어린 시절의 편린, 음악 제작 과정 등의 영상이 뒤죽박죽 섞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이 차곡차곡 쌓여 ‘에스트로월드’를 탄생하게 한 초석이 된다.

그의 추억이 깃든 곳이자 오래전에 폐장한 테마파크에서 이름을 따온 ‘애스트로월드’ 앨범 제작 과정 속에는 고향 휴스턴을 향한 애정과 향수가 가득 묻어 있다. 음악을 향한 재능과 열정도 볼 수 있지만 그를 지지하는 팬들, 카일리 제너와의 딸 스토미를 향한 무한한 애정도 녹아 있다. 트래비스 스콧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의 여정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버든: 잔혹의 매혹(Burden)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영준 ★★★☆ 크리스 버든의, 크리스 버든에 의한, 크리스 버든을 위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예술의 형태로 행위예술과 현대무용을 꼽고 싶다. 관심은 있지만, 좁은 식견 때문에 난해함만 안고 공연장을 나왔던 기억이 있어 더 그런 모양이다. 에디터가 크리스 버든에 대해 알았던 정보라곤 『메트로폴리스 II』와 『어반 라이트』를 탄생시킨 설치 미술가’라는 것 뿐이었다. 도시적이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예술가가 활동 초기에는 ‘미술계의 악마’라 불렸던 행위 예술가였다고? 그의 삶이 문득 궁금해졌다.

감상평: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크리스 버든’. [버든: 잔혹의 미학]은 버든이 돈을 지불하고 TV에 방영했던 짧은 광고로 시작한다.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 뒤에 자신의 이름을 더하고, 앤디 워홀은 아직 살아있어 홍보해주기 싫었다는 인터뷰의 당돌함에서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버든: 잔혹의 미학]은 크리스 버든의 예술 세계와 삶을 탐구한다. 『발사』, 『책형』, 『벨벳의 물』 등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퍼포먼스로 이름을 알렸던 초창기부터 『메트로폴리스 II』나 『상투스 두몽 송가』 등의 설치미술 대표작들이 탄생시키기까지 여정은 내레이션과 당시 현장 영상, 그리고 다수의 인터뷰가 더해지면서 상당한 몰입감을 자랑한다.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리처드 듀이와 티모시 매리넌의 노력 덕에 실제로 그 역사적인 순간에 직접 있었던 것 같은 생생함까지 느껴진다.

[버든: 잔혹의 미학]이 그가 행위예술에서 설치미술로 전향한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도 있을 테다. 그러나 이것이 두 연출자의 의도된 선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예술이 ‘작가의 의도’와 ‘대중의 의문’이 이루는 결과물이라 생각하기에, 이러한 [버든: 잔혹의 미학]의 공백에 많은 여운을 느낀 것일지도…

조앤 디디온의 초상(Joan Didion: The Center Will Not Hold)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혜란 ★★★★ 시대 정신과 보편의 감정을 기록한 작가에 경의를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에디터가 좋아하는 옛날 멜로 영화 2편이 있다. 하나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주연 [스타 탄생], 다른 하나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셸 파이퍼의 [업 클로즈 앤 퍼스널]이다. 두 작품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주인공이 조앤 디디온과 그의 남편 존 그레고리 던이다. 하지만 디디온은 그저 멜로 영화 작가가 아니다. 1950년대부터 많은 사람을 글로 웃고 울고 분노하게 했다.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더 많은 답을 얻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감상평: 조앤 디디온은 미국의 시대정신을 담은 글을 썼다. 1960~70년대 하위문화를 탐구했고, 미국 내 쿠바 이민자의 삶을 조명했다. 엘살바도르 내전의 실상을 목격했으며, 부시 행정부와 전쟁광 딕 체니의 본질을 꿰뚫었다. 논픽션과 에세이로 유명하지만, 소설과 영화 대본을 집필했으며,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뒤 글을 쓰며 애도할 정도로 디디온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존재와 세상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행위다.

그에겐 언제나 좋은 파트너가 있었다. 남편이자 동료 작가인 존 그레고리 던은 디디온의 글을 가장 먼저 보고 편집했다.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 갈등을 겪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부부관계를 솔직하게 고백한 글마저 남편이 직접 편집할 만큼, 서로의 글과 생각을 가장 잘 알았다. 두 사람 사이엔 퀸타나라는 딸이 있었다. 세 가족은 말리부 해변의 집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며 글을 쓰고, 친구들을 초대해 식사를 함께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조앤은 남편과 딸을 잇달아 잃는다. 너무나 큰 아픔을 견디며 조앤은 두 권의 에세이를 썼고,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조앤 디디온의 초상]은 올해 84세가 된 디디온의 삶을 조명한 최초의 다큐멘터리다. 감독 그리핀 던은 디디온의 조카다. 그래서 영화 속 인터뷰는 숙모의 일상을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기록하려는 조카와 그를 응원하는 숙모의 대화 같다. 인터뷰 내내 디디온이 얼마나 드러내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 주도권을 잡고 있음이 느껴진다.

심장을 부여잡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카메라는 디디온의 얼굴 위에 조금 오래 머물며 경계를 누그러뜨린 그의 가장 솔직한 표정을 담았다. 슬픈 눈빛은 잔상처럼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상실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 겹친다.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의 슬픔을 엿본 순간 내 마음도 허물어졌다. 누군가를 아는 것 이상의 강렬한 감정을 전한 영화의 힘에 항복을 외치고 싶을 만큼.

비틀즈는 어떻게 세상을 바꿨나(How the Beatles Changed the World)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홍선 ★★★  ‘스포트라이트’보다 ‘뜨거움’ 가득했던 진짜 비틀스 이야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필자에게 비틀스는 ‘유니콘’ 같은 존재다. 너무나 대단하고 환상적인 존재이지만 ‘비틀스 시대’에 살아본 적이 없기에 체감할 수 없는 그런 것. 그렇기에 비틀스가 어떻게 현재까지도 명성이 자자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밴드가 되었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감상평: [비틀스는 어떻게 세상을 바꿨나]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며 충실하게 답을 내놓는다. 비틀스와 관련된 동료, 평론가, 팬 등 다양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왜 모였고 무엇을 불렀으며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정리한다. 하지만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다. 비틀스가 “어떻게 성공했냐”가 아니라 “어떻게 (세상이) 바뀌었나”를 묻기 때문이다.

중반 이후부터는 비틀스의 파급력을 통해 변화된 사회를 비춘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당시 굵직한 사회 문화 이슈와 연결시켜 비틀스가 어떤 촉매제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인터뷰 장면에서는 무언가를 규정 지으려는 기성 언론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해 한 방 먹이는 모습은 시원하기까지 하다. 이 작품을 보고 비틀스의 음악을 듣는다면 경이적인 앨범 판매량이나 팝 차트에서 몇 주 1위를 했는지가 아닌, 그들이 무엇을 위해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성공한 밴드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보다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추천 작품: “세상에 비틀스가 없다면?”라는 질문을 던지는 [예스터데이]. 전혀 다른 방식과 톤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두 영화가 도달한 답은 의외로 가깝다.

리마스터드 콜렉션(ReMastered)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현정 ★★★☆ 새삼 깨닫는 음악의 힘!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밥 말리, 조니 캐시, 샘 쿡, 로버트 존슨, 빅토르 하라, 잼 마스터 제이, 마이애미 쇼밴드, 솔로몬 린다. 너무 잘 알려져서 익숙하기도 혹은 생소하기도 한 음악인에게 일어난 사건을 조명한다는 컨셉에 끌렸다. 말초적인 호기심이라도 해도 미스터리 실화는 언제나 매혹적이며, 대중에게 알려진 이야기 이면에 감춰진 진실 혹은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놀라움을 안겨준다. 게다가 음악인이라니! 이 호기심의 바다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작품 목록: 누가 밥 말리를 쏘았나/사자의 몫/샘 쿡, 두 번 죽다/닉슨 vs 맨 인 블랙/악마와 걸은 사나이/누가 잼 마스터 제이를 죽였나/마이애미 쇼밴드 참사/빅토르 하라의 마지막 노래

감상평: 각각 한 시간 안팎의 총 8편으로 구성된 [리마스터드] 콜렉션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인들이 무엇 때문에 사건에 휘말리게 됐는지 정치,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풍부한 시각으로 돌아본다.

가장 많이 다루는 소재는 ‘죽음’이다. 샘 쿡, 빅토르 하라, 마이애미 쇼밴드, 잼 마스터 제이, 그리고 암살 미수에 그친 밥 말리까지. 음악인의 삶을 위협했던 사건은 한결 같이 혼란스러운 시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소외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용기를 건네는 노래를 불렀던 샘 쿡, 빅토르 하라, 밥 말리는 그들의 바람과 달리 권력의 표적이 되고, ‘아일랜드의 비틀스’라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마이애미 쇼밴드는 북아일랜드 분쟁의 (정치적인) 무고한 희생양이 된다. 잼 마스터 제이의 죽음은 유독 흑인 힙합 아티스트의 저격 사건이 이어졌던 시기와 맞물려 간과된다.

혹은 음악적 성과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도 한다. 지미 헨드릭스,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른바 ’27클럽’이라 불리는 이 리스트의 최초 인물로 여겨지는 로버트 존슨은 블루스의 전설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지만, 그보다는 갑자기 일취월장한 실력에 악마와 거래했다는 소문이 더 유명하다. [리마스터드] 콜렉션 중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솔로몬 린다는 [라이온 킹]의 그 유명한 ‘사자는 오늘 밤 잠을 자네(The Lion Sleep Tonight)’의 원곡을 작곡한 가수였음에도 잔혹한 미디어 산업은 그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했다.

닉슨 대통령이 정치적인 의도를 품고 백악관에 초청한 조니 캐시까지. [리마스터드] 콜렉션에서 다룬 아티스트는 지금도 통용되는 정치사회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특히 인종차별의 역사 교과서로 불려도 될 만큼 여러 아티스트를 통해 폭넓게 짚어낸다. 냉전시대 미국 정부의 비열한 야심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가진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감격스러운 순간을 만들어내는지 새삼 놀랍고 벅차다. 그래서 사회적 차별과 부당함에 맞서는 음악으로 감동을 선사하고 통합을 이끌어낸 아티스트의 이른 죽음이 슬프다. 만약 그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혹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음악을 알렸다면, 지금의 음악산업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최근 지하철 요금 인상 발표 이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가 벌어지는 칠레의 시위 현장에는 1973년 군부 쿠데타 당시 살해당한 민중 가수 빅토르 하라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여전히 칠레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된 빅토르 하라처럼,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 [리마스터드] 콜렉션을 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드는 씁쓸한 여운을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