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과 장르 마니아를 위한 이번 주 개봉작 리뷰

윤희에게(Moonlit Winter) – 첫사랑을 찾아, 하얀 눈길을 더듬다

이미지: KTH, 리틀빅픽처스

에디터 혜란: ★★★★ [윤희에게]는 평범하게 살던 ‘윤희’에게 잊고 살 수밖에 없던 누군가의 편지가 도착하며 시작한다. 딸과 함께 일본으로 간 윤희는 눈 덮인 작은 마을에서 첫사랑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더듬고, 20년 이상 끊어진 인연을 다시 잇기 전 거듭 고민한다. 그런 윤희 옆에는 엄마의 사랑과 행복을 지지하는 딸 새봄이 있다. [윤희에게]는 매력적인 퀴어 영화다. 윤희와 쥰을 연기한 김희애와 나카무라 유코는 20년 이상 이어온 사랑과 이별, 그리움을 뛰어난 연기로 보여준다. 굳이 설명이 없어도 어느새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게 만든다. 영화는 여행 영화이자 성장을 향한 로드무비다. 어머니와 딸은 여행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미래를 위한 힘을 얻는다. 모녀를 연기한 김소혜와 김희애는 연기도 좋지만 호흡이 잘 맞아서 보기 편하다. 무엇보다도 [윤희에게]는 사랑 그 자체를 축복하고 응원하는 영화다. 현실의 벽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이들에게 어느덧 마음을 쏟아붓고 공감하게 한다.

블랙머니(BLACK MONEY) – 친절하고 쉽게 풀어낸 금융범죄 고발극

이미지: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에디터 현정: ★★★☆ 현재도 진행 중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허구의 캐릭터를 더해 가공한 영화다.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정지영 감독은 명성에 걸맞게 실화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상업영화의 긴장과 흥미를 유지하며 캐릭터와 이야기를 차곡차곡 풀어나간다. 생경한 경제 용어나 배후에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필요가 없다. 영화는 개인적인 누명을 벗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 일반 검사를 화자로 내세워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전개한다. 배우들의 열연도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하는데, 조진웅과 이하늬가 연기한 두 인물의 뚜렷한 온도차가 뜨겁게 넘칠 수 있는 영화의 균형을 맞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을 다루기에 명확한 결말을 제시하진 않지만, 양민혁 검사가 느꼈던 분노가 어디로 향하는지 보여주면서 사회고발 영화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제2의 론스타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에디터 혜란: ★★★☆ 은행 인수를 둘러싸고 한국 금융을 주무르는 부패한 경제 관료(모피아), 외국계 사모펀드의 실체를 파헤치는 범죄 수사극. 화려함 대신 무게와 속도를 택한 연출 덕분에 영화는 사실적 색채가 가득하지만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내용은 어렵지만 복잡하게 접근하지 않으며, 주인공과 함께 배워가는 방식을 취한다. 그 중심인 검사 양민혁(조진웅)은 사건을 수사할 적절한 권한과 기술을 이용하며, 억울함과 정의감을 동력 삼아 돌진한다. ‘열혈 검사’ 캐릭터가 식상하겠지만, 어려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의 리드를 따라 결말에 다다르면, 영화는 우리를 현실로 보내고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인공, 스토리 모두 뜨거워서 보는 나마저 거기 휩쓸릴 것 같지만, 주위의 현실적 캐릭터는 영화를 땅에 붙여놓는다. 영화는 전형적이지 않은 악당, 항상 선량하지만은 않은 정의로운 사람들을 잘 묘사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데, 특히 이하늬가 가장 인상적이다. 정의는 멀고 현실의 이득은 가까운 상황에서 캐릭터가 겪는 심적 갈등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좀비랜드: 더블 탭(Zombieland: Double Tap) – 1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트윙키의 불량한 맛, 그리웠다

이미지: 소니 픽쳐스

에디터 영준: ★★★☆ 전작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볼만한 좀비 코미디. 10년 전 좀비 때려잡던 탤러해시와 콜럼버스, 위치타, 리틀 록이 돌아왔다. 전작의 주연들과 루벤 플레이셔 감독이 복귀한 [좀비랜드: 더블 탭]은 진정한 팬 서비스 영화다. 액션과 유머, 스토리 모두 전작의 B급 감성을 그대로 계승했는데, 10년이 흘러 어느덧 ‘진짜’ 가족이 된 네 사람의 이야기가 새롭게 더해진다. 좀비로 가득한 세계에서 부녀 갈등, 사랑과 연애, 결혼 이야기라니. 좀비와 가족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소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전작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새로이 합류한 캐릭터와 깜짝 놀랄만한 카메오까지 모습을 드러내면서 영화에 매력을 더한다. 다만 세월에 맞게 진화한 좀비가 등장하면서 ‘더블 탭(확인 사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듯했으나, 이들을 처리하는 방식이 일반 좀비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 그래도 [좀비랜드] 특유의 감성을 좋아했던 이들이나, 유쾌한 좀비 코미디를 감상하고픈 이들에게 추천한다. 초반 내레이션으로 간략히 이전 내용을 설명해주니, 전작을 모른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영하의 바람(Sub-zero Wind) – 10대 성장담 그 이상의 섬세함

이미지: 영화사 진진

에디터 홍선: ★★★☆ 김유리 감독은 전작 단편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제목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제목이 영화의 큰 반전이었던 단편 [저 문은 언제부터 열려있었던 거지?]처럼 [영화의 바람]도 극중 주인공의 이름이자 날씨를 이용한 차가운 현실을 미리 예고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주인공을 묘사하기 위해 많은 영화에서 아역을 기용하는데, [영하의 바람]처럼 초-중-고의 짧은 시간을 각기 다른 아역을 기용해 표현한 건 드물다. 단순히 주인공의 10대 시절의 이야기를 다룰 것 같지만, 인물이 겪는 세월의 변화는 배역을 세세하게 나눌 정도로 예민하고 섬세한 시기였음을 말한다. 배역을 나눔에 따라 극중 ‘영하’와 ‘미진’을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고,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더욱 크게 체감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끝나는 엔딩이 당혹스럽지만, 이야기가 끝나고도 주인공들의 앞으로를 생각하게 하는 긴 여운을 남긴다.

심판(In the Fade) – 다이앤 크루거란 배우의 얼굴로 완성한 영화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에디터 현정: ★★★ 파티 아킨 감독의 [심판]은 각성의 목소리에도 끊이지 않는 인종차별 범죄에 경종을 울리며 직진하는 영화다. 갑작스러운 폭발 테러 사건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성이 용의자를 단죄하기 위해 법정 싸움을 벌이는 과정을 다이앤 크루거의 절절한 연기로 완성한다. 그가 없다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효과적이었을지 의문이 들 만큼 호소력 짙은 연기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2017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다이앤 크루거의 든든한 지원하에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인 불신과 편견, 사법제도의 모순과 취약성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3막의 구조를 취하고 고통-정의-복수의 형태로 흘러가는데, 카티아의 마지막 선택은 정의와 존엄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다.

엔젤 해즈 폴른(Angel Has Fallen) – 말도 안 되게 터진다

이미지: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에디터 원희: ★★ 제라드 버틀러 주연 폴른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대통령을 경호하는 비밀 경호국 최고 요원 마이크 배닝이 임무 도중에 대통령을 향한 대규모 드론 테러를 맞이한다. 경호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배닝은 테러 용의자로 지목되고, FBI에게 쫓기면서 누명을 벗으려고 노력한다. 익숙한 소재가 익숙하게 흘러가고, 출연 배우 자체가 스포일러일 정도여서 처음부터 모든 반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래도 가장 돋보이는 점은 역시 시리즈 내내 자랑했던 화려한 액션신이다. 제라드 버틀러의 녹슬지 않은 맨손 액션과 총기 액션도 뛰어나지만,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폭발 신이 특히 발군이다. 드론 테러 장면도 확실히 어마어마한데, 배닝이 산속에서 비밀스러운 조직에 쫓길 때 산을 죄다 터트려버리는 장면은 놀라움을 넘어서 웃음을 유발할 정도다. 진부한 서사에 개의치 않고 폭발과 함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할리우드 대작전! (One Cut of the Dead Spin-Off: In Hollywood) – 기대 이상의 팬 서비스

이미지: 디오시네마

에디터 홍선: ★★★☆ 2018년 개봉해 기막힌 아이디어와 영화 제작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준 좀비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스핀오프다. 1편의 대성공으로 이번에는 할리우드에서 원-컷 좀비 영화를 만드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꿈은 높지만 현실은 엉망이라 빚어지는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50여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대단한 야심을 가진 시리즈의 후속작이기보다 전편을 사랑한 팬들을 위한 서비스 측면이 강한데, 전편에서 좋았던 부분이 그대로 이어진다. 반가운 인물들과 전편의 명장면을 재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좀비’가 아닌 ‘영화’, 정확히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의외의 감동을 전한다. 핵심 구성을 다 알고 있기에 전편만큼의 놀라움은 없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팬 서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