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배우들의 비주얼이 열일하는 영화가 있다. 그래서 더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가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싱겁고 밋밋한 이야기의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한 마디로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눈호강의 즐거움이 확실하다. 특히 좋아하는 최애 배우의 영화라면 마르고 닳도록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영화가 배우들의 매력을 200% 담아냈을까?

이미지: 알토미디어

모리스(Maurice)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전엔 [모리스]가 있었다. 32년 만에 정식 개봉하는 1987년작 [모리스]는 1900년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각색상을 수상한 제임스 아이보리가 연출을 맡아 동성애를 금지하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안타까운 사랑을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영상으로 담아낸다. 특히 당시 20대였던 휴 그랜트의 리즈 시절 외모와 섬세한 연기가 아름다운 영상과 어우러져 클래식한 매력을 더해준다.

이미지: (주)NEW

뷰티 인사이드(The Beauty Inside)

매일 모습이 바뀌는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 [뷰티 인사이드]는 신선한 설정으로 눈길을 끌고, 연애세포를 간질간질 자극하는 동화 같은 판타지 로맨스로 관객들을 설레게 한다.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온 백종렬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 뽀송뽀송한 예쁜 영상미를 선보이지만, 소재의 참신함을 살리기엔 부족했다는 평이다. 그럼에도 우진과 사랑에 빠지는 이수를 연기한 한효주의 청초한 존재감과 이동욱, 박서준, 서강준, 유연석 등 깜짝 출연진들이 다소 아쉬운 이야기에 몰입을 유도한다.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유열의 음악앨범(Tune in for Love)

김고은과 정해인이 멜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났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1994년부터 2007년까지 13년간 청취자들과 함께했던 동명 라디오 프로그램을 매개체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미수와 현우의 이야기를 그린다. 설렘과 애틋함을 자아내는 두 배우의 호흡과 귓가를 맴도는 주옥같은 선곡, 아날로그 감성을 전하는 영상미가 어우러졌지만, 아쉽게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두 배우의 매력을 부각하는 예쁜 영상에도 우연을 남발하는 억지스러운 전개와 느릿한 전개에 기대보다 못한 흥행을 기록했다.

이미지: (주)더쿱

핫 썸머 나이츠(Hot Summer Nights)

티모시 샬라메가 무모한 청춘으로 변신했다. [핫 썸머 나이츠]는 아찔한 일탈과 설레는 로맨스에 빠지는 청춘의 여름을 그린다. 소년의 유약함과 퇴폐미가 공존하는 배우, 티모시 샬라메는 그 특유의 매력으로 불안하게 흔들리는 아웃사이더 청춘을 연기한다. 1990년대 분위기를 살린 레트로풍의 영상에 담긴 그의 모습은 영상화보집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강렬하다. 문제는 영화의 매력이 거기까지라는 것. 영화를 가득 채우는 그의 존재감은 황홀하지만, 감각적인 연출에만 힘을 쏟느라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앙상해졌다.

이미지: 찬란, (주)팝엔터테인먼트

파이널 포트레이트(Final Portrait)

예술가의 모델이 된 아미 해머라니! [파이널 포트레이트]만큼 아미 해머의 비주얼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담아낸 영화가 있을까.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작가이자 친구인 제임스 로드의 초상화를 작업했던 18일 동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서 아미 해머의 잘생긴 얼굴은 수시로 클로즈업된다. 배우로도 유명한 스탠리 투치는 관객의 흥미를 유도하는 지점을 정확히 간파한듯하다. 덕분에 창작의 고통에 빠진 예술가의 괴팍한 매력을 생생하고 인간적으로 그려낸 제프리 러쉬의 연기를 보는 재미와 잘 어우러져 색다른 전기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안긴다.

이미지: 찬란

비거 스플래쉬(A Bigger Splash)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틸다 스윈튼의 세 번째 만남. [아이 엠 러브]에서 우아함의 절정에 올랐던 틸다 스윈튼은 네 남녀의 사랑과 질투, 욕망을 그린 [비거 스플래쉬]에서는 관능적인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영화 설정상 제한된 표현만 가능했지만, 표정과 몸짓만으로 인물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탁월하게 전한다. 또한 그의 우월한 체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실루엣이 강조된 심플한 디자인의 의상을 멋스럽게 소화하며 영상 화보를 보는듯한 화려한 매력을 더한다.

이미지: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맨 프롬 UNCLE(The Man from U.N.C.L.E.)

스파이물의 매력은 약할지언정 눈호강의 즐거움은 폭발한다. 핵무기 경쟁을 벌이던 냉전시대 첩보전을 그린 [맨 프롬 UNCLE]은 헨리 카빌과 아미 해머가 선보이는 비주얼 브로맨스가 압권이다. 조각 같은 외모가 더욱 돋보이는 스타일리시한 패션과 투닥거리는 브로맨스가 어우러져 극강의 눈호강을 선사한다. 그뿐이랴, 복고풍의 화려한 스타일로 시선을 붙잡는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엘리자베스 데비키까지 가세하니 첩보물을 가장한 영상화보가 아닌지 착각도 든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멋있는 휴 그랜트의 부드러운 영국 악센트는 보너스다.

이미지: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

가이 리치의 [맨 프롬 UNCLE]이 스타일에 유머를 더했다면, 데이빗 레이치의 [아토믹 블론드]는 스타일에 화끈한 액션을 더했다. 이미 [존 윅]에서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보여준 바 있는 데이빗 레이치 감독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강인한 전사의 매력을 선보였던 샤를리즈 테론을 만나 환상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타격감 넘치는 격렬한 액션은 기본, 서늘한 카리스마와 관능적인 매력을 뽐내는 샤를리즈 테론의 존재감은 가히 압도적이다. 그만의 근사한 비주얼을 부각하는 현란하고 감각적인 미장센과 퀸, 뉴 오더 등의 음악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바이 더 씨(By the Sea)

지금은 더 이상 부부의 연을 맺지 않지만, 한때는 대중의 시선을 한몸에 받던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한 작품에서 부부를 연기했다. 아름다운 휴양지로 떠난 권태기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서 두 사람은 예의 잘 알고 있는 우아하고 섹시한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 비록 영화가 다루는 내용은 마치 그들의 결혼 생활을 예감하듯 무겁게 흐르지만, 세련된 영상화보집을 방불케 하는 그림 같은 풍경과 두 사람의 고혹적인 비주얼이 씁쓸한 여운과 함께 진한 잔상을 남긴다.

이미지: 찬란

틴 스피릿(Teen Spirit)

엘르 패닝의 매력에 듬뿍 빠지고 싶다면,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다재다능한 재능을 꽃피우는 [틴 스피릿]을 봐야 한다. 시골에 사는 17세 바이올렛이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한다는 음악과 성장담을 버무린 영화에서 엘르 패닝은 그만의 사랑스럽고 당찬 존재감으로 헐거운 이야기를 채워간다. 뮤직비디오 같은 감각적인 영상에 엘르 패닝의 매력적인 음색이 더해지니 진짜 팝스타를 보는듯한 착각도 불러일으키는데, 그의 열정과 비주얼을 집대성한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