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블랙머니]는 론스타 사건을 소재로 금융 스캔들을 추적하는 검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식, 증권, 금융 등 어려운 경제 용어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는 쉽게 다가서기 힘들지만,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돈’을 화두로 삼았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긴다. 

[블랙머니]처럼 경제 이슈를 다룬 영화 대부분은 사회적 혼란과 위기를 초래한 금융 비리를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 구조로 풀어내면서 마지막에는 ‘모르면 당하기에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해 오락적인 재미는 물론 경각심도 일깨운다. 실생활에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경제 이슈는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하지만, 정작 어렵고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한 발짝 물러설 때가 많다. 하지만 이들 영화가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윤택하게 하려면, 사회경제 전반에 어두운 먹구름을 드리우는 금융자본주의의 이면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영화가 [블랙머니]처럼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 이슈를 다루었는지 소개한다. 

빅쇼트 The Big Short, 2015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서브프라임 사태를 미리 예측해 모두가 많은 것을 잃었을 때, 오히려 돈을 번 괴짜들이 있다. [빅쇼트]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를 초토화시킨 서브프라임 사태의 이면을 친절하고 쉽게 풀어낸 영화다. 그동안 코미디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아담 맥케이가 연출을 맡고,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빅쇼트]는 세 개의 독립된 이야기를 교차하며, 경제 개론서를 보듯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과 상황을 두루두루 짚어낸다. 마고 로비, 셀레나 고메즈 등 깜짝 게스트가 출연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경제 용어와 이슈를 누구나 알기 쉽게 적절한 비유를 들어 알려준다. 경제 영화를 언급할 때 [빅쇼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단지 미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를 예견하고 일생일대의 도박에 나선 네 사람이 성공을 향해갈수록 씁쓸함이 거침없이 밀려온다. 

국가부도의 날, 2018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한국 영화 최초로 1997년 IMF 사태를 스크린에 담은 작품이다. 국가부도의 위기를 예감하고 막으려고 했던 사람, 위기를 기회로 잡은 사람, 위기에 속수무책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빅쇼트]처럼 각각의 에피소드로 전개하면서 하나의 큰 그림으로 완성한다. [스플릿]의 최국희 감독이 연출을 맡고 김혜수, 유아인, 조우진, 허준호가 출연했다. 또한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이 IMF 총재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경제 위기를 다룬 해외 영화와 달리 우리가 직접 겪고, 그때의 아픔이 지금도 남아있는 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영화 속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각색 과정을 거쳤겠지만 1997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진 산업구조와 사회 풍경의 원인을 살펴볼 수 있으며, 단순히 IMF 시대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제2의 금융위기는 언제든 또다시 올 수 있음을 예고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인사이드 잡 Inside Job, 2010

이미지: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리만 브라더스 부도 여파가 초래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2010년 제83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이다. 맷 데이먼이 내레이션을 맡고, 당시 상황을 직접 겪었거나 관련 있는 사람들이 출연해 인터뷰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들이 복잡한 용어와 쉽게 알아보기 힘든 정세를 작품의 분위기로 전하며 긴장감을 끌어낸다면, [인사이드 잡]은 관련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알기 쉽게 차근차근 풀어놓아 친절한 안내서처럼 다가온다. 상황을 이해하게 될수록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다가올 위기를 보지 못한 채 나 몰라라 했던 정부와 금융권에 분노가 치민다. 하루아침에 집과 직장을 잃은 보통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더욱 그렇다.

마진 콜 : 24시간, 조작된 진실 Margin Call, 2011

이미지: (주)팝 파트너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일어나기 하루 전, 앞으로 도래할 엄청난 충격을 먼저 알아차린 금융회사에서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극중 회사는 골드만삭스라는 소문이 많다. [올 이즈 로스트], 넷플릭스 영화 [트리플 프런티어]를 연출한 J.C 챈더 감독이 맡고, 제레미 아이언스, 데미 무어, 사이먼 베이커, 재커리 퀸토, 케빈 스페이시 등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회사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위험을 인지한 상품을 판매하는 모습은 현실적이라 섬뜩하며, 큰 위기를 극복한 후 필요 없는 인원을 해고하는 모습은 냉정하다. 세계를 뒤흔들 금융위기 앞에 고객들에게 리스크를 말하지 않고, 자신들의 살 길만 챙겼던 당시 기업들의 이중적인 태도가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2013

이미지: (주)우리네트웍스

1990년대 대규모 주식 사기를 쳤던 조던 벨포트의 자서전 『월가의 늑대』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다.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셔터 아일랜드] 이후 다시 만났고, 조나 힐, 매튜 맥커너히, 마고 로비가 출연했다. 조던 벨포트 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또 한 번 인생 연기를 보여줬고, 마고 로비는 이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사기, 집착, 배신 등 조던 벨포트가 행하는 모든 것은 부도덕하며 추악하다. 결국 조던의 부정은 올곧은 수사관의 노력으로 저지당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수사관은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는 모습이 ‘있는 자에게 관대한’ 현실의 치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함을 더한다. 한편 179분의 긴 러닝타임과 높은 수위로 아랍 에미리트에서 40분가량 삭제하고 개봉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라스트 홈 99 Homes, 2014

이미지: (주)브리즈픽처스

주택 대출금 연체로 단 2분 만에 홈리스로 전락한 주인공 데니스 내쉬가 악덕 부동산 브로커 릭 카버를 만나 부조리한 방법을 배운 뒤 다른 사람의 집을 뺏으며 돈을 벌어야 하는 비극의 순환을 그린 영화다. 

[라스트 홈] 역시 앞에 소개한 영화처럼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배경이며, 이로 인해 순식간에 집을 잃은 일반인들의 비극을 좀 더 구체화시킨다. 적자생존의 논리와 허점 많은 제도 앞에서 연민은 사치스럽다는 냉정한 메시지가 서늘하게 다가온다. 참고로 [마진 콜] – [빅쇼트] – [라스트 홈]이 연관 관계가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함께 보면 더욱 의미 있을 듯하다. 

보일러 룸 Boiler Room, 2000

이미지: New Line Cinema

대학을 중퇴한 세스 데이비스가 청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사기 주식 중개업에서 일하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여담으로 지금은 할리우드 대표 배우가 된 지오바니 리비시, 빈 디젤, 벤 에플렉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야기의 소재나 주인공의 모습이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청년 버전 같은 느낌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객에게 팔았던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어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어도 이익만을 챙기는 주식 브로커들의 냉혹함이 실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섬뜩함은 더해간다. [보일러 룸]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사기 주식이지만, 이 같은 일화는 현실의 합법적인 시장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작전, 2009

이미지: (주)쇼박스

주식판 ‘타짜’라고 불리며, 한국영화 최초로 주식 작전을 다룬 영화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작전 세력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왜 개미들이(일반 주식투자자)들이 돈을 벌 수 없는지, 주식 시장의 구조를 재미있고도 냉정하게 그려냈다. [로봇, 소리] 이호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박용하, 김민정, 박희순, 김무열이 출연해 맛깔난 대사와 주식이 매매되는 찰나의 순간에 운명이 달라지는 캐릭터들을 잘 표현했다.

개미들이 작전 세력에 어떻게 당하는지 폭탄주를 만드는 방법을 통해 설명하는 장면은 인상 깊다.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폭탄주의 양이 점점 커지고 마지막에 먹는 사람만 고욕인 것처럼, 주가 역시 작전 세력들의 계략으로 불어나지만 정작 실체는 없고, 개미들을 유혹하기 위한 함정이었을 뿐이다. 영화의 메시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이 장면을 통해 가장 공정해야 할 시장에서 있는 자들의 편법과 부도덕이 난무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월 스트리트 Wall Street, 1987

이미지: 20th Century Fox

패기 넘치는 증권 회사 사원 버드 폭스는 악명 높은 금융가 고든 게코를 만나 법망을 피해 돈을 버는 방법을 배우고 부자가 되지만 아버지가 운영하는 항공사를 두고 두 사람의 마음은 완전히 달라진다. 아버지를 돕고 싶은 버드와 그 마음조차 이용하려는 게코의 계략이 부딪힌다.

월가의 달콤한 환상과 처절한 현실을 그린 [월 스트리트]는 [74년생,] [플래툰] 등 올리버 스톤 감독의 대표작이자 경제 소재 관련 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다. 동일한 목표를 위해 달려온 파트너지만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비즈니스 관계의 냉정함을 잘 보여준다. 참고로 찰리 쉰의 실제 아버지 마틴 쉰이 극중 아버지 역으로 등장한다. 2010년, 23년 만에 속편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가 나오긴 했지만 1편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돈, 2019

이미지: (주)쇼박스

부자가 되고 싶은 신입 주식 브로커가 베일에 싸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를 만나 엄청난 돈을 벌지만 수상하게 여긴 금융감독원의 추격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부당거래], [베를린] 조감독 출신 박누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이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돈]이라는 제목답게 돈의 노예로 몰락하는 인간 군상들을 잘 담아낸다. 금융 범죄를 다룬 영화에서 주인공이 정의로운 수사관이 아닌 이상 그 역시도 비리에 몸담고 있어 마냥 응원하기 힘든 한계가 있는데, [돈]은 역으로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건지 질문을 던진다. 사회와 양심이 원하는 정답은 있지만, 고민의 시간은 의외로 길 것이다. 그런 고민에서 오는 씁쓸함과 경각심 때문에 이러한 영화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