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아쉬운 점을 꼽자면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소재의 이야기가 반복되고 배우들 역시 전작들과 이미지가 겹칠 때가 빈번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식상하고 뻔한 작품이 비일비재했던 한국 영화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피로도를 유발하는 낡은 화법을 버리고 신선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 연이어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이목을 집중시킨다. 참신한 화법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한국영화를 살펴본다.

기생충 – 예상하지 못했던 장르의 변화구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한 작품에 여러 장르를 넣어 결국 이도 저도 되지 못한 졸작들이 많다. 괜히 “하나만 잘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투수 봉준호라면 다르다. 봉준호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장르를 상황에 맞게 던져 [기생충]이라는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기생충]의 전반부는 생계형 범죄 코미디로 소소한 웃음이 가득하다. 전원 백수로 살 길이 막막한 기택(송강호) 가족이 박사장(이선균)의 집에 취직하는 모습은 영악하면서도 코믹하다. 하지만 후반부 지하 벙커가 드러나고 문광(이정은)의 숨겨진 남편 근세(박명훈)가 등장하면서 장르는 완전히 달라진다.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 기택(송강호) 가족과 문광 부부의 오싹한 혈투가 시작되고, 웃음기 사라진 스릴러로 전환된다. 이 같은 변화구로 [기생충]이 전하고자 하는 빈부격차의 문제는 더욱 부각되며, 해외에서도 “마치 우리나라 문제 같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찬사를 받았다.

엑시트 – 영웅과 신파 없는 재난 영화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재난 영화하면 빠질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길 예상했다는 듯이 행동하는 영웅이 등장하고, 구구절절 사연은 기본 주요 등장인물이 희생하며 신파 눈물을 쏟아낸다. 

하지만 [엑시트]는 재난영화의 식상한 클리셰를 영민하게 비껴간다. 주인공이 사람들을 구하거나 눈물 흘리는 장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영웅적인 희생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 용남(조정석)과 의주(윤아)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나도 살고 싶었는데…”라는 솔직한 속마음을 내비치며 인간미를 더한다. 주인공들의 현실적인 고군분투는 자연스레 공감대를 형성하고 응원의 마음을 들게 한다. 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 뛰고 또 뛰는 용남과 의주는 고달픈 청춘의 현실과 겹치기도 한다. 영웅과 신파 없이도 [엑시트]가 성공한 이유는 생존에 집중한 간결한 연출을 바탕으로 동시대 청년을 위로하고 응원하며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윤희에게 – 담담하게 윤희의 사랑을 응원하는 법

이미지: (주)리틀빅픽처스

엄마 윤희(김희애) 앞으로 도착한 편지를 몰래 본 딸 새봄(김소혜)이 발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제안한다. 편지의 발신인은 다름 아닌 윤희의 비밀스러운 첫사랑. [윤희에게]는 여타 퀴어 영화와 달리 담담한 어조로 현실의 고통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첫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은 당시 가족들의 편견으로 용기 내지 못했던 지난 세월의 고통을 털어놓는 계기가 되고, 윤희와 새봄의 서먹했던 모녀 관계를 회복하는 긍정적인 변화도 이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쉽사리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이 땅의 모든 윤희에게 응원을 보내는 사려 깊은 연출이 빛난다.

벌새 – 10대 성장드라마 그 이상의 의미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10대의 성장을 다룬 영화는 많다. 하지만 시대의 아픔까지 담으며 깊은 감동을 전하는 영화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벌새]의 등장은 반갑다. 

[벌새]는 14살 중학생 은희(박지후)의 성장통을 그리지만, 영화의 예고편은 유독 1994년이라는 시대 배경을 강조한다. 이 같은 이유에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 변화하는 은희의 성장을 그리는 것은 물론, 당시 있었던 실제 사고와 등장인물의 죽음을 연관시키기 위해서다. [벌새]는 세상의 일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섬세하게 담아내며, 은희와 같은 아픔을 겪은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치유를 건넨다. 흔한 성장드라마라고 생각했지만 영화의 의미는 예상보다 훨씬 묵직하고 사려 깊다.

극한직업 – 오직 코미디에만 집중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극한직업]은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경신한 [어벤져스: 엔드게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도 도달하지 못한 ‘2019 국내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1,626만(11월 27일 현재) 관객을 모으며 2019년 국내 흥행 1위는 물론 역대 흥행 2위에 올랐고, 매출액을 기준으로 보면 부동의 1위 [명량]을 앞선다. 

[극한직업]의 이 같은 대성공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동안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웃음 뒤에 눈물” 같은 공식을 답습하지 않고 코미디에만 집중했다는 점이다. 그런 집중력이 전형적인 한국영화 흥행 공식을 탈피해 유쾌한 웃음을 만들어냈고, 자연스레 기대 이상의 입소문이 불면서 대박 성공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