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HBO, AMC, 넷플릭스

지난 10년간 방송계는 다른 어떤 분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센 변화에 직면했다. 넷플릭스가 온라인 DVD 대여 서비스에서 세계 최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부상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이,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스몰 스크린 진출이 활발해졌고, 신작 드라마는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쏟아지고 있으며, 시청 패턴은 주 단위에서 밤샘 주행으로 옮겨갔다. 거대 기업 디즈니와 애플이 이제 막 스트리밍 플랫폼에 발을 들인 만큼 2020년 이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모른다. 2010년대를 돌아보며 방송계에 큰 영향력을 미친 TV 시리즈를 살펴본다.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2011~2019) – 대작 드라마 경쟁에 불을 붙이다
이미지: HBO

마지막 시즌이 실망스럽다 해도 앞으로 10년 이내 제2의 ‘왕좌의 게임’이 나올 수 있을까? 작가 조지 R.R. 마틴의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스몰 스크린으로 옮긴 [왕좌의 게임]은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 [어벤져스]와 [스타워즈] 부럽지 않는 명성을 얻으며, 드라마 제작 환경에 규모의 변화를 불러왔다. 가상의 대륙 웨스테로스를 무대로 벌어지는 권력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대서사시가 HBO의 과감한 투자 덕분에 웅장하게 재현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많은 제작비를 들인 TV 시리즈가 선보였지만, [왕좌의 게임]의 대성공은 경쟁사에게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적극적인 넷플릭스를 비롯해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한 대작 드라마 제작이 활발해졌다. 넷플릭스는 최근 헨리 카빌 주연의 판타지 드라마 [더 위쳐]를 선보였고, 아마존은 역사상 가장 값비싼 드라마가 될지 모를 [반지의 제왕]을, 디즈니 플러스는 튼튼한 팬덤을 기반에 둔 MCU와 스타워즈 시리즈를 제작 중이다.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 2010~) – 좀비 아포칼립스의 대중화
이미지: AMC

소수의 팬들이 즐겼던 좀비물을 대중화시킨 작품을 말할 때 빠짐없이 언급되는 드라마 [워킹 데드]. 2010년 가을, 시청자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릭이 병실 문을 빠져나와 맞닥뜨린 황폐화된 세상에 다 같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깊은 혼란에 빠졌다. 속도는 느릴지언정 환한 대낮에도 목숨을 위협하는 워커는 생생하게 재현한 특수효과를 만나 잔혹한(혹은 징그러운) 존재감을 뽐냈고, 저마다 서사가 있는 생존자들은 시청자들의 애정 어린 지지를 받았다. 현재 시즌 10까지 이어오는 동안 인기 캐릭터가 하차하고 전개가 늘어지면서 인기는 예전보다 못하지만, 자체 스핀오프를 비롯해 [아웃캐스트], [Z 네이션], [더 스트레인], [아이 좀비], [애쉬 vs 이블 데드] 등 호러 TV 시리즈의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2013~2018) – 신흥 미디어 강자 넷플릭스의 일등공신
이미지: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카드]가 없었다면, TV 산업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데이빗 핀처와 (스캔들 이전) 케빈 스페이시라는 스타 파워를 내세우고, 과감하게 전편을 통째로 공개한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TV 감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전까지 매주 순차적으로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전통적인 시청 방식에 반하는,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시청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낌없는 투자로 높은 완성도까지 갖춰 에미상 후보에 오르고, 오늘날 빈지워칭(Binge watching)의 원조가 됐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인기는 하락하고 스캔들까지 터져 치명상을 입었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는 지난 10년간 TV 산업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American Horror Story, 2011~) –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바꾸다
이미지: FX

라이언 머피 사단의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TV를 보는 방식을 바꿀 때,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2011년 첫 선을 보인 이래, 매 시즌 호러 컨셉에 맞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스타일리시한 영상, 호화로운 멀티캐스팅을 앞세워 서사의 연속성보다 주제나 장르에 집중하는 앤솔로지의 매력을 극대화해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다. 팬들 사이에 [AHS(아호스)]라 불리며 대표적인 호러 드라마로 자리 잡고, 이후 스핀오프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와 [트루 디텍티브], [파고], [더 테러], [캐슬록]과 같은 앤솔로지 시리즈 제작 붐에 영향을 미쳤다.

살인자 만들기(Making a Murderer, 2015~2018) – 범죄 다큐 시리즈 전성기를 열다
이미지: 넷플릭스

2015년 공개된 [살인자 만들기]는 18년 동안의 억울한 옥살이와 증거 조작 의혹, 전례를 찾기 힘든 법정 싸움을 다루어 공개 직후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스티브 에이버리라는 남자가 겪은 이야기는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며, 사건을 둘러싼 사법제도의 허점은 그동안 믿어왔던 법체계에 혼란을 가져왔다. [살인자 만들기]는 단지 한 남자의 논쟁적인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범죄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2018년 3년 만에 두 번째 이야기를 공개한 [살인자 만들기 2]를 비롯해 [천사들의 증언], [계단: 아내가 죽었다], [이블 지니어스: 누가 피자맨을 죽였다?], 가장 최근 공개된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인터넷 킬러 사냥]까지 사람들의 어두운 갈증을 충족하는 놀랍고 충격적인 범죄 다큐 시리즈가 공개되고 있다.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2016~) -‘뉴트로’의 가장 성공한 예
이미지: 넷플릭스

지난 10년간 영화와 TV 쇼는 1980년대에 대한 향수를 부지런히 내비쳤다. 그 시절 인기를 끈 추억의 영화를 리메이크, 리부트 형식으로 새롭게 재편하거나 경의의 마음을 담아 오마주하고, 친숙한 멜로디와 장면들로 지난날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넷플릭스 인기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는 레트로 혹은 뉴트로로 불리며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은 트렌드에 새로운 정점을 찍었다. 가상의 마을 호킨스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현상은 80년대를 풍미했던 대중문화의 추억이 가득하고, 동시에 흥미로운 서사와 캐릭터를 내세워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도 사로잡았다. 향후 몇 년 동안 [기묘한 이야기]는 1980년대 미디어에 대한 향수를 담은 대표적인 2010년대 작품으로 간주될 것이다.

애로우(Arrow, 2012~) – TV에서 훨훨 나는 DC 영웅들
이미지: CW

21세기는 슈퍼히어로 전성시대다. 마블이 빠른 속도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확장하고 슈퍼히어로 영화 시장을 점령할 때, 스몰 스크린에선 제작자 그렉 벌란티가 주도하는 CW의 애로우버스가 영역을 확장해갔다. 애로우버스의 중심이자 가정 먼저 선보인 [애로우]는 영화처럼 스타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고 규모도 화려하지 않지만, 다크 히어로의 탄생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첫 방송에서 4백만 가구가 시청해 CW에게 만족스러운 성과를 안겼고, 이후 [플래시], [슈퍼걸],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 올해 하반기 새롭게 선보이는 [배트우먼]까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였다. [애로우] 마지막 시즌을 맞아 12월과 1월에는 DC 코믹스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 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역대급 크로스오버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어 애로우버스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 2010~2015) – 세계를 홀린 영국 시대극
이미지: ITV

20세기 초 영국 상류층 사회를 다룬 [다운튼 애비]는 영국 TV 산업의 지형을 바꿀 만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시대극이다. 호화롭고 우아한 대저택을 무대로 업스테어스, 다운스테어스로 불리는 영국 귀족과 하인의 이야기를 다채로운 인물들을 내세우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차 쇠퇴하는 계급 문화를 낭만적인 시선을 담아 현실적으로 묘사해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다운튼 애비]의 식지 않은 인기는 드라마 종영 후 3년 만에 나온 영화에서 새삼 입증됐다. 지난 9월 [다운튼 애비] 영화 버전이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1억 9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예상보다 높은 성공을 거두었다.

셜록(Sherlock, 2010~2017) – 21세기 최고의 탐정 탄생
이미지: BBC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셜록은 그동안 여러 영화와 드라마로 재생산됐지만,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마틴 프리먼의 [셜록]만큼 열렬한 반응을 얻은 작품은 없다. 2010년 3부작으로 선보인 [셜록]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현재의 런던으로 옮겨와 뛰어난 지성과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진 21세기 셜록을 탄생시켰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다른 배우가 끼어들 여지없는 경이로운 연기로 고기능 소시오패스 셜록을 창조해 평단과 시청자의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났다. 2017년 시즌 4 이후 더 이상의 제작 소식은 없지만 팬들은 셜록과 왓슨이 다시 돌아오길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