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4주차 개봉작 리뷰

히트맨(HITMAN: AGENT JUN) – 유머 코드도 연기도 소나무처럼 한결같다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에디터 원희: ★★☆ 권상우가 주연을 맡아 그 맛이 더욱더 진해진 액션 코미디 영화. 전직 암살 요원으로 국정원에서 탈출해 웹툰 작가가 된 준이 어느 날 술김에 자신의 과거를 그린 작품이 대박이 나면서 국정원과 테러리스트 모두의 표적이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웹툰 소재를 다루면서 이야기 사이사이에 독특한 색감의 애니메이션을 자연스럽게 삽입한 연출이 돋보인다. 권상우의 역량을 충분히 살려서 액션 연기를 박진감 넘치게 담아낸 점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코미디의 결이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복고풍이라기보다는 올드한 감성에 가깝게 느껴진다. 특히 형도 역이 과하게 소리치고 욕설하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초반부의 신선함은 사라지고 후반부로 갈수록 늘어진다는 인상을 준다.

미스터 주: 사라진 VIP(MR. ZOO: THE MISSING VIP) – 컨셉이 전부다

이미지: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에디터 혜란: ★★ 국정원 에이스 요원 태주가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동물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코미디. 동물과 소통한다는 흥미로운 콘셉트,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출연, 쟁쟁한 스타들의 목소리 출연에 눈길이 간다. 그런데 이 때문에 영화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B급 코미디를 노린 듯하지만 전체관람가 관객도 실소를 터뜨릴 유치한 개그 코드엔 웃음이 터지지 않는다. 군견 ‘알리’를 제외하곤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고, 배우들의 ‘몸’연기로 극복하려는 시도는 한계가 보인다. 차라리 유치해도 착하기만 하면 됐을 텐데, 15세 관람가라고 해도 불만 없을 잔인한 장면은 영화의 톤도 바꿔놓는다. 결국 코미디도, 드라마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으니, 컨셉이나 출연진이 아깝다는 생각만 든다.

남산의 부장들(The Man Standing Next) – 실화를 영화에 담는 올바른 답안지

이미지: (주)쇼박스

에디터 영준: ★★★★ 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을 뒤흔든 총성이 울리기까지의 과정을 서늘하게 풀어낸다. [남산의 부장들]은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 영화다. 이런 류의 작품은 픽션에 초점을 두는 실수를 범하기 쉬운데, [남산의 부장들]은 실제 일어난 사건에 변화를 주기보다 인물의 감정 변화에 집중하는 선택을 통해 역사 왜곡 문제에서 영리하게 벗어난다. 영화는 [공작]을 연상케 할 만큼 시종일관 담담하고 차갑게 흘러가는데, 이 또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있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절제되었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영화 음악, 인물들의 권력관계와 감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촬영 구도, 특정한 정치색이 없이 온전히 관객이 역사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 결말까지 전부 [남산의 부장들]이 인상적인 작품이 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다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더해진 ‘첩보’ 요소가 다소 심심했던 점과 서현우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의 활용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스파이 지니어스(Spies in Disguise) – 특별하진 않지만 기본에 충실한 ‘새상’ 구하기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에디터 영준: ★★★ 단편 [피죤: 임파서블]에서 모티브를 따온 첩보 애니메이션. 괴짜 연구원 월터가 의도치 않게 비둘기로 변해버린 최고의 스파이 랜스 스털링과 힘을 합쳐 세상을 구하는 활약상을 담았다. 전체적인 플롯은 가족 애니메이션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스파이 지니어스]는 ‘팀워크의 중요성’이나 ‘폭력으로 평화를 지키려는 모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했다는 게 인상적이다. 또한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화려한 액션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각종 첨단 기기, 매력적인 비둘기 캐릭터부터 아이와 어른 모두의 취향을 저격하는 유머와 트렌디한 음악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랜스에 비해 월터의 캐릭터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고 무언가 ‘빵’ 터지는 부분이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첩보’와 ‘가족 애니메이션’ 장르의 기본에 충실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사마에게(For Sama) – 눈물 대신 피가 흐르는 알레포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에디터 현정: ★★★★ 시리아 난민에 거부감을 가지면서 정작 왜 그들이 고국을 떠나야 했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마에게]는 시리아 문제를 근원적으로 살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동안 전쟁의 비극을 알리는 영상과 달리, [사마에게]는 폐허가 된 알레포에서 삶을 이어가던 개인(와드 알-카팁)이 카메라를 들었기 때문이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폭격을 온몸으로 겪고 참혹한 현실을 목격하고 이를 알리려는 개인의 절박한 의지가 기존 작품과 차별화된 감상을 만들어낸다. 특히 전쟁 중에 출산한 딸 사마에게 보내는 영상 일기라는 점에서 더더욱 마음이 뜨거워진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딸에게 미안함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감독처럼 용기와 의지로 버티고 살아가는 알레포 사람들은 숭고하고 감동적이다. 분명 [사마에게]는 무섭고 끔찍하고 슬픈 순간이 많은 전쟁 다큐멘터리지만, 강인한 생의 의지는 고통을 마주하게 이끌며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Eric Clapton: A Life in 12 Bars) – 고통을 구원한 음악

이미지: 영화사 진진

에디터 현정: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에릭 클랩튼의 삶과 음악을 조명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음악 ‘Tears In Heaven’이 나오기까지 굴곡진 여정에 집중한다. 릴리 피니 자눅 감독은 성공한 뮤지션보다 불행과 고통이 반복된 개인의 삶에 더 관심을 둔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슬픈 가족사, 절망만 안긴 세기의 사랑, 나락으로 떨어뜨린 알코올 중독,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 등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복잡한 개인사에 포커싱을 맞춰 에릭 클랩튼의 고통에 내밀하게 다가선다. 이 과정은 음악이 절망과 고통, 혼돈이 교차하는 개인의 삶을 구원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놀랍도록 생생하게 복원한 각종 영상 자료와 인터뷰, 음악을 적극 활용하면서, 드라마틱한 개인사를 자극적으로 부풀리지 않고 담담하게 거리를 둔 점이 인상적이다.

마리오 보타: 영혼을 위한 건축(Mario Botta. The Space Beyond) – 담담하고 위대한 ‘건축학개론’

이미지: 하준사

에디터 홍선:★★★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한국의 남양 성모 마리오 대성당 설계를 맡고 작업하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진행되는데, 성지 건축을 위해 다른 장인을 만나고 협업하는 마리오 보타의 모습을 담는 동시에, 건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전하는 시간도 함께 마련한다. 특히 아파트, 오피스 등 기능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건축보다 성지 건축에 유독 관심을 내비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은 한 분야에 통달한 장인의 기품과 열정의 위대함을 동시에 전한다. 영화는 드라마틱한 전개 없이 담담하게 작업하는 모습만 담아 심심한 감은 있으나, 자신이 만든 건축물을 배경으로 멀리서 담은 영상미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과 어울려 뭉클한 감정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