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눈물을 흘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부러 울리려고 작정한 것도 아닌데,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빠져들다 보면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그들이 놓인 상황이 힘겹고 절망적일수록 감정이 마구 요동치고 짠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되어 눈물을 글썽였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드라마를 보다 마음이 부서질 것 같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아래의 리스트를 확인해보자. 훌쩍였던 순간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디스 이즈 어스(This Is Us) 시즌 2 – 14화 ‘Super Bowl Sunday’

이미지: NBC

‘생일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디즈 이즈 어스]는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와 입양아, 그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부모로 구성된 피어슨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그린다. 아이들의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긴 세월에 걸쳐 펼쳐지는 이야기는 희로애락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고 매번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다. 시즌 1부터 미스터리였던 잭의 죽음이 밝혀지는 두 번째 시즌 ‘Super Bowl Sunday’ 에피소드는 마음이 미어지는 슬픔이 절정을 이룬다. 화마에 휩싸인 집에서 가족들과 빠져나온 잭은 케이트가 아끼는 강아지를 구하기 위해 다시 들어가 무사히 구출해 나오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연기를 흡입하는 바람에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왜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오랜 시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는지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아픔이 밀려온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Unbelievable) 8화

이미지: 넷플릭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분노와 좌절, 절망, 슬픔으로 시작해 용기와 희망으로 나아간다. 성폭행 허위 신고로 긴 시간 부당한 대우를 받은 마리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먼 곳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쓴 캐런과 그레이스 형사 덕분에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오랜 삶을 뒤로하고 떠나는 마리가 캐런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전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뭉클한 감정을 자아낸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져버렸던 자신에게 모든 걸 바로잡고 좋은 일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수화기 너머로 오가는 짧은 대화에서 눈빛과 표정, 목소리만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케이틀린 디버와 메릿 웨버의 연기도 이 순간을 더욱 멋지게 한다.

리버데일(Riverdale) 시즌 4 – 1화 ‘In Memoriam’

이미지: 넷플릭스

2019년 3월 4일(현지시간), [리버데일]에서 아치의 아버지 프레드를 연기한 루크 페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이별을 생각조차 않았던 드라마에서 다시 가슴 아프게 나타나는데, 시즌 4 첫 에피소드는 프레드의 죽음으로 시작해 진심을 담아 그를 추모하고 마치 곁에 있는 듯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독립기념일 축제 준비로 들뜬 아치는 평소처럼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가 누군가를 돕던 중 뺑소니 사고로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이 예기치 못한 이별에 모두들 비탄에 잠긴다. 이야기는 분명 프레드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아치와 친구들을 비추며 흘러가지만, 현실과 묘하게 중첩되면서 슬픔에 빠진 배우들의 표정이 실제처럼 느껴진다.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The Chilling Adventures of Sabrina) 파트 2 – 2화 ‘The Passion of Sabrina Spellman’

이미지: 넷플릭스

첫사랑이 무너졌을 때의 절망감을 기억한다면,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에서 의외로 마음 아픈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사브리나는 인간과 마녀의 갈림길에서 하비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하비가 먼저 멀리하려 했던 과거와 달리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마음이 더 짠하다. 두 사람은 과제 연습을 하던 도중 순식간에 예전의 감정으로 돌아가지만, 사브리나는 어두운 운명을 직감하고 하비를 밀어내기로 한다. 하필이면 두 사람이 연습을 위해 읽었던 책은 비극적인 이별을 맞이한 연인의 이야기를 그린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글로우(GLOW) 시즌 2 – 7화 ‘Nothing Shattered’

이미지: 넷플릭스

[글로우]는 저마다 인생에서 씁쓸한 패배와 좌절을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떠들썩하고 유쾌한 코미디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때때로 마음이 짠해질 때가 있는데, 시즌 2에서 루스와 데비가 서로에게 억눌러 왔던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이다. 루스는 데비와 경기 도중 8주~10주간 깁스를 해야 하는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흘렀던 만큼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건 명백하다. 다른 동료들이 다녀간 후에 느지막하게 데비가 나타났을 때에도 그 긴장감은 여전하다. 곪을 대로 곪은 감정이 터질 때가 된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그들의 관계를 갉아먹고 있던 원망과 질투, 서운한 마음을 한꺼번에 폭발하며 눈물을 보인다.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시즌 3 – 8화 ‘Chapter Eight: The Battle of Starcourt’

이미지: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즌 3 마지막 에피소드는 가슴 아픈 이별이 연이어 등장한다. 첫 번째 이별은 드라마에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비호감의 이미지로 각인됐던 (맥스의 이복 오빠) 빌리의 죽음이다. 빌리는 시즌 초반에 마인드 플레이어에 지배당하면서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만, 일레븐이 늘 울퉁불퉁 어둡기만 했던 그에게 행복한 기억을 보여주면서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일레븐이 보여준 해안가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안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데, 빌리만 그런 게 아니다. 조이스와 마을의 비밀을 추적하던 호퍼 역시 일레븐과 호킨스 마을을 지키고자 몸을 던져 뒤집힌 세계의 문을 닫는다. 3개월 후 호킨스 마을을 떠나는 일레븐이 호퍼가 차마 전하지 못했던 편지를 읽는 모습은 마음이 저릿저릿하게 감동적이다.

핸드메이즈 테일(The Handmaid’s Tale) 시즌 2 – 10화 ‘The Last Ceremony’

이미지: hulu

[핸드메이즈 테일]은 어둡고 암울하며, 어떤 때는 고개를 돌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아프게 하는 준(오프레드)의 이야기는 극단적인 것 같아도 현실을 돌아보면 마냥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답답하고 분통이 터질 때가 많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현실에도 희망의 빛이 들기도 한다. 준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처음으로 딸 한나와 재회하는 장면이 그렇다. 워터폴드의 도움으로(그는 전날 준을 강간했다) 딸과의 짧은 만남이 허락된 준은 마침내 훌쩍 자란 한나를 만나지만, 그동안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을 보상하기에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왜 더 열심히 찾지 않았냐는 원망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준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었던 한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 시즌 15 – 19화 ‘Silent All These Years’

이미지: ABC

현재 시즌 16가 방영 중인 [그레이 아나토미]는 긴 역사만큼 눈물 나게 했던(혹은 속 터지게 했던) 에피소드가 셀 수 없이 많다. 솔직히 [그레이 아나토미]의 팬들은 아끼고 지지했던 캐릭터를 갑작스럽게 보내야 하는 등 여러 감정적인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강력한 드라마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 사례로, 2019년 3월 방영된 19화 에피소드를 들 수 있다. 조와 애비의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처럼 놀랍고 감정적인 울림이 가득하다. 친부가 데이트 강간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조 카레브가 성폭행을 당하고 홀로 병원을 찾은 애비를 배려하며 돌보는 모습은 교본으로 삼아도 좋을 만큼 사려 깊다. 특히 수술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애비가 안심할 수 있도록 여성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데, 이를 애비의 시선으로 보여줌으로써 그가 느꼈을 안도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When They See Us) 2화

이미지: 넷플릭스

무죄로 판결 난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건’을 다룬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는 가슴 아픈 분노를 유발한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장시간 경찰서에 갇혀 경찰의 무자비한 심문을 받는 1화부터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치밀어 오른다. 성폭행 사실을 거짓 자백하도록 강요당한 소년들이 법정에 서는 2화 역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마침내 배심원 평결이 나오고 어린 소년들에게 유죄가 선고되는 순간, 카메라는 레이먼드, 앤트론, 유세프, 케빈, 코리 와이즈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울부짖는 가족들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풍경화처럼 차례로 훑어낸다. 그 순간 무슨 말이 더 필요 있을까.

브로드처치(Broadchurch) 시즌 1 – 8화

이미지: ITV

영드 특유의 우울함에 푹 잠기고 싶다면 [브로드처치]만한 것도 없다. 올리비아 콜먼과 데이비드 테넌트가 주연을 맡은 [브로드처치]는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해안가 마을에서 발생한 어린 소년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룬다. 카메라는 느린 호흡으로 소년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따라가며 돌이킬 수 없는 사건 뒤에 숨은 잔혹한 비밀을 한 꺼풀씩 드러낸다. 마침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시즌 내내 안고 있던 우울한 공기가 한 번에 폭발하는 듯하다. 범인의 정체가 예상하지 못한 조로 밝혀지면서 충격과 절망에 주저앉는 밀러의 모습은 너무나 생생해서 고통이 전이되는 기분이다. 사건은 수습되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나지만 깊은 슬픔이 빠져나가는 데는 오래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