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 영화의 성지였던 선댄스 영화제는 몇 년 사이에 대형 배급사와 스트리밍 서비스들도 눈에 불을 켜고 주목하는 중요한 영화제로 거듭났다. [위플래시]와 [겟 아웃],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등의 ‘선댄스 출신’ 작품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작품성까지 인정받는 게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국내 영화팬들이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미나리]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이 작품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연일 뜨거운 성원을 받는 중이다.

[미나리] 외에 올해 어떤 작품들이 선댄스 영화제를 찾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을까? 지난 23일에 개막해 2월 2일 막을 내린 2020년 선댄스 영화제의 화제작 10편을 소개한다.

딕 존슨 이즈 데드 (Dick Johnson is Dead)

이미지: 넷플릭스

커스틴 존슨의 다큐멘터리 영화. 치매 증상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노년의 아버지 딕 존슨과 함께 다양한 방법의 죽음을 구상하고 연출한다. 피할 수 없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카메라에 담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한 커스틴 존슨의 선택과 영화 특유의 코미디에 관객과 평단 모두 박수를 보냈으며, 몇몇 평론가들은 “선댄스를 넘어 올해 최고의 영화”라며 극찬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더 파더 (The Father)

이미지: Lionsgate UK

[딕 존슨 이즈 데드]와 마찬가지로 ‘치매 걸린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지만, 결이 사뭇 다른 작품이다. 안소니 홉킨스와 올리비아 콜먼이 이끄는 [더 파더]는 고집불통 아버지와 치매가 점점 심해지는 그를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모르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카데미 수상자답게 두 배우의 연기가 빛나며, 치매를 겪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원작 연극을 쓴 플로리앙 젤레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미스 아메리카나 (Taylor Swift: Miss Americana)

이미지: 넷플릭스

테일러 스위프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가수 겸 작곡가로 팝 아이콘으로 거듭난 모습뿐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한 명의 여성으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애프터 틸러] 등 다양한 수작 다큐멘터리를 연출해 에미상을 수상한 래나 윌슨의 신작은 지난 3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더 위핑 우먼 (La Llorona)

이미지: La Casa de Production

[요로나의 저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남미 설화 ‘우는 여인’을 모티브로 한 공포 스릴러. 수십만 명의 마야인이 학살되었던 과테말라 내전에 가담해 법의 심판을 앞둔 노년의 퇴역 군인이 밤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점프 스케어가 난무하는 공포 영화 트렌드와 달리 과거의 과오를 부정하려는 이들이 겪을 심리적 압박감과 공포감을 깊이 있게 다루어 호평을 받는 중이다.

더 네스트 (The Nest)

이미지: BBC Films

[마사 마시 메이 마릴린] 이후 9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온 션 던킨의 연출작. 1980년대를 배경으로, 미국의 사업가 가족이 영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겪는 예상치 못한 고립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다. 타지로 떠난 이들이 느낄 감정 변화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족 문제를 섬세하고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호평뿐 아니라, 주드 로와 캐리 쿤의 연기 호흡 역시 빛난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받았다.

프라미싱 영 우먼 (Promising Young Woman)

이미지: Focus Features

[킬링 이브] 총괄 제작자 에머럴드 페넬과 캐리 멀리건이 합심한 색다른 복수극. 낮에는 평범한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밤에는 성 범죄를 저지르려는 남성에게 정의를 실현하는 이중생활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다. 상당히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복수극이라는 호평이 쏟아졌으며, 캐리 멀리건의 ‘인생 연기’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카질리언에어 (Kajillionaire)

이미지: Annapurna Pictures

낯선 조력자와 함께 항공사를 상대로 사기를 벌이려는 범죄자 가족이 겪는 이야기를 담은 범죄 드라마. 하이스트 무비지만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스토리가 인상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데이빗 린치 정도의 연출자가 아니라면 소화하지 못할 작품”이라는 호평도 눈에 띈다. 에반 레이첼 우드, 지나 로드리게스, 리차드 젠킨스, 데브라 윙거 주연. 2005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작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감독 미란다 줄라이가 연출했다.

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이미지: Neon

비관적이고 허무주의로 가득한 남녀의 만남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원치 않는 결혼식에 참석한 두 사람이 행사를 빠져나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망치려는 계획까지 세우는 동안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는 내용이다. “누구보다 선댄스에 어울리는 멋진 로맨틱 코미디”라는 호평을 받은 것으로 보아 꽤나 신선한 작품인 듯하다. [브루클린 나인-나인], ‘론리 아일랜드’로 유명한 앤디 샘버그와 [파고] 크리스틴 밀리오티가 두 주인공을 연기한다.

졸라 (Zola)

이미지: A24

단편 [그레고리 고 붐]으로 선댄스 심사위원상을 거머쥐었던 자니크자 브라보의 연출작. 우연히 만난 식당 종업원 졸라와 성 노동자 스테파니가 여행을 떠나며 매춘, 살인, 자살 미수 등의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극히 영화같은 이야기지만, 놀랍게도 5년 전 ‘#TheStory’라는 해시태그로 시작된 아지아 킹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테일러 페이지, 라일리 키오 주연.

미나리 (Minari)

이미지: A24

북미에서 작품 활동 중인 정이삭의 다섯 번째 연출작. 재미교포 2세인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1980년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다수의 현지 매체에서 “올해 선댄스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매 회차 상영 직후 관객들의 기립박수까지 이어졌다고.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주연, 국내 개봉 소식은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