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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면 정말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지난 1월 15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머니게임]은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해도 집값 상승률을 따라갈 수 없는 구조적 모순에 처한 대한민국의 경제 현실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작년 가을 개봉한 [블랙 머니]처럼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베이스로, IMF를 소재로 한 또 다른 경제 영화 [국가부도의 날]처럼 국가적 경제 위기를 둘러싼 각 분야의 경제 관료의 신념과 갈등을 이야기의 주축으로 삼는다. 드라마는 고도의 경제 성장 이후 성과와 숫자만 최우선시하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악순환을 반복하는 경제 시스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의도는 좋다. 곳곳에 등장하는 경제 용어와 친숙하지 않아도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와 기업인, 중심 이야기가 되는 정인은행 매각을 둘러싼 논란은 제법 익숙하다. 그동안 언론 보도에서 숱하게 봐왔던 서민 경제를 멍들게 한 부조리한 현실의 판박이다. 하지만 좀처럼 [머니게임]이 전하는 이야기에 완전히 가닿지 않는다. 의욕이 앞서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여러 정부가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대책을 특효약처럼 남발했던 것처럼 무리한 설정과 굳이 흐름상 필요 없는 이야기가 끼어들면서 갈지자로 비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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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게임]은 신자유주의에 회의감을 느끼는 온건적인 소신파 채이헌 금융위 금융정책국 과장(고수), IMF 시절의 뼈아픈 가족사를 극복하고 오로지 능력으로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된 이혜준(심은경), 대한민국 경제 구조의 체질 개선을 위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허재 금융위 부위원장(이성민),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국가적 혼란을 초래하는 정인은행 매각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느닷없는 죽음

현재 중반(8화)까지 달려온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는 장르 이탈을 극의 동력으로 삼으면서 혼선을 빚는다는 것이다. 바로 1화와 6화에 등장한 두 번의 죽음이다. 허재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채병학 교수와 대립하던 중 우발적으로 낭떠러지로 밀어 살해하고, BIS 비율 조작에 관여한 정인은행 본부장 서양우는 그를 설득하려는 이혜준과 만나기 직전에 아파트에서 투신한다. 두 사람의 죽음은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금융 스캔들 이면의 냉혹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데, 그 과정에서 허재의 신념은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섬뜩하다. 하지만 내부의 이야기로 끌고 가도 충분할 서사에 죽음이라는 충격 요법을 가져올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것도 살인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BIS 조작, 먹튀 논란, 기술 유출, 엘리트 관료주의 등 살인이라는 범죄가 없어도 정인은행 매각과 관련된 이야기 진행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두 죽음은 향후 전개 과정에서 경제 드라마의 재미를 갉아먹는 걸림돌이 될 우려가 더 크다.

균형이 맞지 않는 중심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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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개의치 않을 정도의 강공을 택한 허재의 성격이 도드라지면서 그와 대척점을 이루는 채이헌과 이혜준의 소신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다. 특히 현재까지 본 채이헌은 경제적 신념보다 사람 좋은 직장 선배 정도로만 비쳐 캐릭터 구축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허재와 이혜준이 IMF라는 특수한 배경을 갖고 있기에 유리한 지점은 있으나, 그런 점을 감안해도 채이헌은 잘 생기고 밥 잘 사주는 친절한 직장 상사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뭉개져 있다. 허재와 손을 맞잡기로 한 8화 이후 위험한 공조에서 그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질지 두고 봐야겠다.

겉도는 서브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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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게임]은 회당 90분이라는 긴 분량 때문인지 앞서도 언급한 굳이 필요성에 의문이 드는 서사가 개입한다. 대표적으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혜준의 고모네 가족이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부도난 공장의 사장 갑수에게 모티브를 얻은 듯한 고모네 가족은 팍팍한 서민 경제를 대변하려는 듯하나 파편적이어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고, 특히 고모부 진수한은 무능한 관료주의보다 답답하기만 하다. 자영업자의 고충보다 한 방을 노리는 진수한의 잔꾀가 강해지면서 고모네 가족은 기획재정부의 유리천장에 고군분투하는 혜준을 더 힘겹게 하는 장치로만 머무를 것 같다.

뜬금없이 느껴지는 서사는 혜준의 고모네 가족만이 아니다. 지난 8화에서는 바하마 코리아 지사장 유진한의 유년 시절이 난데없이 개입해 당혹감을 안긴다. 거만하고 냉정한 투자자 유진한의 과거를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드라마는 그의 불우한 유년 시절을 불러와 마치 면죄부를 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유진한이 이혜준을 알게 된 이후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해도 신파적 과거를 끌어오는 시도는 영 달갑지 않다.

[머니게임]은 분명 흥미로운 시도다. 로맨스 혹은 범죄, 가족 서사 위주의 기존 드라마와 달리 경제를 소재로 삼아 차갑고 건조한 톤으로 서민 경제에 파장이 미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현실을 담아내려 한다. 하지만 몇몇 아쉬운 지점이 몰입을 방해하면서 드라마보다 먼저 경제 문제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블랙머니]를 길게 부풀린 이야기라는 인상이 더 강하다. [머니게임]이 그만의 독자적인 경제 드라마가 되려면 차별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8화는 꽤 중요한 분수령이 될 듯하다. 목표를 위해 희생을 불사하는 허재가 던진 화두에 (일단은) 공조라는 답을 택한 채이헌과 그에 배신감을 느꼈을 이혜준과 기재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다. 바람을 덧붙이자면, 앞으로 남은 이야기에선 자극적인 설정으로 이어가기보다 업무적인 충돌이나 갈등이 중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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