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한국 영화팬들에게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작품상을 비롯한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작년 5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놀라운 수상 행진과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기록한 것을 일일이 열거하기엔 지면이 모자라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기록한 성과를 중심으로 지난 1년간의 여정을 정리해본다.

한국영화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현재까지 200관왕에 육박한 [기생충]이 첫 번째로 거머쥔 트로피는 제57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다. 지난해 5월 [기생충]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공식 상영이 끝나고 8분간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페인 앤 글로리]와 함께 황금종려상에 가장 근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기대 속에 폐막식 날 봉준호 감독에게 시상식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이 왔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라는 결과와 함께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전까지 한국영화가 칸에서 거둔 최고 성과는 2004년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올드보이]였다. 국내외 매체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을 앞다투어 전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58년 동안 한국영화가 후보조차 들지 못한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한국영화 최초 프랑스 박스오피스 1위

[기생충]의 본격적인 해외 흥행 열풍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기생충]은 작년 6월 5일에 프랑스에서 개봉해 한때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1,000만 달러가 넘는 매출액을 기록해, 최근 15년 간 프랑스에서 개봉한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최고의 흥행 기록도 세웠다. 

한국영화 역대 개봉작 중 북미 박스오피스 1위

[기생충]은 토론토 영화제, 뉴욕 영화제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뒤 북미 현지에서 10월 11일 개봉했다. 롤아웃 방식(소규모로 개봉해 반응이 좋을 경우 점차 상영관을 늘리는 배급 방식)으로 단 3곳의 상영관에서 개봉했지만, 주말 동안 39만 3천 달러를 벌어들이며 북미 박스오피스 14위로 데뷔했다. 극장당 13만 달러를 벌어 2019년 미국 개봉작 중 극장 평균 수익 1위를 기록했다. 관객들의 호평과 굵직굵직한 수상 소식이 이어지면서, 2월 6일 현재 3,322만 매출액을 거두어 북미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종전 기록은 1,097만 달러를 기록한 ‘디 워’) 역대 북미 박스오피스 외국어 영화 흥행 성적도 [와호장룡], [인생은 아름다워], [판의 미로]에 이어 6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카데미 수상 결과에 따라 더 높은 순위도 기대해 볼만하다. 

한국영화 역대 월드와이드 최고 흥행

이미지: 박스오피스 모조

[기생충]은 프랑스와 북미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전 세계 누적 흥행 성적도 높아졌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은 현재까지 약 1억 6,311만 달러를 벌었는데 한국에서 7,233만 달러를, 나머지 9,000만 달러 이상은 해외에서 거둔 수익으로 집계된다. [기생충]은 1,009만 관객을 동원해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25위에 불과하지만(?), [극한직업]과 [명량]을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극장매출액을 기록한 한국영화가 되었다. 

한국영화 최초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은 아카데미 전초전이라고 불리는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한국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외국어 영화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것은 골든 글로브 역사상 몇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 기대를 모았던 감독상 수상은 [1917]의 샘 맨데스 감독이 차지했지만, 이후 많은 시상식에서 샘 맨데스 감독과 봉준호 감독은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아카데미 감독상 레이스를 이끌고 있다. 

한국영화 최초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

이미지: 네온 트위터

지난 1월 13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가 발표되었다. [기생충]은 한국영화 최초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프로덕션 다자인상, 국제영화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는데, 1962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아카데미에 출품한 이후 58년 만에 이룬 쾌거다. 북미 지역 비평가협회상부터 꾸준히 거론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외에 편집상, 프로덕션 디자인상 부문에도 후보에 올라 [기생충]이 가진 기술적인 성취도 아카데미 회원들로부터 인정받았다 볼 수 있다. 

외국어영화 최초로 미국편집자조합상(ACE) 편집상 수상

아카데미 후보 발표 이후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배우, 감독, 프로듀서 등 각 부문별 조합상 시상식이 미국에서 열린다. 조합상 시상식이 중요한 이유는 아카데미 투표 자격이 있는 미국 현직 영화인들이 여기에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1월 17일에 열린 미국편집자조합상(ACE)에서 [기생충]은 최우수 영화 편집상(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는데, 이는 한국영화 최초이자 ACE 70년 역사상 최초의 외국어 영화 기록이다.

외국어영화 최초로 미국배우조합상(SAG) 앙상블상 수상

이미지: 네온 트위터

1월 19일 미국배우조합상(SGA)에서 [기생충]은 외국어영화로는 처음으로 앙상블상을 수상했다. [기생충] 배우진들이 무대에 나오자 기립 박수를 쏟아지는 뜨거운 분위기 속에 시상이 진행됐다. 아카데미 레이스에서 SAG 앙상블상은 미국감독조합상(DGA), 미국제작자조합상(PGA)만큼 중요하게 여기는데,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투표 지분을 가진 분야가 배우 부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앙상블상은 배우들이 선정한 최우수 작품 격으로 향후 아카데미 작품상 가능성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수상의 의미가 더욱 크다. 

외국어영화 최초로 미국작가조합상(WGA) 각본상 수상

이미지: 네온 트위터

2월 1일 열린 미국작가조합상(WGA)에서 [기생충]은 외국어영화 최초로 영화부문 각본상을 수상했다.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등 주요 시상식에서 각본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차지했지만, WGA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작가조합 회원이 아니라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 [기생충]이 트로피를 가져감에 따라 아카데미 각본상을 노리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한국영화 최초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각본상 수상

이미지: BAFTA 유튜브

2월 2일(현지시각)에서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고,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 2개 부문을 수상했다. 각본상은 한국영화 최초의 수상이며 외국어영화상은 [아가씨] 이후 두 번째다. 특히 각본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함께 후보에 올라 거둔 결과로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가능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또한 영국에서 [기생충]은 2월 7일에 개봉하는데, BAFTA와 아카데미 캠페인으로 달궈진 열기가 흥행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영화 최초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

이미지: 아카데미 공식 트위터

2월 10일에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다시 한번 경이로운 ‘최초’를 달성했다. [기생충]은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그리고 작품상까지 4개 부문을 휩쓸었다. 각본상과 감독상은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이며, 작품상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어영화가 수상한 새 역사를 이뤘다. 할리우드 수상 예측 사이트인 골든더비에서 시상식 전 내놓은 전문가 결과에 따르면 [기생충]은 부문별로 1-2위권에 올라 어느 정도 다관왕 가능성은 내다봤지만,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동시에 수상해 이변을 일으켰다. 특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석권한 작품은 1955년 작품 [마티]이후 처음이라 한국영화사를 넘어 세계영화사에도 길이남을 족적을 남겼다.

이상으로 [기생충]이 최초로 달성한 지난 1년간의 여정을 되돌아봤다. 한국영화가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 트로피를 들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현실로 이뤄 낸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배우, 스탭들에게 한국영화 팬으로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