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소재 영화와 드라마가 사랑받는 건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으며, 지금 사는 사람들의 해석을 덧붙여 같은 사건을 다양한 해석으로 보는 즐거움도 제공한다. 이 글에선 1차 세계 대전 시기까지 서양사의 여러 순간을 소재로 한 시리즈를 소개한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결합된 형태부터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팩션 드라마까지 총 8편으로, 세계사의 여러 순간을 철저하게 분석하거나 풍부하게 해석했다. 그러니 사실과 같다, 다르다를 따지기보단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는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감상하시길 권한다. 모두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로마 제국 – 황제들과 혼란의 로마 제국

이미지: 넷플릭스

로마 제국의 역사를 ‘황제’를 중심으로 쓴 다큐드라마 시리즈로, 현재 시즌 3까지 제작됐다. 각 시즌마다 다른 황제를 다루며, 시즌 1은 우리에게 [글래디에이터]로 알려진 폭군 콤모두스, 시즌 2는 로마를 제정 국가로 만드는 데 일조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즌 3은 “미친 황제” 칼리굴라(가이우스)가 주인공이다. 로마 제국의 역사가 평탄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특히 후세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스캔들의 주역들이다. 역사학자의 코멘트와 내레이션 등 다큐멘터리적 부문에 집중하면서 드라마타이즈의 비중은 다른 작품보다 크지 않지만, 드라마, 영화 출연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을 활용해 퀄리티는 높은 편이다.

라스트 킹덤 – 바이킹의 영국 침략과 잉글랜드 왕국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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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킹덤]은 9세기부터 시작된 바이킹(데인족)의 영국 침략에 맞서 11세기 남부 잉글랜드의 7 왕국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과정을 그린다. 버나드 콘웰의 소설 《색슨 이야기》가 원작이며, 11세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되 가상 인물인 ‘베번버그의 우트레드’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11세기 실존 인물 ‘우트레드 더 볼드’가 모델이다). 우트레드는 앵글로 색슨 영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데인족에 납치된 후 바이킹으로 자라나, 앵글로 색슨과 데인족 모두이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드라마는 특유의 운과 실력을 무기삼아 무적의 전사로 거듭나는 우트레드의 모험담이나, 그와 웨섹스 알프레드 왕의 믿음과 의심으로 얼룩진 관계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아르나우의 성전 – 스페인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성당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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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성당’은 같은 도시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달리 낮고 넓은, 민중을 위한 성당으로 유명하다. [아르나우의 성전]은 이 성당이 지어지던 14세기 바르셀로나가 배경인 드라마로, 일테폰소 팔코네스의 베스트셀러 《바다의 성당》이 원작이다. 가상의 주인공 ‘아르나우’가 흑사병이 창궐하고 귀족 계급의 탄압이 극심했던 시기에 계급,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을 포용하고 신의를 지키고, 마침내 부와 성공을 거머쥐는 과정을 그린다. 어린 아르나우가 성당에 쌓을 돌을 어깨에 지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이후 도시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거부이자 시민의 대표가 된 노인 아르나우의 모습과 교차하며 감동을 준다.

오스만 제국의 꿈 –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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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5월 29일, 54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비잔틴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면서, (유럽의) 중세가 종말을 맞았다. [오스만 제국의 꿈]은 유럽 역사의 흐름을 바꾼 오스만-비잔틴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 집중한다. 젊은 정복군주 메흐메트 2세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와 전투 과정, 전술을 꼼꼼하게 재현했으며, 비잔틴과 오스만뿐 아니라 두 나라를 둘러싼 정세와 전쟁에 고통받는 일반 국민들의 삶에도 주목한다. 역사학자의 설명과 드라마타이즈가 섞인 형태로, 내레이션은 [왕좌의 게임] 찰스 댄스가 맡았다. 대사는 모두 영어지만 오스만 제국 인물은 터키, 콘스탄티노플을 지키는 제네바 용병은 이탈리아,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 배우를 캐스팅했다.

베르사유 – 17세기 프랑스 루이 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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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전제왕권 전성기의 상징, 루이 14세와 베르사유 궁전을 소재로 한 드라마. 루이 14세는 파리 외곽에 화려한 궁전을 건축하면서 귀족들의 배신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이들을 궁전에 머무르게 했고, 저항하는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또한 정복 전쟁을 통해 지배 권력 강화를 꾀했고,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정략결혼으로 외교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끊임없이 정부를 들이는 여성 편력도 자랑했다. [베르사유]는 현재 시즌 3까지 공개되었으며,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얽히며 베르사유 속 특권층들의 권력 다툼과 멀리서 고통에 신음하는 민중의 삶 모두를 그린다. 17세기 프랑스 왕과 귀족의 복식과 궁전 건축, 실내 장식 등을 보는 재미가 있다.

프런티어 – 18세기 후반 북미 모피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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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북미 대륙 북부 지방에서 벌어진 모피 무역을 소재로 한 시리즈로, 땅과 모피를 둘러싼 북미 원주민, 북미 대륙 이민자, 영국인들의 세력 다툼을 다룬다. 가상의 인물 데클란 하프는 아일랜드인과 원주민 크리 족 혼혈인 무역상으로 모피 무역을 독점한 영국 회사 허드슨 베이 사의 시장을 서서히 잠식하고, 허드슨 베이 사가 이에 반격하는 등 여러 세력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에 집중한다. 제이슨 모모아의 매력적인 연기와 역사적 기본 사실에 충실한 각본, 연출 덕분에 북미 식민지 역사의 다른 단면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바자르의 불꽃 – 1897년 파리 자선바자회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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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파리, 귀족과 가톨릭 종교인들이 참석하는 연례 자선 바자회 행사장에서 큰 불이 나 126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다쳤다. 피해자 대부분은 귀족 여성이었으며, 오스트리아 황후의 동생인 조피 샤를로테 공주도 사망했다. [바자르의 불꽃]은 이 사건을 바탕으로 가상의 여성 캐릭터 세 명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귀족 여성 아리안느는 죽음을 위장해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아리안느의 조카 알리스는 방화범으로 몰린 남자와 사랑에 빠지며, 알리스의 시녀 로즈는 사망한 여성의 신분으로 살아간다. 드라마는 화재 자체보다는 사건 이후 인생이 완전히 바뀐 세 여성의 드라마틱한 삶에 초점을 맞췄다.

마지막 차르 – 1917년 러시아 제국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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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차르는 러시아 제국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즉위한 1894년부터 2월 혁명으로 제정이 폐지된 1917년까지 러시아 황실을 다루는 다큐드라마다. 제국을 다스릴 지도자 감은 아니었던 니콜라이 2세의 실책,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번진 민중 탄압,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권력 장악 등 제국의 몰락을 가져온 일련의 사건을 역사학자의 설명과 드라마타이즈로 구성했다. 강성했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과정과 원인을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그린다. 러시아 역사 이야기이지만 대사는 영어이며, 영어권 배우들이 주로 출연한다. 라스푸틴이 실제 모습과 비슷할 만큼 잘 재연된 점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