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3주차 개봉작 리뷰

1917 – 원테이크로 잡아낸 전쟁의 참상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에디터 혜란: ★★★☆ 제1차 세계 대전, 사지에 들어가려는 아군을 막기 위해 급파된 일반 병사 두 명의 하루를 그린 영화. 아군과 적군의 시체로 쌓인 무인 지대와 적군 참호, 폐허가 된 마을과 강을 통과하는 긴 여정을 통해 전쟁의 끔찍함을 생생하게 전한다. 젊은 신인 배우 두 명이 극을 이끌어가고, 중요한 지점에 등장하는 유명 배우들은 짧은 순간에도 제 몫을 다한다. 프로덕션 디자인, 사운드 등 여러 요소가 수준급이지만 로저 디킨스 감독의 촬영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화제가 된 원테이크 촬영만큼 빛의 쓰임새도 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깜깜한 밤, 폐허가 된 마을에서 독일군에 쫓기는 장면은 정말 환상적이다. 다만 영화가 끝난 후엔 이 작품에 말하려는 게 무엇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목소리가 명확하지 않아 기술이 ‘잔재주’ 같다는 느낌도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BEASTS CLAWING AT STRAWS) – 욕망이라는 이름의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이미지: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에디터 영준★★★★ 돈 앞에서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의 처절한 난장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이야기는 전통적인 ‘돈가방 범죄 스릴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칫 진부하다 느낄 수도 있는 전개지만,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비선형적 스토리텔링과 빠른 리듬감,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로 기시감을 신선한 매력으로 덮는다. 불편함을 느낄 법한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영리한 수위 완급 조절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 역시 영화적 쾌감을 더한다. 모든 출연진의 연기가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전도연 배우다. 영화 중반부쯤에서야 처음 등장했음에도 작품 전체를 휘어잡는 그의 아우라는 단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백미다. 비선형적 서사의 불친절함을 감내할 수 있고, 누아르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즐긴다면 이만한 오락영화도 없을 거라 자신한다. 물론 전도연 배우만으로도 이미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지만.  

작가 미상(Never Look Away) – 체제의 압제에도 흔들림 없이 진실을 찾는 예술가의 삶

이미지: 영화사 진진

에디터 혜란: ★★★★★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독일의 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주인공 ‘쿠르트’가 어린이인 나치 시기부터 30대 후반이 된 60년대 초반까지 약 25년의 시간을 담았다. 나치즘, 사회주의, 민주주의까지 정치 경제 체제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격동의 독일 현대사를 배경으로, 영화는 진실을 추구하는 예술가가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린다. 각본과 연출뿐 아니라 톰 쉴링, 세바스찬 코치 등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만큼 환상적인 촬영과 막스 리히터의 음악도 영화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무엇보다도 강압적 체제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던 쿠르트가 ‘목소리 없는’ 예술에서 진실을 찾는 부분에선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When I Get Home, My Wife Always Pretends to Be Dead)

이미지: ㈜영화사 그램

에디터 현정: ★★★ 실화에서 출발한 긴긴 제목의 영화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의 설정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한 번의 결혼 생활 실패 후 치에와 재혼하고,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든 무료한 직장인 준에게 황당한 변화가 생긴다. 치에가 매번 다른 방식으로 죽은 척하고 준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영화는 치에의 행동을 오해해서 받아들이는 준과 도무지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치에를 통해 결혼생활은 당연하게 유지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고 채워주며 살아가는 거라고 말한다. 준의 직장 동료 소마와 유미코 부부는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소박하고 담백한 톤은 좋으나 초반의 신선함이 오래가지 못해 아쉽고, 준의 관점에서 진행되다 보니 치에의 캐릭터가 전형적인 틀에 갇혀 있는 느낌도 든다. 실화와 다르게 치에의 시선으로 각색해서 전개됐다면 어땠을까. 치에의 목소리가 궁금하다.

하이, 젝시(Jexi) – 도움이 되는 듯 안 되는 욕쟁이 시리

이미지: 씨나몬㈜홈초이스

에디터 원희: ★☆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필이 새 폰 ‘젝시’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애덤 드바인 표 코미디.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는 인공지능 젝시는 거친 입담을 발휘하며 제멋대로 필의 인생에 난입하기 시작한다. 방에서 핸드폰만 보며 살지 말고 밖으로 나가 직접 소통하며 소중한 사람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 걸맞은 교훈을 선사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꽤 거칠고 지저분하다. 아슬아슬한 차별이 담긴 화장실용 개그가 난무하고, 괴상한 방식이지만 필을 돕던 젝시가 돌변해 필에게 집착하는 장면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걷잡을 수없이 흘러가던 영화는 B급 코미디가 그렇듯 개연성에서 벗어나 뻔하고 이상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아직까지도 ‘부족한 남자 주인공이 조금 노력하면 미녀를 차지한다’는 내용을 그려낸 영화를 봐야 할지 의문이다.

숀더쉽 더 무비: 꼬마 외계인 룰라!(A Shaun the Sheep Movie: Farmageddon) – 80년대 스필버그 감성과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만난다면

이미지: TCO(주)더콘텐츠온

에디터 홍선★★★ [월레스와 그로밋]에 신 스틸러로 활약한 ‘숀더쉽’이 두 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찾아온다. [숀더쉽 더 무비: 꼬마 외계인 룰라!]는 우연히 양떼목장에 불시착한 꼬마 외계인 룰라와 숀이 만나고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을 다룬 작품이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손맛과 질감이 느껴지고,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웃음보다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더 놀라울 정도다. 전체적인 스토리나 분위기가 [E.T.]가 생각나는데 들여다볼수록 스필버그는 물론 더 나아가 큐브릭을 향한 오마주도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대사 하나 없이도 웃기고 울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데 아이들에게는 CG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즐거움과 스필버그 영화를 보고 자라온 어른들에게는 따뜻한 향수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