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이미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돈은 최선의 하인이지만 최악의 주인”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돈 앞에서 서슴없이 인간의 도리를 내려놓고 욕망에만 충실한 짐승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다. “큰돈 앞에선 누구도 믿지 말라”며 자신이 바로 그 ‘믿어선 안될 누군가’가 되길 택하는 사람들. 소네 케이스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그러한 인간군상이 펼치는 지옥도에 대한 영화다.

솔직히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전도연과 정우성을 시작으로 ‘그리고 윤여정’까지, 어떤 영화도 부럽지 않은 출연진이다. 그러나 마음에 걸린 부분은 ‘감독 김용훈’이었다. 단순히 신인 감독이라서가 아니다. 당장 [벌새]나 [겟 아웃], [서칭], [유전]만 해도 신인들의 연출 데뷔작이었다. 우려의 포인트는 ‘신인 감독이 연기 경력이 도합 200년은 족히 되는 아홉 명의 배우를 잘 이끌 수 있을까?’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니 우려가 싹 가셨다. 신인 감독의 젊은 감각과 배우들의 노련미가 더해지니 근래 보기 힘들었던 웰메이드 범죄 스릴러가 탄생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마치 소설처럼 챕터를 나눠 인물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돈가방을 찾은 중만(배성우)과 사라진 연희(전도연)가 남긴 빚을 갚아야 하는 태영(정우성), 가정폭력과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미란(신현빈)의 모습에서 세 사람이 얼마나 절박하게 ‘돈’을 필요로 하는지 보여준다. 문제는 이야기의 타임라인이 뒤죽박죽이라는 것. 불친절하게 느껴지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실 영화는 돈가방의 행적이나 TV 속 뉴스 등을 통해 몇 번이나 비선형적 서사를 암시해왔다. 단지 캐릭터와 이야기에 한참 매혹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돈 때문에 벌어지는 참극’이라는 익숙한 이야기에서 신선함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불친절한 듯한 서사 구조에 있다. 

이미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흩어졌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는 건 4장 ‘상어’부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도연이 있다. 전도연이 연기한 연희는 주연배우가 등장하기에 다소 늦은 거 아닌가 싶은 영화 시작 후 한 시간이 되어서야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인물, 극중 가장 욕망에 충실한(?) 악인이자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기도 한 연희의 등장과 동시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몰입도와 속도감이 배가된다. 한국영화에서 이토록 매력적인 악인은 염력 홍상무(정유미)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전도연이 ‘전도연’했을 뿐인데, 그 존재감만으로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볼 가치는 충분하다. 

다른 배우들의 퍼포먼스 역시 두말할 나위 없이 좋다. 적당하게 능글맞은 태영을 연기한 정우성은 [아수라] 이후 또 하나의 ‘인생 악당’ 역을 이 작품에서 만났다.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중만 역의 배성우와 끝까지 쫓아다니는 사채업자 두만 역의 정만식은 본인들의 강점을 이번 작품에서도 선보였고, 윤여정과 진경은 분량과 대사가 다소 적다는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역시 내공이 어마어마한 배우들이다. 미란을 위해 어떤 일이라도 벌일 진태를 연기한 정가람과 신현빈 역시 선배 배우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중만의 가족을 제외한 주요 등장인물들이 ‘악인’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사실 중만과 영선도 해석 여하에 따라 다르기는 하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처음에는 동정심이 들었다한들, 이들 모두 범법 행위를 저지르거나 시도했던 인물들이다. 욕망에 눈이 멀어버린 ‘짐승’으로 전락한 범죄자들끼리 서로를 처단(?)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묘하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등급과 누아르 장르이기에 자극적인 장면도 적지 않은 편이나, 적나라하게 묘사하지 않게끔 완급조절을 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미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몇몇 캐릭터에게서 ‘절박함’을 느낄 수 없다는 건 아쉽게 다가온다. 러닝타임이 108분으로 짧고 여러 개의 플롯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보니 아무래도 캐릭터 구축에는 상대적으로 힘을 다소 뺀 모양이다. 상영 시간을 10분 정도 늘리더라도 진태나 영선, 순자의 이야기나, 주요 인물들의 감정선과 동기를 조금 더 세심하게 묘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정말 매력적인 범죄 누아르 스릴러다. 빗발치는 총알이나 격렬한 주먹다툼, 선혈 낭자한 범죄 현장이나 헐벗은 모습만으로 화면을 채우는 대신, 몰입감 넘치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를 택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김용훈 감독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