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이 영상이었다.

출처: Youtube KBS N

7분짜리 경기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266만 건을 기록했고, 영상에 등장한 ‘잘생긴’ 씨름선수 황찬섭은 일약 스타가 되었다. 몇 년 동안 텅 비었던 씨름 경기장에 관중이 들기 시작했고, 경기 영상엔 씨름의 매력에 빠진 시청자들의 재치 넘치는 댓글들이 달렸다. 여러 매체에서 씨름 선수들을 응원하고, 선수가 아닌 씨름 전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오랫동안 씨름을 중계했던 KBS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새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씨름 경기에 프로듀스 101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 형태를 더한, [씨름의 희열]이다.

이미지: KBS

[씨름의 희열]은 ‘기술 씨름의 귀환’을 목표로 내걸었다. 정교한 기술과 고도의 전략이 돋보이는 경기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씨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확고하다. 덩치 큰 선수들이 압도적인 신체 조건을 무기 삼아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인다는 것.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 [씨름의 희열]은 기술이 중심이 되는 경량급에서 답을 찾았다. 프로그램은 태백(-80kg), 금강(-90)급 선수들의 통합전, ‘태극장사대회’가 바탕이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볼 법한 리얼리티 예능 요소를 더했다.

대회엔 각 체급에서 8명씩, 총 16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장사(대회 우승) 타이틀을 14개나 보유한 살아있는 전설부터 대학 씨름대회를 석권한 패기 넘치는 젊은 선수까지 다양하다. [씨름의 희열]은 본격적으로 대회를 시작하기 전, 선수들의 라이벌전과 체급전을 먼저 치르며 시청자들이 경기와 선수 모두를 알아가도록 했다. 공들여 만든 선수 개인 소개 영상엔 신체 조건, 역대 성적 등 기본 프로필과 훈련 및 경기 영상, 씨름 입문 계기, 운동과 경기에 대한 철학 등 ‘입덕’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매 에피소드엔 경기 전 계체(weight-in)에 얽힌 에피소드, 운동 방법과 경기 노하우 등 선수들의 일상을 재미있게 구성하고, 인터뷰 등을 부가영상으로 제공했다.

이미지: KBS

짜릿한 경기, 선수들의 일상을 담은 밀착 카메라, 패기 넘치는 인터뷰가 쌓이면서 선수들은 ‘평범한 씨름 선수’가 아닌 매력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헤라클레스’, ‘천재’, ‘다비드’ 등 별명도 생겼고, 선수들의 개인 SNS로 팬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경기를 직접 보고 싶다는 반응에 ‘직관 이벤트’까지 개최되었다. 경기장은 규모는 작지만 프로레슬링이나 종합격투기 경기장만큼 경기를 가까이 볼 수 있게 만들어졌다. 매번 빈 객석에서 외롭게 운동하고 경기했던 선수들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어느 때보다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현장에서 보지 못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정교한 촬영 덕분에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과 모래판에 흩날리는 모래까지 볼 수 있었다. 캐스터 김성주는 자신의 장기인 스포츠 경기 중계와 예능 프로그램 진행 모두 매끄럽게 해냈고, 이만기의 전문적 해설과 붐의 코멘터리도 프로그램에 활력을 더했다.

운동 경기에서 승부의 결과는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탈락한 선수들은 아쉬움의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탈락 인터뷰를 한 모든 선수들의 얼굴엔 최선을 다해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뤘다는 자부심과 사람들이 씨름에 보낸 사랑과 지지에 대한 감사함이 어려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우려 때문에 결승전은 무관중으로 진행되었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멋진 경기를 보여줬다. 관객이 있든 없든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지난 몇 개월 간 씨름과 선수들을 알게 된 시청자로서 선수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미지: KBS

이제 스포트라이트는 꺼지고,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경기장으로 돌아갔지만, 씨름에 대한 관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씨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스포츠가 되었기 때문이다. [씨름의 희열]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완벽한 정답은 아니지만, 스포츠처럼 종목을 알리고 친숙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인 포맷인 건 확실하다. 씨름뿐 아니라 다른 종목과 선수들에게도 시청자들에게 희열을 안길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