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에 얽힌 진실을 찾아가는 추리, 또는 수사물은 소설, 영화, TV 등 여러 형태로 만들어졌다. 괴짜 탐정 셜록 홈즈부터 범죄 프로파일러까지 수사관의 직업, 범죄물의 소재나 수사 방식은 다양하고, 지금 범죄물의 ‘전성기’를 연 기념비적 작품도 몇 편 있다. 이 글은 그중 [CSI]에 대해 이야기한다. [CSI]는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학 수사관들의 수사 이야기로 이전의 형사, 검사, 변호사가 주인공이었던 범죄물의 공식을 바꿨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으면서 이후 나온 수많은 범죄 수사물이 [CSI]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1. 과학 수사를 멋지게 그리다

이미지: CBS

[CSI] 전까지 과학 수사는 범죄 드라마의 중심 소재로 쓰인 적이 거의 없었다. 수사 드라마는 형사, FBI 요원, 사설탐정 등 ‘수사관’ 중심이었고, 과학 수사관은 주변 인물로 수사에 필요한 증거를 내놓는 데만 머물렀다. [CSI]는 과학 수사를 담당하는 범죄연구소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형사는 이들의 사건을 보조하는 역할로 바꿨다. 또한 빠른 비트의 음악에 맞춘 속도감 있는 화면 편집,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더 멋진 과학 및 기술 용어 때문에 실험이나 수사 자체가 멋진 과정처럼 보였다.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가끔은 부정확하지만, 상관없다. 멋진 걸로 충분하다.

2. 독특하지만 매력적인 ‘괴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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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이전에 나온 범죄수사물의 수사관들은 한없이 진지했다.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같은 독특한 캐릭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CSI]의 수사관과 분석관들은 괴짜 같은 면이 있다. 야간팀 반장인 길 그리섬은 곤충 표본을 수집하고, 그렉 샌더스는 DNA 분석을 하면서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 놓는다. 완벽하지 않지만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엇박자 없이 잘 돌아가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호감을 느꼈다. 이후 나온 범죄 수사물의 수사관 캐릭터엔 ‘추리 소설 작가(캐슬)’, ‘IQ 150에 박사학위만 세 개(크리미널 마인드)’ 등 더 독특한 설정이 더해졌다.

3. 여성 수사관 전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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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외는 있지만, 범죄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는 주로 ‘남성’ 수사관을 돕는 보조 역할에 머물렀다. 수사물 주인공이 여성일 땐 남성 중심의 근무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캐서린 윌로우스(마그 헬겐버거), 새라 사이들(조자 폭스) 등 [CSI]의 여성 수사관은 남성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유능함을 뽐냈다. [CSI]의 여성 캐릭터는 과학자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긍정적 롤 모델이 되었고, 현재 미국 과학수사 분야엔 여성들이 전방위에서 활약하고 있다.

4. 범죄 수사’만’ 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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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의 캐릭터가 더 매력적이고 호감가는 건 시청자들이 이들이 일하는 모습만 보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증거를 검사할 때, 라커룸에서 근무 준비를 할 때 나누는 짧고 사적인 대화는 범죄 수사관이라는 공적인 환경에서 이들의 평범하고 사적인 부분을 슬쩍 내보인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캐서린의 딸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지난 밤 워릭의 데이트는 어땠는지 알 수 있다. [CSI] 또한 사내 로맨스와 가족 드라마를 빼놓지 않는다. 역시 이야기엔 사람과 사람 사이 벌어지는 극적인 일들이 있어야 재미있는 법이다.

5. ‘스토리 아크’로 큰 이야기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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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수사대 대원들이 매 에피소드마다 1~2건의 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 [CSI]의 기본 포맷이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에피소드 1편을 넘어 여러 편에 걸쳐 진행된다. 일명 ‘스토리 아크(story arc)’라 불리는 긴 이야기들은 2부 연작이나 한 시즌, 또는 여러 시리즈를 걸쳐 진행된다. [CSI]뿐 아니라 [CSI: 마이애미], [CSI: 뉴욕]의 스토리아크는 캐릭터의 개인사와 공무가 얽힌다. [CSI]의 ‘미니어처 살인자’는 그리섬 반장의 비밀스런(?) 사생활과 관련이 있었다. [CSI: 마이애미]는 호레이시오 반장의 로맨스, 결혼, 복수까지 들어간 장대한 이야기를 2개 시즌에 걸쳐 펼쳤다.

6. CSI 효과: 물적 증거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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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범죄 수사에서는 목격자 증언, 현장에서 발견한 증거가 모두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CSI]에서는 물적 증거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과학 수사관들은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 분석하는 게 그들의 업무이기 때문에, [CSI] 세계에선 물적 증거가 없는 증언은 “언제나 뒤집힐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경향은 다른 범죄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도 드러났다. 형사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과학 수사로 찾은 증거를 내놓길 기대하는, 일명 ‘CSI 효과’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7. 유혈이 낭자한 범죄 현장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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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는 첫 화부터 범죄 현장의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전까지 범죄 현장에 피가 고인 것 정도만 봤던 시청자들에게 [CSI]의 유혈이 낭자한 범죄 현장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부검을 하거나, 시체에 번식한 곤충을 관찰하거나, 범죄 현장을 재현하는 것 모두 생생하게 보여줬다. [CSI] 이후 다른 범죄 수사물은 사건 현장의 참혹함을 더 잘 활용했다. 사람의 ‘뼈’로 수사하는 [본즈]의 에피소드 초반엔 언제나 부검을 진행하기 어려울 만큼 부패된 사체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