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마블 코믹스의 세계(마블 유니버스)는 우주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초과학의 세계이자 용이 사는 판타지 세계이며, 고대의 신비한 무술과 마법이 공존하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어벤저스가 해체되고 캡틴 아메리카가 살해되는 심각하고 어두운 서사가 펼쳐지는가 하면, 다람쥐의 능력을 가진 스쿼럴걸이 온갖 슈퍼 빌런들을 물리치는 코믹한 설정도 있다.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가 하나로 뒤섞인 셈인데, 그러면서도 슈퍼히어로라는 커다란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어떤 이상한 캐릭터가 나와도 마블의 세계관에 적용시킬 수가 있다. 독자에게 말을 거는 데드풀만 해도 처음 창조할 때엔 이렇게까지 크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언뜻 어울리지 않고, 뭐 이런 게 있나 싶을 정도로 황당해 보이지만 마블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특이한 캐릭터들을 소개한다.

마스코트 출신의 히어로 ‘포부쉬맨’

어빙 포부쉬는 1955년에 발행한 『스나푸』라는 코믹스의 마스코트로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그 뒤 1967년에는 『낫 브랜드 에크』의 표지 그림에 커다란 냄비를 뒤집어쓰고 망토를 두른 포부쉬맨이라는 슈퍼히어로 지망생으로 등장했다. 정식으로 그의 이야기가 연재되면서,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마블 코믹스(Marvel이 아니라 Marble이다)의 말단 직원이라는 설정이 만들어졌다. 초능력이 없이 포부쉬맨으로서 활동하면서 운 좋게도 여러 빌런들을 쓰러뜨리다가, 마침내 정부의 실험에 참여하여 캡틴 아메리카와 비슷한 능력을 얻었다. 코믹 캐릭터인 포부쉬맨은 데드풀처럼 제4의 벽을 돌파할 수 있는데, 캡틴 아메리카로 활동하던 버키 반즈가 돌아온 스티브 로저스에게 다시 방패를 돌려주자, 이에 화가 나서 마블 코믹스(진짜 Marvel)를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뱀파이어 암소 ‘헬카우’

마블 유니버스에는 드라큘라도 하나의 캐릭터로 존재한다. 드라큘라는 뱀파이어 군대를 거느리며 주로 블레이드나 엑스맨 같은 히어로들과 전쟁을 벌이고 세상을 정복하려 하는데, 이 드라큘라가 만들어낸 의외의 존재가 하나 있으니 바로 헬카우라는 암소다. 스위스를 유랑하던 드라큘라가 피에 굶주린 나머지 암소 한 마리의 피를 빨았는데, 베시라는 이름의 암소가 그만 뱀파이어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인간의 피를 마시게 된 베시는 드라큘라를 찾아 복수를 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기 시작했다. 3백 년이 지난 후, 베시는 아직 복수는 못 했지만 데드풀의 팀에 합류하는 등 영웅적인 행동을 하곤 한다.

크툴루 신화의 신 ‘슈마고라스’

슈마고라스는 원래 [코난 더 바바리안] 시리즈로 유명한 판타지 작가 로버트 E. 하워드의 소설 『황금 해골의 저주』에 등장했다. 한 개의 커다란 눈과 열 개의 촉수를 가진 슈마고라스의 모습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크툴루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 마블 코믹스에 등장한 슈마고라스는 백만 년 전에 다른 차원에서 온 고대 신이라는 설정으로, 인신공양을 요구하며 인간을 학살하다가 다른 신에 의해 감금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슈마고라스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스승인 에인션트 원의 정신을 차지하여 세상에 다시 나타나려 했다. 슈마고라스가 워낙 강력했기에 닥터 스트레인지는 스승을 죽여서 막아야만 했다. 또한 슈마고라스는 도르마무의 라이벌이기도 한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미국의 비밀병기 ‘둡’

둡은 냉전 시대에 미국이 소련을 이기기 위해 비밀리에 창조한 무기로 알려졌다. 독특한 생김새에 이상한 외계어를 쓰지만(그의 언어는 울버린을 비롯한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다), 토르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움을 하고, 시공간을 조작하며, 자신의 잠재의식으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등 엄청난 능력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사고를 당해 뇌가 폭발했지만 엉덩이에 또 하나의 예비용 뇌가 있어서 무사할 수 있었다. 이 예비 뇌는 인간의 언어도 구사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는 둡이 지구를 파괴할 수도 있는 존재라고 보았지만, 평소의 행실은 그에 맞지 않게 아주 게으르고 엉뚱하다.

뇌만 남은 ‘노 걸’

뮤턴트 소녀 마사는 인간 우월주의자들에게 붙잡혀 뇌를 적출당했다. 그들은 마사의 텔레파시와 정신 소유 능력을 이용했지만 결국 엑스맨이 마사를 구출했다. 엑스맨은 떠다니는 유리 용기에 마사의 뇌를 넣은 뒤 ‘노 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들의 뮤턴트 학교에 받아주었다. 또 다른 뮤턴트 학생인 언스트가 용기에 달린 줄을 잡고 데리고 다닌다. 마사는 비록 몸은 없지만 강력한 정신능력으로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을 도와 여러 차례 위험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초능력이 마사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무서운 능력이다.

괴수의 왕 ‘고질라’

유명한 일본의 괴수 캐릭터인 고질라도 마블 코믹스에 등장한다. 타키구치 박사의 핵폭탄 실험으로 깨어난 고질라는 일본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알래스카 쪽으로 흘러가 얼음에 갇힌 뒤, 현대에 다시 깨어났다. 아기공룡 둘리나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일을 겪은 셈이다. 고질라는 미국 전역을 누비며 쉴드와 어벤저스, 판타스틱 포 등을 상대로 싸웠다. 현재 마블은 고질라의 상표 라이선스를 잃은 상태여서 등장은 시킬 수는 있지만 더 이상 ‘고질라’라는 이름은 사용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