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집에 가둬놓은 지금, 엔터테인먼트 감상 행위만 집으로 옮겨가진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제작도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극장과 사업장이 폐쇄되고 모임을 금지하면서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은 집에서 자신들의 일을 이어간다. 당연히 콘텐츠도 바뀔 수밖에 없다. 눈부신 조명, 세련된 메이크업, 관중의 환호는 사라지고, 거실에 차린 간이 무대나 스튜디오가 등장했다.

출처: Youtube iHeartRadio

어제(미국 현지시각) 엘튼 존의 주도로 아티스트들이 특별한 콘서트를 선보였다. ‘리빙룸 콘서트 포 아메리카’는 엘튼 존이 진행하며 빌리 아일리시, 알리시아 키스, 샘 스미스, 데이브 그롤 등이 각자 집에서 미니 콘서트를 열었다.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공연을 하는 것 자체는 유튜브 시대에선 새롭지 않다. 하지만 대형 방송채널 Fox와 인터넷 라디오 서비스인 ‘아이하트라디오’가 참여하면서, 유튜브 스트리밍 환경에서 생중계가 기대 이상으로 매끄럽게 진행됐다.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없자 각자의 연주와 목소리를 더해 하나로 합치는 시도도 있었다.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올랜도,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라스베이거스 네 곳에 거주하는 다섯 멤버가 각자의 집에서 화음을 맞추고, 톰 맥그로와 밴드는 각자의 집에서 연주해 하나의 공연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음향 환경을 적절하게 믹스하는 데 세련된 손길이 돋보인다.

웹 공간에서 합동 공연을 만드는 것 또한 새로운 시도는 아니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사회적 경험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선 마치 한줄기 빛과 같다.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19명은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중 ‘환희의 송가’를 연주해 하나로 합친 영상은 전 세계적 규모로 바이럴 되었다.

출처: Youtube Rotterdams Philharmonisch Orkest

음악 공연뿐 아니라 연극도 안방으로 옮겨갔다. ‘The 24 Hour Plays’는 배우와 연극 작가들이 모여 교류하는 행사로, 작가들은 5분 분량의 모놀로그를 쓰고 배우는 의상과 소품을 준비한다. 모든 프로젝트는 24시간 안에 이루어지고, 결과물은 관객들 앞에서 공연으로 선보인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대중 모임이 금지되고 브로드웨이의 연극과 뮤지컬 공연이 모두 중단되자, 주최 측은 교류를 온라인으로 옮겼다. ‘바이럴 모놀로그’는 20명의 배우와 20명의 작가들이 짧은 모놀로그를 하루 안에 쓰고, 공연한 영상 40편을 3월 17일과 24일, 15분 간격으로 업데이트했다. 휴 댄시, 패트릭 윌슨, 마이클 섀넌 등 톱 배우들이 가장 친밀한 환경에서 자연스럽고 퀄리티 높은 공연을 선보이며, 재단은 코로나19 예방수칙 등 공익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The 24 Hour Plays’를 운영하는 마크 암스트롱은 “911 사태, 경제 위기,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도 공연을 했지만 이번 사태는 공연의 ‘장소’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연결된 감정을 느끼는 듯하다.”라고 평가했다.

심야 토크쇼도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심야 토크쇼는 3월 중순부터 촬영이 중단되자,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 [지미 키멜 라이브] 등은 호스트의 집을 스튜디오 삼아 축소된 버전을 선보였다. 팰런과 키멜은 모놀로그를 직접 촬영하고, 자녀들과 함께 코너를 진행하며, 밴드와 출연진은 화상으로 연결된다. 자가격리 중인 스타들도 기꺼이 화상 출연해 토크를 나누거나 음악을 공연한다. [코난]은 촬영을 일시 중단했지만, 30일(현지시각)부터 코난 오브라이언의 집에서 카메라와 삼각대, 짐벌을 이용한 라이브 토크쇼를 진행한다. [제임스 코든의 레이트 레이트 쇼] 또한 ‘홈페스트’라는 스페셜 에피소드를 촬영하며, 방탄소년단이 출연할 예정이다.

출처: Youtube Jimmy Kimmel Live

아침 뉴스 프로그램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새로운 포맷을 실험하고 있다. NBC [투데이]는 모든 호스트가 뿔뿔이 흩어져 있다. 앵커 중 호다 코브만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며, 다른 사람들은 집에서 촬영을 진행한다. 서배너 거스리는 지난주부터 가벼운 인후통 때문에 집 지하실에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뉴스에 출연한다. 그래서 가끔씩 거스리의 자녀들이 뉴스 진행 중에 등장해 화면을 보고 손을 흔든다. 평소라면 ‘방송 사고’였을 순간들이 메이저 네트워크 생방송에서 허용되고 있다.

출처: Youtube TODAY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일어난 예상치 못한 문화적 변화를 ‘파자마(잠옷) 엔터테인먼트‘라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집’이란 공간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실제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파자마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세련되거나, 예쁘진 않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다. 제작 환경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시청자들이 이전보다 투박한 콘텐츠 퀄리티를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스타의 사생활을 노출하는 리얼리티에서 인공적이고 가식적인 면이 빠지면서 시청자들은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셀럽의 다양한 면을 목격하고 호감을 가진다.

콘텐츠 대부분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다 (유튜브와 TV광고 단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심야 토크쇼나 콘서트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한 공익 메시지를 널리 알리거나, 방역 일선에서 활약하는 의료진을 응원하거나, 여러 재단에 기부해 달라고 말한다. 콘텐츠의 가장 큰 효과는 고립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공동체적 느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대통령 영부인부터 평범한 10대까지 나이, 인종, 성별이 달라도 2020년 지금 공통의 경험을 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LA의 DJ 디-나이스는 ‘클럽 쿼런틴’이란 제목으로 9시간 동안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디제잉을 했다. 사람들은 디-나이스의 디제잉에 맞춰 춤을 추고 열광했고,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농구선수 스테판 커리, 배우 제니퍼 로페즈뿐 아니라 전 영부인 미셸 오바마도 라이브 방송에 입장해 응원 메시지를 남겼고, 디-나이스는 오프라 윈프라와 지미 팰런 등과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미지: Instagram @dnice

파자마 엔터테인먼트는 코로나19의 창궐로 엔터테인먼트에 생긴 공백을 메우고 있다. 격리와 고립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수요는 높아졌지만 스포츠 경기는 취소되고 영화와 드라마 촬영이 중단되어 공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거실에서 찍은 투박한 영상은 이 시국에 가장 공감할 만한 대안이 되었다. 이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소셜 미디어 스타를 만드는 것과 다르다. 워싱턴 포스트는 “인플루언서 문화가 일반인을 스타로 만들었다면, 파자마 엔터테인먼트는 스타들을 ‘평범한 사람들’로 만든다.“라고 분석했다. 스타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날것의 모습을 촬영하는 데 기꺼이 동의하는” 지금이 현대 TV 미디어의 매끄럽고 세련되어서 인공적인 느낌을 걷어낼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자마 엔터테인먼트가 언제까지나 공익적인 형태로만 머무를지는 알 수 없다. 새로움이 사라지면 다른 트렌드에 자리를 내줄지도 모른다. 격리 기간이 장기화되면 큰 회사들이 아티스트들이 작은 규모로 만드는 투박한 콘텐츠를 대체할 만한 뭔가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는 파자마 엔터테인먼트가 할리우드의 ‘프로 같은’ 콘텐츠에 완전히 밀리진 않을 것이며, 오히려 ‘친밀함’ 자체를 대중적인 현상으로 바꿀 방법을 찾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