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만 해도 저녁 안방극장은 시트콤이 책임졌다. 극중에 나온 캐릭터들의 유행어를 따라 하고, 다음 날에는 사람들끼리 모여 어제 봤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시트콤 제작이 뜸한 요즘, 더욱더 그때 봤던 작품들이 그립다. 다행히 유튜브와 OTT의 보급으로 예전 시트콤을 다시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금 봐도 여전히 웃기고 재밌는 인생 시트콤들을 소개한다. 

순풍산부인과 (1998~2000년 SBS 방영)

김병욱 PD를 시트콤계의 전설로 만든 작품. 순풍산부인과를 배경으로 오지명 원장과 가족, 병원 식구들의 에피소드를 담아, 1998년 IMF 여파로 힘든 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했다. 타 방송국 9시 뉴스와 같은 시간대에 방영됐음에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오지명을 비롯해 박영규, 선우용녀, 권오중 등 출연진 대부분이 CF를 찍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680회가 넘게 장기 방영되면서 제작진과 출연진들이 중도에 하차했고, 후반부에는 초창기 멤버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상태에서 마무리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2000년~2002년 SBS 방영)

[순풍산부인과] 종영 이후 김병욱 PD가 다시 메가폰을 잡은 시트콤으로, 노씨 형제 일가와 소방서 식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코믹 연기에 도전한 신구와 노주현의 활약이 돋보였고, 이홍렬 역시 개그맨이 아닌 배우로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웃음을 줬다. [순풍산부인과] 후속작이라는 부담감에도 유쾌한 에피소드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다만 마지막화에서 노주현의 아내로 출연한 박정수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해 이때부터 김병욱표 시트콤은 새드 엔딩이라는 속설이 시작되었다. 

똑바로 살아라 (2002~2003년 SBS 방영)

중견 배우이자 정형외과를 경영하는 노주현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시트콤이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제작한 김병욱 PD가 연출을 맡아 이번에도 성공을 거뒀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노주현과 [순풍산부인과]의 박영규가 만나 화제가 되었고, 이응경, 홍리나, 안재환 등이 출연해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는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노주현이 극중 중견배우로 나와 드라마를 촬영할 때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큰 웃음을 건넸다. 지금은 스타가 된 이동욱, 천정명, 서민정의 초창기 모습도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 (2006~2007년 MBC 방영)

김병욱 PD가 SBS를 떠나 MBC에서 처음 제작한 시트콤이다. 한의원을 운영하는 이순재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렸다. 대한민국 대표 연기자 이순재와 나문희의 파격적인 코믹 연기 변신이 돋보였고, 다른 배우들도 까칠 민용, 꽈당 민정, OK 해미라는 별명을 얻으며 개성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가족 시트콤이라는 테두리 안에 젊은 배우들의 러브라인과 개성댁 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 요소를 집어넣어 흥미를 끌었다. 당시 신인이었던 정일우, 김범, 박민영이 이 작품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지붕뚫고 하이킥 (2009~2010년 MBC 방영)

김병욱 PD가 선사하는 하이킥 시리즈 제2탄. 산골에 살던 세경 자매가 서울로 올라와 식품회사를 경영하는 순재네 가족에 입주 도우미로 들어가면서 벌어진 일을 그린다. 세상물정 모르는 신세경의 순진한 행동은 짠한 웃음을 자아냈고, 세련된 외모와 다르게 어리숙한 행동으로 민폐를 끼치는 역할로 출연한 정보석의 이미지 변신도 돋보였다. 김병욱 PD 시트콤 중 어느 작품보다 러브라인이 부각되는데, 나름의 재미와 감동도 있었지만 그쪽에만 너무 치우친 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이런 비판은 마지막화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확실한 결론 없이 비극만 강조한 엔딩은 당시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남자 셋 여자 셋 (1996~1999년 MBC 방영)

[남자 셋 여자 셋]은 대한민국 청춘 시트콤의 간판 작품으로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신동엽, 우희진, 이제니, 홍경인, 송승헌, 이의정이 출연해 대학생들의 일상과 사랑을 코믹하게 담았다. 그래서인지 당시 많은 청소년들에게 대학생활의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시트콤에서도 높은 타율을 자랑하는 신동엽의 코믹 연기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오는 이의정의 패션 센스 등 매화마다 즐거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논스톱 (2000~2005년 MBC 방영)

[남자 셋 여자 셋]을 이어 MBC 청춘 시트콤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남자 셋 여자 셋]과 마찬가지로 대학 생활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출연진을 교체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쭉 이어간 장수 시트콤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만큼 [논스톱]에서 배출한 청춘 스타도 상당하다. 조인성, 장나라, 박경림, 한예슬, 현빈, 한효주 등 모두가 이 작품을 통해 얼굴을 알렸고 큰 인기를 얻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2004~2005년 KBS2 방영)

타 방송국에 비해 이렇다 할 대표작을 만들지 못했던 KBS에서 가장 성공한 시트콤이다. 프리랜서 성우인 최미자와 두 친구들이 겪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으로 예지원, 김지영, 오윤아가 출연해 작품을 이끌었다. 일과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웃음 속에 많은 공감대를 자아냈다. 예지원이 주인공 최미자로 출연해 인생 캐릭터를 선보였으며 레이싱 모델로 활동하던 오윤아가 이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지현우가 방송국 PD로 나와 국민 연하남이라는 별명 속에 큰 인기를 얻었다. 김영옥의 할미넴 전설도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시트콤의 인기에 힘입어 2006년에는 극장판도 나와 시트콤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 친구 (2000~2001년 MBC 방영)

철부지 세 친구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시트콤. 당시 시트콤들이 대부분 저녁 시간대에 가족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었다면, [세 친구]는 월요일 밤 11시에 편성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재와 표현을 많이 선보였다. 정웅인, 윤다훈, 박상면이 세 친구로 나와 개성 있는 연기를 펼쳤는데, 특히 윤다훈은 극중 바람둥이라는 설정으로 선수, 작업이라는 각종 유행어를 만들어 큰 인기를 얻었다. 2001년 종영 후 8년 뒤 tvN에서 세 배우를 그대로 캐스팅한 [세 남자]라는 시트콤을 선보이기도 했다.

안녕, 프란체스카 (2005~2006년 MBC 방영)

루마니아에서 온 뱀파이어 일행이 겪는 이야기를 담은 시트콤. 현실 세계에 없는 뱀파이어 가족이라는 독특한 소재 속에 블랙 코미디와 독특한 감성이 맞물려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심혜진, 김수미, 박슬기 등 여러 배우들이 뱀파이어 가족으로 출연해 이야기를 이끈다. 부담스러운 올 블랙 패션과 배우들의 실제 나이와 다른 서열 설정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안성댁으로 출연한 박희진이 독특한 음성과 발음으로 인기를 끌었고 앙드레 대교주로 신해철이 출연해 재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