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이미지: MBC

대한민국 시청률 1위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자와 전 국민의 잔소리를 달고 사는 비호감 배우의 로맨스라니, 안 봐도 뻔할 것 같다. 그나마 신선한 설정은 기자가 1년 365일 모든 것을 기억하는 ‘과잉기억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건데, 처음엔 “일은 잘하겠네.”라고만 생각했다. 예쁜 남녀의 상큼한 연애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라 예상했던 [그 남자의 기억법]은 캐릭터의 성격이나 이야기 전개 방식, 배우의 활용 등 여러 면에서 기대 이상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프로페셔널하며 앞뒤가 다른 건 못 참는 앵커 ‘이정훈’이 SNS와 사람들의 관심을 지나치게 즐기는 스타 ‘여하진’을 인터뷰하면서 시작된다. 수백 번은 해 왔던 인터뷰이지만, 이날 정훈은 전례 없는 방송사고를 낸다. 하진의 무엇인가가 그를 거세게 흔들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하진은 정훈과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난다”라고 소문내고, 정훈은 하진의 거짓 깜짝 선언에 할 수 없이 응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곤란한 처지를 구제하려고 커플 행세를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가짜와 진짜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그 남자의 기억법]은 뻔한 설정을 조금씩 뒤집으며 이야기뿐 아니라 캐릭터의 다채로운 매력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까칠하고 무례해 보였던 정훈은 모든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철없고 생각없어 보이는 하진은 사실 착하고 친절하며,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삶의 궤적과 철학이 전혀 비슷하지 않은 두 사람의 관계는 ‘기억’으로 맺어져 있었다. 스토킹 범죄로 목숨을 잃은 정훈의 여자친구 ‘서연’은 하진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정훈은 서연과의 모든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하고, 하진은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기억을 잃었다.

정훈은 친구이자 주치의인 태은이 한때 하진의 치료를 맡은 인연으로 하진의 상태를 알게 된다. 이후 정훈은 하진을 기억과 고통으로부터 보호하고, 하진은 정훈이 친절하지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이유를 알고자 한다. 드라마는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벌이는 진실게임에 하진도 서연처럼 스토킹을 당한다는 설정을 더해, 정훈에게는 다시 한 번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하고 하진에겐 기억을 조금씩 되살리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미지: MBC

각본은 로맨스와 미스터리를 섞고 스릴러의 쫀쫀함을 셰프의 킥으로 넣어 다양한 매력을 더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엔 얄팍해 보였던 설정에 깊이가 더해지고, 궁금했던 것들을 풀면서 더 흥미로운 떡밥을 던지면서 흥미를 더한다. 연출 또한 여러 장르를 조화롭게 버무리며 정훈과 하진 모두의 과거를 지배하는 ‘기억’이란 주제를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드라마에 몰입하게 하는 힘은 주연 배우인 김동욱과 문가영의 연기다.

방영 초반엔 문가영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려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착하고 악의가 없는 하진 그 자체 같다.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일에는 프로답고, 사랑엔 과감하면서도 진실과 기억은 두려워하는 모습을 잘 표현한다. 반면 김동욱의 정훈은 초반의 까칠한 모습 때문에 호감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과잉기억 증후군이 정훈에게 고통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정훈이 서연을 잃은 기억에 시달리거나 서연에게 소중한 하진을 보호하는 모습은 달리 보인다. 김동욱은 정훈이 겪는 미묘한 감정 변화를 세심하게 표현한다. 작년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으로 연기대상을 받으며 ‘연기 잘 하는 배우’란 건 이미 입증했지만, [그 남자의 기억법]으로 김동욱은 로맨스 연기도 정말 잘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 남자의 기억법]은 지난주 방송으로 절반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앞으로 정훈과 하진의 과거가 더 밝혀지고, 하진를 괴롭히는 스토커의 정체도 드러난다(이미 시청자들의 예측이 시작됐다). 정훈과 하진도 진짜 사랑을 시작할 텐데, 어떤 기억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정훈이 새로운 사랑에 뛰어드는 과정도 그려질 것이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흥미진진할 것이라, 기대감이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