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진들은 엔딩 무렵이면 흔히 말하는 ‘떡밥’을 양념처럼 뿌린다. 시청자의 관심을 붙잡고 다음 시즌을 포석하고자 이야기를 확장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모든 게 마무리됐다고 여기는 순간 수상쩍은 조짐을 암시하거나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향후 전개에 궁금증을 유도한다. 이 정도는 비일비재하니 그러려니 해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 놓고 끝내 버리면 할 말이 없어진다. 주요 인물의 죽음이나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그런 상황 말이다. 혹은 계속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것도 괴롭다. 제작진들도 이유가 있겠지만 길게는 1년 넘게 다음 시즌을 기다려야 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속는 기분도 들고 그리 달갑지 않다. 행여라도 후속 시즌이 취소된다면 풀리지 않는 의문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니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시청자를 놀라게 했던 시즌 피날레의 일부 사례를 찾아봤다.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워킹 데드 시즌 6-16 ‘생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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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네건이 릭 일행 중 누구를 희생자로 택했는지 알려주지 않고 충격과 분노만 남긴 채 끝났기 때문이다. 최악의 악당 네건이 휘두른 루실은 과연 누구에게 향했을까. 제작진은 화면을 암전 처리한 뒤 무자비하게 가격하는 소리만 띄운다. 생사를 알 수 없는 결말도 충격이지만, 네건이 릭 일행을 무릎 꿇리고 공포감을 조성하듯이 시청자를 피 말리게 하는 연출 방식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약 7개월 후 돌아온 시즌 7은 시작하고 15분가량이 지난 후에 그날 밤의 진실을 공개했다.

왕좌의 게임 시즌 5-10 ‘어머니의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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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즌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유종의 미를 거두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어떤 작품이 넘어설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만큼 여전히 대단한 [왕좌의 게임]. 매 시즌 숱한 화제를 뿌렸던 [왕좌의 게임]은 등장인물의 가차없는 죽음으로도 명성이 높다. 특히 많은 팬들을 경악하게 했던 시즌 5 10화는 충격적인 시즌 피날레를 논할 때 빠질 수가 없다. 첫 에피소드부터 꾸준히 죽음이 이어지다 급기야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백귀와 싸워도 살아남았던 존 스노우가 동료들에게 배신당해 허무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캐릭터에 정을 붙이면 안 된다는 것을 시즌 1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해도 다음 시즌까지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시청자들에겐 크나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존 스노우는 엄청난 논란이 민망하게 시즌 6에서 의외로 쉽게, 빨리 부활했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 시즌 1-8

이미지: 넷플릭스

1930년대 대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범죄자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가 21세기에 새롭게 부활했다. 물론 제임스와 앨리스는 그들처럼 악랄한 범죄자는 아니다. 겹겹이 쌓인 내면의 상처를 감추고 세상 밖으로 나온 아웃사이더일 뿐이다. 앨리스의 아버지를 만나려는 여정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제목처럼 빌어먹을 우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더 이상 나아갈 데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포상금을 노린 야박한 아버지와 두 사람을 향해 거리를 좁히는 경찰들. 제임스는 결국 앨리스를 보호하기 위해 충동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해변가를 무작정 달리는 제임스의 등 뒤로 한 발의 총소리가 울려 퍼질 때, 울부짖는 앨리스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지난해 11월, 2년 만에 돌아온 두 번째 시즌은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을 훌쩍 건너뛰고 시작한다.

오자크 시즌 3-10 ‘올 인’

이미지: 넷플릭스

깊고 푸른 수렁의 굴레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즌 3를 기다렸던 시청자는 늘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던 마티와 웬디가 무자비한 범죄 세계에서 조금은 빠져나오길 기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 게임에서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냉혹한 카르텔을 대변하는 변호사 헬렌과의 보이지 않은 경쟁이 충격적인 유혈사태로 끝났기 때문이다. 어떤 운명이 다가올지 모른 채 헬렌과 멕시코행 비행기에 올랐던 두 사람은 카르텔 보스로부터 뜻밖의 환대(?)를 받는다. 하지만 나바로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서 마냥 웃을 수 없다. 여러 난국을 거치는 과정에서 가족도 비즈니스도 찢겨 나갔기 때문이다. 무난하게 시즌 4 제작이 확정될지, 이대로 멈출지는 기다려야 알 수 있을 듯하다.

CSI 라스베가스 시즌 7-24 ‘살아있는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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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로 범죄 드라마에 새 지평을 연 [CSI] 시리즈. 긴 역사만큼 수많은 범죄자가 등장했고 요원들의 고초도 상당했는데, 그중 시즌 7 첫 에피소드 후반부에 등장해 마지막까지 요원들을 옥죄였던 미니어처 연쇄살인범 나탈리가 유명하다. 그의 악명은 새라를 납치한 시즌 피날레에서 정점을 찍는다. 양아버지 어니 델의 죽음을 그리섬 반장의 탓으로 돌리는 나탈리가 새라를 납치하고 사막 어딘가에 마련한 세트에 감금한 것이다. 시즌 7은 아슬아슬한 순간에서 끝나고 다음 시즌에서야 한발 늦은 그리섬 반장과 팀원들이 그들의 전매특허인 과학수사를 통해 조금씩 단서에 접근하고 새라를 구출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덧붙여 새라 못지않게 고생한 요원으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한 시즌 5 24~25화에서 납치당해 생매장당한 닉이 있다.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3-20 ‘Lo-Fi’, 시즌 12-22 ‘레드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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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대단원의 막을 내린 [크리미널 마인드]는 범죄자의 심리를 꿰뚫는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FBI 요원들의 활약상을 다룬다. 하지만 강력 범죄를 주로 다루다 보니 수사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저마다 한 번쯤은 납치, 폭행, 감금 등을 통과의례처럼 치르며, 이런 폭력적인 상황이 시즌 피날레를 장식하기도 한다. 특히 시즌 3와 12는 요원 중 누군가 공격당했다는 것을 암시하며 다음 시즌으로 이야기를 넘긴다. 시즌 3에서는 대낮의 뉴욕 도심에서 벌어지는 무차별 살인을 추격하던 요원들이 차량 폭발 테러의 목표가 되고, 시즌 12에서는 BAU와 악연이 깊은 연쇄살인범 스크래치의 함정인 줄 모르고 출동하던 요원들이 교통사고에 휘말리면서 끝이 난다. 두 사건은 공교롭게도 하치와 조금(?) 인연이 있다. 하치는 차량 폭발 사건으로 호감을 가졌던 수사관 케이트를 잃었고, 스크래치가 함정을 판 이유는 BAU를 떠난 하치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였다(당시 하치 역의 토마스 깁슨은 폭행 사건으로 하차한 상태).

종이의 집 파트 4-1 ‘파리 계획’

이미지: 넷플릭스

도피 생활 중 검거된 리오를 구하기 위해 스페인 조폐국에 이어 국립은행 강탈 계획을 세운 교수와 팀원들.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던 작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엉망진창 꼬여간다. 교수는 체포된 리스본을 구해야 하고, 수세에 몰린 국립은행 상황도 정리해야 한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 대담하게 움직인 덕분에 마침내 리스본이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가지만, 교수에게 승리의 순간은 짧기만 하다. 미처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지 못해 시에라 경감에게 은신처가 발각된 것이다. 교수를 능가하는 유일한 사람인 시에라 경감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제작진만 알 것이다.

루시퍼 시즌 4-10 ‘지옥의 왕좌’

이미지: 넷플릭스

FOX에서 넷플릭스로 안착한 [루시퍼]는 주인공 루시퍼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한다. 새롭게 등장한 전 연인 이브는 이전까지 단편적으로 드러났던 루시퍼의 내면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시청자는 지옥의 왕 루시퍼와 형사 클로이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더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두 사람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악마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클로이와 이별하고 지옥으로 돌아가는 루시퍼를 보게 될 거라 미처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옥의 왕좌에 앉은 루시퍼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흘러넘쳤다 해도 그의 곁에 클로이를 비롯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쓸쓸하기만 하다. [루시퍼] 시즌 5는 시즌 4보다 늘어난 16개의 에피소드로 돌아오며, 공개 시기는 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