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를 비롯한 영어권 국가에선 몰입에 방해된다며 자막이 필요한 비(非)영어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이들이 상당수다. 외국어 영화들이 북미 극장가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큰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핸디캡에 굴하지 않고 흥행에 성공한 작품도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1인치의 장벽’을 넘어 북미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Box Office Mojo 집계 기준)

1. 와호장룡 (2000)

개봉주말: $663,205
북미누적: $128,078,872
전세계누적: $213,525,736
제작비: $17,000,000

이안 연출, 주윤발과 양자경, 장첸, 장쯔이 주연 [와호장룡]이 20년째 ‘비영어/외국어 영화 흥행’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세기 청나라를 배경으로 보검 ‘청명검’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아시아권에서의 흥행은 다소 저조했던 반면, 빼어난 영상미와 화려한 와이어 액션이 북미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전체 성적의 60%인 1억 2,800만 달러를 북미에서 거둬들였다. 극중 양자경과 장쯔이의 결투나 주윤발과 장쯔이의 대나무숲 액션 시퀀스는 지금 봐도 명장면.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미술상, 음악상, 촬영상을 수상, [기생충] 전까지 가장 많은 오스카를 거머쥔 외국어 영화였다. (왓챠플레이 서비스 중)

2. 인생은 아름다워 (1997)

개봉주말: $118,920
북미누적: $57,247,384
전세계누적: $228,847,384
제작비: $20,000,000

세계 2차 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로 끌려간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블랙 코미디. 루비노 로메오 살모니의 소설과 감독이자 주연배우 로베르토 베니니의 아버지가 실제 겪었던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개봉 20주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명작이라 회자되고 있지만, 개봉 당시 몇몇 평론가에게서 “비유대인이 홀로코스트를 비극이 아닌 코미디로 묘사했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감독도 이러한 점을 우려해 정식 유대인 단체의 자문을 구한 이후 [인생은 아름다워]를 제작했다고.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에 이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5,72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3. 영웅 (2002)

개봉주말: $17,800,000
북미누적: $53,710,019
전세계누적: $177,395,557
제작비: $31,000,000

[와호장룡]과 더불어 2000년대 ‘무협영화 붐’을 이끌었던 장예모 감독 연출작. 전국시대 당시 천하통일을 앞둔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형가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장예모 특유의 빼어난 동양적인 영상미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액션배우 이연걸과 견자단이 합을 주고받는 결투 장면이 [영웅]의 백미. 이러한 장점은 북미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결과적으로 오프닝 1,780만 달러, 북미 누적 5,37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제5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 [러브 인 아프리카]에게 트로피를 내어주었다.

4. 기생충 (2019)

개봉주말: $393,216
북미누적: $53,369,749
전세계누적: $254,187,520
제작비: $11,400,000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작품. 역대 북미 개봉 한국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둔 작품이기도 하다(이전 기록은 [디 워]의 1,000만 달러). 상영관 세 군데서 ‘극장 평균 수익’ 12만 달러로 기분 좋게 출발, 이후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아카데미 시상식 전후로 엄청난 버프(?)를 받아 5,336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영웅]의 북미 성적과 35만 달러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외국어 영화 흥행 3위 자리도 넘볼 법했는데, 코로나19 여파로 아쉽게 무산되고 말았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차지했으며, 이외에도 국내외에서 받은 트로피 개수만 250여 개에 달한다고.

5. 사랑해, 매기 (2013)

개봉주말: $7,846,426
북미누적: $44,467,206
전세계누적: $100,486,616
제작비: $5,000,000

역대 멕시코 영화 흥행 1위에 빛나는 감동적인 가족 드라마. 평생을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어린 딸이 생긴 스턴트맨이 초보 아빠의 삶을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엄청난 흥행 기록을 세웠던 멕시코보다 한 달 앞서 북미에서 공개됐는데, 당시 호불호가 갈렸던 평단과 달리 관객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북미 4,44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역대 북미 개봉 스페인어 영화 중 최고 성적이라고. 2016년에는 오마르 사이 주연의 프랑스 영화 [투 이즈 어 패밀리]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왓챠플레이 서비스 중)

6.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2006)

개봉주말: $568,641
북미누적: $37,634,615
전세계누적: $83,850,267
제작비: $19,000,000

많은 이들이 기예르모 델 토로의 최고작이라 꼽는 판타지 잔혹 동화. 델 토로의 2001년작 [악마의 등뼈]와 마찬가지로 1940년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며, 한 소녀가 요정 판과 만나며 겪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칸 영화제 상영 이후 무려 22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은 걸로 유명한데, 지금까지 이 기록을 깬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제76회 아카데미 시상식 미술상, 촬영상, 분장상을 수상했으며, 북미 누적 성적은 3,700만 달러다. 여담이지만 국내 개봉 당시 가족 영화라고 홍보한 까닭에 그저 ‘기묘한 판타지’ 정도로 생각했다가 낭패를 본 관객도 여럿 있었다고. (왓챠플레이 서비스 중)

7. 아멜리에 (2001)

개봉주말: $136,470
북미누적: $33,225,499
전세계누적: $173,921,954
제작비: $10,000,000

관객 모두 입을 모아 ‘사랑스러운 영화’라 말하는 장 피에르 쥬네의 2001년작 로맨틱 코미디. 타인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일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던 아멜리에가 운명의 남자를 만나며 자신의 행복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아멜리에]는 앞서 소개한 2000년대 개봉작들과는 달리 상당히 적은 극장(최대 303개)에서 공개됐는데, 그럼에도 66주 동안 3,320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니 북미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셈이다. 이는 2014년 기준 불어 영화 중 최고 북미 흥행 성적이었으며, 지금까지 별도의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여전히 기록을 유지 중인 듯하다.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촬영상, 미술상, 음향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작. (왓챠플레이 서비스 중)

8. 무인 곽원갑 (2006)

개봉주말: $10,564,000
북미누적: $24,633,730
전세계누적: $68,072,848
제작비: $30,000,000

이연걸 주연의 2006년작 무협 영화. 중국 권법 중 하나인 연청권의 달인이자 전파자로 널리 알려진 곽원갑의 일대기를 그린다. 2002년작 [영웅]의 성공 이후 [더 독]과 [크레이들 2 그레이브]로 살짝 주춤했던 이연걸이 ‘정통 무협’으로 돌아온 것에 북미 평단과 관객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고, 이는 준수한 평가(로튼토마토 73%, 메타스코어 70)와 2,460만 달러라는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곽원갑의 후손들이 ‘곽원갑을 단순히 폭력적인 인물로 묘사했다’며 이연걸과 배급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한때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베이징 법원에서 실존인물을 허황되게 묘사한 것은 맞으나, 원고 측의 주장대로 명예훼손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왓챠플레이 서비스 중)

9. 일 포스티노 (1994)

개봉주말: $95,310
북미누적: $21,848,932
전세계누적: N/A
제작비: $3,000,000

칠레 유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픽션 영화. 이탈리아의 작은 섬으로 망명을 간 그가 우편배달부와 우정을 쌓으며 시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내용이 담긴 명작이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원작으로 하나, 결말이 다르다고 한다. 개봉 당시 북미 성적은 2,180만 달러,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음악상을 수상했다. [일 포스티노]는 우편배달부 마리오 역의 마시모 트로이시의 유작으로도 잘 알려졌는데, 심장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그가 수술을 미룰 정도로 열연을 펼치곤 촬영 종료 열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후일담이 있다. (왓챠플레이 서비스 중)

10. 달콤 쌉사름한 초콜릿 (1992)

개봉주말: $23,600
북미누적: $21,665,468
전세계누적: N/A
제작비: $2,000,000

라우라 에스키벨의 동명 베스트셀러 원작의 멕시코 로맨스 영화. 청춘남녀의 사랑과 성(性)을 요리책 형식으로 유쾌하고 에로틱하게 풀어내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앞서 [아멜리에]가 극장 대비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고 소개했는데, 알폰소 아라우 감독의 [달콤 쌉사름한 초콜릿] 역시 상당히 적은 극장 수(박스오피스모조 집계 최대 64개, The-numbers 집계 최대 172개)에서 2,166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당시 스페인어 영화 중 북미 흥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흥행 성적만큼이나 관객과 평단의 평가 역시 좋았지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는 데에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