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봄동

이미지: ABC

지난 4월 8일(현지시간) ABC의 최장수 시트콤 [모던 패밀리]가 프리쳇-던피-터커 식구들의 새로운 출발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11년 만에 종영했다. 2009년 9월 첫 방송된 [모던 패밀리]는 현대 미국 사회의 대표적인 가족 단위(핵가족, 재혼 가족, 동성 결혼 가족)를 상징하는 세 가족의 일상을 그린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높은 인기 속에 에미와 골든 글로브 등 주요 시상식을 꾸준히 휩쓸어 왔다. 한국 넷플릭스에도 시즌 11이 빨리 올라오길 바라며, 기존 10개 시즌 중 가족 구성원 간의 특별한 애정 혹은 연대감을 엿볼 수 있었던 5가지 순간을 되돌아본다.

1. 클레어의 밸런타인 데이를 지켜준 글로리아 (시즌 1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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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패밀리]의 역대 밸런타인 데이 에피소드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들을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특히 첫 시즌의 밸런타인 데이 편에서는 제이-글로리아, 클레어-필, 미첼-캠 세 부부가 로맨틱한 하루를 보내려 애를 쓰는데, 의외로 가장 성공한 커플(?)은 글로리아와 클레어였다. 둘은 비슷한 또래의 의붓 모녀 관계인 데다, 클레어의 친모 겸 제이의 전처 디디가 제이-글로리아의 결혼 피로연에서 만취해 추태를 부린 전적도 있어, 어색함을 완전히 씻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섹시한 ‘롤 플레이’를 위해 알몸에 코트만 걸쳤다가 난처해진 클레어를 재치 있게 도와주며 벽을 허물었다. 메인 캐릭터 중에서도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글로리아의 매력은 이 날 클레어와의 교감 덕분에 본격적으로 빛나기 시작한 셈.

2. 죽음을 예감(?)하고 가족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필 (시즌 3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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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받은 필은 며칠 후 걸려온 주치의의 전화를 받지 못하자 괜스레 불안에 떤다. 때마침 글로리아가 꾸었다는 흉몽을 듣고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음을 확신, 자식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못다 한 애정 표현도 해 준다. 와중에 의사가 전하려던 말이 뭔지도 모르면서 본인의 사망률을 60%에서 70%로 높여 말하는 필의 절망적인 얼굴이 압권이다. 급기야 온 가족이 소식을 듣고 몰려와 필을 위로하기에 이르는데, 마침내 주치의가 다시 전화를 걸어 진실을 알려 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미련 탓에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필의 원맨쇼로 인해 배꼽이 빠지면서도, ‘나도 저런 상황에 빠진다면 과연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라며 진지한 고민이 들게 만드는 에피소드다.

3. 미첼과 캠의 동상이몽 신혼 생활 (시즌 6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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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계속 단꿈에 젖은 캠은 매일같이 미첼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남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스킨십을 시도한다. 그러나 냉철한 변호사답게 현실에 금방 적응한 미첼은 캠의 행동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미첼은 직장에서 연 파티까지 찾아와 애정 공세를 퍼붓는 캠에게 결국 쓴소리를 던지고, 속이 상한 캠과 미첼은 집에서 격렬한 언쟁을 벌인 뒤에야 서로의 진심을 깨닫는다. 육아 및 가사, 직장 생활 등으로 배우자와 오붓한 시간 한 번 갖기 힘든 기혼 시청자라면 웃픈 상황에 더더욱 공감할 밖에. 그래도 미첼과 캠처럼 진솔한 대화를 갖는다면 뜻밖의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4. 제이와 글로리아의 좌충우돌 결혼 10주년 파티 (시즌 9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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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제이와 글로리아의 10주년 결혼기념일이 다가오고, 클레어와 필은 마술쇼를, 미첼과 캠은 밴드 공연을 각각 준비한다. 한편 제이는 매니가 대학 생활에 바빠 파티에 못 와서 글로리아의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글로리아는 자신이 10년 전보다 살이 쪄 필의 마술쇼에서 입을 웨딩드레스가 맞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몰래 다이어트에 열중하고 있었다. 설상가상 캠은 자신의 드럼 연주를 성의 있게 보지 않는 미첼 때문에 파티 내내 심통을 부리고, 필은 과거 마술사 데뷔 불발과 관련된 진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는다. 가족 행사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저마다 욕망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꼴들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화해와 함께 최선의 길을 걷는 이들 가족이야말로 [모던 패밀리]를 떠나보내기 아쉬운 결정적인 이유다.

5. 생일 그게 뭣이 중헌디? 새로운 가족의 탄생 (시즌 10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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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임신을 한 헤일리의 출산이 코앞에 닥친 가운데, 가족들은 지난 1년간 있었던 각자의 생일을 회고하는데 어째 전부 난감한 상황뿐이다. 장인어른이 손아랫동서에게 받은 책을 모르는 척 생일 선물로 주지 않나(필), 생일을 맞아 모든 식구 앞에서 여친에게 청혼했다가 차이지 않나(매니), 기껏 조카의 임신 사실을 숨겨줬더니 남편의 실수로 본인의 생일 파티에서 비밀이 들통나지 않나(캠). 시즌 피날레까지도 프리쳇-던피-터커 일가의 삶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그런 만큼 식구들이 갓 태어난 헤일리의 쌍둥이 아기들을 처음으로 만나며 [라이온 킹] OST “Circle of Life”가 흘러나오는 엔딩은 여태껏 벌어진 모든 곤란을 잊어버릴 만큼 감동적이다. 조만간 국내에서도 볼 수 있을 [모던 패밀리] 마지막 시즌은 이 이상으로 찡할 게 분명하니, 미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 두자.

에디터 봄동: 책, 영화, TV, 음악 속 환상에 푹 빠져 사는 몽상가. 생각을 표현할 때 말보다는 글이 편한 내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