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황금기’는 시네필들의 단골 토론 주제 중 하나다. 간단히 토마스 에디슨이 키네스코프를 발명한 순간부터 오늘날까지를 ‘영화의 역사’라 칭했을 때, 다른 해보다 특별한 인상을 남긴 순간들이 있다. 영화를 넘어 대중문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혹은 이제껏 보지 못한 독창적이고 멋진 각본이나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배우, 천재적인 연출자들이 혜성처럼 등장한 해는 과연 언제였을까? 할리우드 영화사에 길이 남을 특별한 연도들을 살펴보자.

1. 1939

이미지: (주)피터팬픽쳐스

최고 흥행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391,023,031
아카데미 작품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IMDb 평점 평균: 6.73

‘할리우드 황금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1939년이다. 장르가 점차 세분화되고 ‘할리우드 체재’를 완성시켰던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에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1939년’을 콕 집어서 언급하는 이유는 제작과 스타 시스템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이기 때문이다(반대로 폐해도 심했지만). 이는 이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역마차], [스미스씨 워싱톤에 가다] 등 10편의 후보작 중 대부분이 81년이 지난 지금도 ‘고전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시 개봉작 중 무려 19편이 국립영화등기부에 등재됐는데, 한 해에 이토록 많은 영화가 등록된 건 유일무이하다고. 가장 참고로 오스카 트로피 10개를 거머쥐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인플레이션을 적용하면 전 세계 37억 600만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이는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흥행 기록이다.

2. 1959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최고 흥행작: [벤허], $74,427,638
아카데미 작품상: [벤허]
IMDb 평점 평균: 6.27

1959년이 특별한 해로 기억되는 건 왜일까? 우선 역대 최고의 코미디 영화이자 마릴린 먼로의 ‘커리어 하이’라 불리는 [뜨거운 것이 좋아]가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볼 수 없던 여장남자나 동성애 소재를 다루기도 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솔직히 이젠 내 알바 아니오”에 버금가는 명대사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죠”로 관객들에게 여운을 선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액션 시퀀스 두 개가 이 당시 등장했는데, 바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경비행기 추격전과 [벤허]의 마차 경기다. 참고로 [벤허]는 1997년 [타이타닉] 이전까지 누구도 깨지 못했던 ‘아카데미 11관왕’ 기록을 보유한 작품이었다. 이외에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나 [리오 브라보]를 비롯한 명작이나 ‘역대 최악의 영화’하면 항상 거론되는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까지, 모두 영화사에 많은 영향을 준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다.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3. 1967

이미지: 시네마 뉴원

최고 흥행작: [졸업], $105,015,008
아카데미 작품상: [밤의 열기 속으로]
IMDb 평점 평균: 6.22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화계 거장들은 뮤지컬이나 ‘검과 샌들(중세 이탈리아 배경의 서사 영화)’ 장르가 흥행의 열쇠라 생각했다. 그러나 20-30대 관객들은 보다 ‘힙’한 작품을 원했고, 이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한 젊은 감독들이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른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당시 작품들은 기존 영화들과 달리 폭력과 섹스 묘사가 대담했던 것과 더불어 기성세대를 향한 반항도 담겨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졸업], [밤의 열기 속으로], [특공대작전], [폭력탈옥]을 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가 역수입되어 1964년 이탈리아에서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황야의 무법자]가 3년 뒤 북미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4. 1974

이미지: 예지림엔터테인먼트

최고 흥행작: [브레이징 새들스], $119,601,481
아카데미 작품상: [대부 2]
IMDb 평점 평균: 6.24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흐름이 계속되면서 1974년에는 옛 할리우드 체재가 완전히 무너졌다. 젊은 관객을 사로잡으려 할리우드는 젊은 감독들에게 기회를 주기 시작하는데, 이때 데뷔한 이들 중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나단 드미, 존 카펜터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혹은 아직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감독들의 데뷔 연도라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이지만, 당시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던 감독들도 많은 명작들을 탄생시키며 할리우드 영화 역사를 빛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2]와 [컨버세이션], 마틴 스콜세지의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 타운]이 대표적이다. ‘슬래셔 영화’의 아버지 격이라 불리는 [텍사스 전기톱 학살]과 [블랙 크리스마스]가 1974년 개봉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5. 1976

이미지: (주)영화사오원

최고 흥행작: [록키], $225,000,000
아카데미 작품상: [록키]
IMDb 평점 평균: 6.01

1976년, 실베스터 스탤론이 할리우드에 신성처럼 등장한 해다. 스탤론이 각본과 주연을 맡은 [록키]는 100만 달러로 북미에서만 1억 1,7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경이로운 흥행과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편집상을 수상하며 ‘웰메이드 스포츠 드라마’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록키]의 작품상 수상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과 [바운드 포 글로리], [네트워크], [택시 드라이버]라는 희대의 명작들이 후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누가 수상하더라도 논란이 있었을 것만 같다). 일각에서는 [택시 드라이버]가 당시 암울했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반면, [록키]는 ‘언더독의 성공담’으로 관객들에게 희망을 준 게 엇갈린 희비의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외에도 [캐시]나 [오멘]과 같은 명작 공포 영화나 [마지막 총잡이], [꼴찌 야구단]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1976년을 빛냈다.

6. 1982

이미지: UIP 코리아

최고 흥행작: [E.T.], $793,482,178
아카데미 작품상: [간디]
IMDb 평점 평균: 6.25

1982년 여름은 SF와 판타지, 호러 팬들에게 꿈같은 해였다. 오늘날 SF 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블레이드 러너]부터 [매드 맥스 2], [더 씽], [폴터가이스트]와 [13일의 금요일 3] 등 여러 작품이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역작이라 꼽히는 [E.T.]가 북미 박스오피스를 점령했던 시기도 이때다. 그러나 오로지 장르물만 주목을 받았다면 1982년은 특별한 해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간디]와 [투씨], [심판], [의문의 실종] 뿐 아니라 [소피의 선택], [람보], [청춘의 양지], [리치몬드 연애 소동] 등 지금까지 회자되고 다시 꺼내 보는 작품들이 있었기에 많은 영화인들이 1982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닐까.

7. 1994

이미지: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월트디즈니

최고 흥행작: [라이온 킹], $968,511,805
아카데미 작품상: [포레스트 검프]
IMDb 평점 평균: 6.18

1994년은 ‘언제, 누가 극장을 찾아도 마음에 드는 영화를 찾을 수 있다’라 표현할 정도로 영화적으로 풍성한 해였다. 코미디 장르는 짐 캐리가 [마스크], [덤 앤 더머], [에이스 벤츄라]로 장악했고, 액션 팬들에게는 [스피드]나 [크로우], [트루 라이즈], [레옹]이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당시 흥행 1위를 기록한 [라이온 킹]이면 충분했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 6개 트로피를 들어올린 [포레스트 검프]나 [쇼생크 탈출],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을 비롯한 숱한 명작들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이 1994년을 특별한 해로 꼽는 건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때문이다. 기존 영화의 서사 구조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스토리와 폭력성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킨 이 ‘B급 향기 물씬 풍기는’ 작품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일찍이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700만 달러로 2억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엄청난 흥행까지 기록했다.

8. 1999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최고 흥행작: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 $1,027,082,707
아카데미 작품상: [아메리칸 뷰티]
IMDb 평점 평균: 6.41

1999년은 ‘제2의 할리우드 황금기’, 또는 1939년과 대등한 영화적 성과를 보여주었다 말하는 해다. 2000년을 코 앞에 둔 기념비적인(?) 해에는 16년 만에 나온 [스타워즈] 신작이 박스오피스를 집어삼켰고, ‘미국을 대표하는 블랙 코미디’라 평가받는 [아메리칸 뷰티]가 온갖 시상식을 휩쓸고 다녔다(이듬해 아카데미까지). 그러나 두 작품 때문에만 1999년을 제2의 황금기라 부르는 게 아니다. [매트릭스]와 [블레어 위치]는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시기에 걸맞은 새로운 주제와 시도로 액션과 공포 영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M. 나이트 샤말란과 데이비드 핀처의 [식스 센스]와 [파이트 클럽]은 엄청난 반전으로 모두에게 충격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매그놀리아], [토이 스토리 2], [인사이더]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20세기의 마지막 해를 빛내주었다.

9. 2007

이미지: (주)해리슨앤컴퍼니, CJ 엔터테인먼트

최고 흥행작: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960,996,492
아카데미 작품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IMDb 평점 평균: 6.69

이제 겨우 1/5이 지났을 뿐이지만, 2000년에도 할리우드를 빛낸 순간들이 몇 차례 있었다. 지금 소개할 2007년이 그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2007년을 거론하는 이유는 장르불문하고 명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이 하나씩은 꼭 있는 풍성한 라인업에 있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역사상 최고의 악역 중 하나로 불리는 안톤 쉬거를 탄생시켰고, [조디악]과 [데어 윌 비 블러드], [본 얼티메이텀]은 각각 범죄와 드라마, 첩보 장르에서 손에 꼽히는 명작이라 평가받는다. [트랜스포머], [라따뚜이], [어톤먼트]와 [주노]도 2007년 할리우드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피터 파커의 현란한(?) 춤사위로 기억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