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도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 관찰력과 꼼꼼한 기억력, 분야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지식, 증거에 근거한 논리적인 추론 혹은 본능적으로 탁월한 감각,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남다른 호기심과 추진력 등, 이중 몇 가지만 갖추고 있어도 아래에 소개하는 명탐정/명수사관이 될 수 있다. 비록 최신 과학 기술의 힘을 빌릴 수 없고 마차나 자전거가 이동 수단이 될 때도 있지만, 자신만의 재능을 살려 각종 난제에 도전하는 인물들이 있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살인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주인공들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를 소개한다.

머독 미스터리(Murdoch Mysteries, 2008~)

이미지: CBC

지난 3월, 시즌 13 방영을 마친 [머독 미스터리]는 모린 제닝스의 연재소설을 원작으로, 19세기 후반의 캐나다 토론토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윌리엄 머독 형사의 활약을 그린다.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이지만, 과학 지식에 해박한 인물이라는 설정을 통해 지문 감식, 혈액 검사 등의 법의학적 증거를 토대로 사건을 풀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수사 방식을 선호하면서도 머독을 아낌없이 신뢰하는 브래켄리드 경감, 언뜻 어눌해 보이긴 해도 경관의 본분에 충실한 조지 크랩트리 순경, 그리고 머독과 미묘하게 핑크빛 기류가 오가는 법의학자 줄리아 오그던 박사가 조력자로 등장하며, 때때로 니콜라 테슬라, 코난 도일, 마크 트웨인, 후디니 등 당대의 유명 인사들이 의문스러운 사건에 얽힌 인물로 나와 눈길을 끈다. 고집스럽거나 괴팍하거나 하는 수사물의 주인공에게 흔한 유별난 모습에 질린다면, 과학을 좋아하고 반듯한 성격의 머독 형사는 색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인데버(Endeavour, 2012~)

이미지: ITV

콜린 덱스터의 소설 속 주인공 모스 경감의 젊은 시절인 1960년대로 향해 옥스퍼드 대학 출신(중퇴)의 모스가 세심한 관찰력과 끈기를 앞세워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그린다. 기존의 수사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는 모습을 통해 미스터리 수사극의 흥미를 전하면서, 숀 에반스가 연기하는 모스의 인간적인 매력을 풍부하게 담아낸다. 클래식 음악과 술,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하는 모스는 사교적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성향 탓에 주변에서 괴짜 취급을 받고 승진에서는 밀리기도 하지만, 서스데이 경감과는 멘토이자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관계를 유지한다. 또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난해한 사건을 해결하지만, 유독 로맨스에는 약한 모습을 보여 연민을 자아낸다. 올해 2월 방영된 시즌 7은 1970년대로 배경을 옮겼다.

리퍼 스트리트(Ripper Street, 2012~2016)

이미지: BBC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가 종적을 감춘 화이트채플 거리의 법과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수사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으로 화이트채플 강력반을 이끄는 레이드 경위, 그의 믿음직한 부하이자 행동파인 드레이크 경사, 미국에서 온 비밀 많은 외과의 잭슨, 세 사람을 중심으로 잔혹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셜록 홈즈처럼 뛰어난 수사력을 지닌 인물은 등장하지 않지만,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개성 뚜렷한 인물들이 빅토리아 시대 배경의 액션 수사물 같은 드라마를 흥미롭게 이끈다.

브라운 신부(Father Brown, 2013~)

이미지: BBC

G. K. 체스터튼 작가가 탄생시킨 명탐정 브라운 신부가 겉보기엔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원마을에서 발생하는 살인 미스터리의 해결사로 나선다. 브라운 신부의 주무기는 연륜에서 우러나온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다. 오랜 세월 신부로 지내며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미처 수사관이 보지 못하는 범죄자의 심리를 꿰뚫는 것. 드라마는 원작에 느슨하게 바탕을 두고, 브라운 신부의 인간적인 매력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위트 있게 묘사하면서, 서로 가깝게 지내면서도 어두운 욕망과 비밀을 숨긴 사람들이 얽힌 비극적인 사건을 풀어간다.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수녀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시리즈 [더 시스터 보니페이스 미스터리스]가 제작된다.

그랜트체스터(Grantchester, 2014~)

이미지: ITV

제임스 런시의 소설을 각색한 [그랜트체스터]는 [브라운 신부]처럼 195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성직자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다른 게 있다면, 브라운 신부는 노년의 가톨릭 사제, [그랜트체스터]의 주인공 시드니는 젊고 매력적인 성공회 신부라는 것. 또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관심을 가지는 브라운 신부의 개입을 막으려는 말로리 경위와 달리, [그랜트체스터]의 키팅 형사는 신부라는 신분 특성상 사람들과의 대화가 용이하고 관찰력이 좋은 시드니를 파트너 삼아 사건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시즌 4에서 제임스 노튼의 시드니가 떠나고, 톰 브리트니의 윌 신부가 새롭게 합류했는데, 역시 젊고 훈훈한 비주얼을 뽐낸다.

에일리어니스트(The Alienist, 2018~)

이미지: 넷플릭스

다니엘 브륄, 루크 에반스, 다코타 패닝이라는 스타 캐스팅을 앞세워 19세기 말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는 희대의 살인마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정신 의학자 크라이슬러, 신문 삽화가 존 무어, 경찰국장 루스벨트의 비서 사라 하워드(후에 뉴욕 최초의 여성 경찰이 된다), 과학과 현장 조사에 능한 아이작슨 형제가 거리의 소년들을 노리는 섬뜩한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뭉친다. 19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달리,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인의 실체를 구체화시키고 지문 감식 같은 법의학 증거를 동원하는 (나름의) 현대적인 수사 기법을 활용한다. 칼렙 카의 또 다른 소설 [엔젤 오브 다크니스]를 각색한 두 번째 시즌이 공개될 예정이다.

셜록 홈즈의 모험(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 1984~1985)

이미지: ITV

아서 코난 도일이 탄생시킨 최고의 명탐정 셜록 홈즈. 오랜 세월 사랑받는 캐릭터인 만큼 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수차례 만들어졌고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 당장은 ‘셜록’하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묘기에 가까운 추리쇼를 볼 수 있는 [셜록]이 먼저 떠오를 수 있지만, 원작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제레미 브렛 주연의 [셜록 홈즈의 모험]을 빼놓을 수 없다. 브라운관 TV 시절의 화면 비율과 예스러운 영상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도, 예민하면서도 지성과 위트를 겸비하고 괴짜스러운 매력을 뽐내는 제레미 브렛의 셜록이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에 근거해 난해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에 푹 빠져들 것이다. 셜록의 충실한 조력자 왓슨과의 브로맨스도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아가사 크리스티: 미스 마플(Agatha Christie’s Marple, 2004~2013)

이미지: ITV

에르큘 포와로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가장 유명한 탐정일지 몰라도 유일한 인물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보 삼아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살인 미스터리의 동기와 트릭을 밝히는 빈틈없는 노부인, 제인 마플도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매혹적인 탐정이다. 영국의 존경받는 배우 제럴딘 맥이완(시즌 1~3)과 줄리아 맥캔지(시즌 4~6)가 각각 조금씩 다른 분위기의 제인 마플을 연기한다. 제럴딘 맥이완의 마플은 수다스럽고 호기심이 넘치며, 줄리아 맥캔지의 마플은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이 눈에 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티모시 달튼, 댄 스티븐스, 제임스 다시, 킬리 호위스, 벤 대니얼스 등 영화와 드라마에서 익숙한 배우들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블렛츨리 서클: 샌프란시스코(The Bletchley Circle: San Francisco, 2018)

이미지: ITV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암호를 해독했던 여성들의 활약상을 그린 [블렛츨리 서클]의 스핀오프 드라마. 전작의 진과 밀리가 밀리의 사촌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후, 새로운 조력자 아이리스와 헤일리를 만나 각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작이 여성의 사회 활동을 터부시하는 보수적인 사회상을 묘사하면서 여성을 노린 범죄를 중심으로 전개했다면,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이야기는 여성뿐 아니라 유색인종과 성소수자에 차별적인 사회로 더 확장해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맞서는 모습을 담아낸다.

프로젝트 블루 북(Project Blue Book, 2019~2020)

이미지: History channel HD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프로젝트 블루 북]은 지금까지 소개한 수사극과 결이 다르다. 드라마의 두 주인공인 천문학자 알렌 하이넥 박사와 공군 마이클 퀸 대위가 쫓는 대상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아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현상과 실체다. [프로젝트 블루 북]은 1950~60년대 사이 미국 공군이 비밀리에 UFO 목격담 등 관련 사건들을 조사했던 실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공군의 지원을 받은 박사와 대위가 이상 현상이 목격된 곳으로 찾아가 진위 여부를 조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수수께끼 같은 현상과 냉전시대라는 사회적 배경이 충돌해 독특한 미스터리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