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거핀’은 이야기에 동기만 부여할 뿐, 구체적인 설명 없이 퇴장하는 장치를 뜻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나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에 등장한 돈가방과 동상처럼 관객은 전혀 알 필요가 없지만, 극중 인물이 중요하게 여기고 행동의 발단이 된 물건들이 대표적인 예다. 영화 역사를 통틀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수많은 맥거핀 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스타워즈 시리즈 – 데스 스타 설계도

이미지: Lucasfilm

오리지널 [스타워즈] 삼부작의 데스 스타 설계도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맥거핀 중 하나로 꼽힌다. 설계도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훔쳤는지 설명하지 않지만, 여기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개봉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비로소 반란군이 은하 제국의 설계도를 탈취하는 과정을 알 수 있게 됐는데, 이 작품에서도 설계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맥거핀을 위한 영화’에서 다시 한 번 맥거핀으로 사용된 셈이다.

레이더스 – 성궤

이미지: Paramount Pictures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는 수많은 맥거핀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첫 작품 [레이더스]에 등장하는 황금 성궤다. 히틀러의 나치 부대가 불멸의 힘을 준다는 전설의 성궤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인디아나 존스가 막는다는 게 바로 [레이더스]의 줄거리다. 그렇다면 정말 성궤에는 불멸의 힘이 담겨있었을까? 애석(?)하게도 알 길이 없다. 알 수 없으니 맥거핀이고, 또 설령 그런 힘이 존재한다한들 성궤를 열었던 나치군이 끔찍하게 녹아내린 걸 보면 인간이 품을만한 힘은 분명 아닌 듯하니 궁금해하진 말자.

펄프 픽션 – 서류가방

이미지: Miramax

[펄프 픽션]의 모든 사건은 마르셀러스의 서류가방에서 시작된다. 소유자가 누군가에게 목숨과 가방을 빼앗기고, 다음 사람도 비슷한 운명과 마주하는 식이다.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금괴, 아카데미 트로피, 마르셀러스의 영혼 등), 개봉한 지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맥거핀들과 마찬가지로 사실 내용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방 하나 때문에 벌어지는 흥미롭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내용물에 대한 호기심이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니 말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 라이언 일병

이미지: 유아이피-씨아이씨영화및비디오배급(유)

영화 제목에 떡하니 이름이 적힌 만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제임스 라이언 일병이 상당히 중요한 인물일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라이언 일병은 존 H. 밀러 대위가 수행하는 임무의 동기이자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물론 극중 비중이 적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본 뒤 그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구출 작전을 통해 ‘감동 휴먼 드라마’가 아닌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려 했고, 스필버그의 전략은 보기 좋게 통했다.

미션 임파서블 3 – 토끼발

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의 연출작 [미션 임파서블 3]에는 에단 헌트뿐 아니라 수많은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한 토끼발이 등장한다. 영화 내용을 미루어보아 토끼발은 생화학무기로 추정되나, 안전용기에 담겨있는 데다, 케이스마저 불과 몇 초 정도만 등장하는 수준이라 도무지 실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사건의 동기가 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호기심도 유발했으니, 정말 맥거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셈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J.J. 에이브럼스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아니 그래서, 도대체 토끼발이 뭡니까?”이라고 묻고 싶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 절대 반지

이미지: (주)디스테이션

맥거핀의 기본적인 활용 방법은 영화 초반에 관객들에게 ‘맥거핀이 될 무언가’를 소개하고, 인물들이 이를 두고 벌이는 사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절대 반지가 대표적인 예다.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에서는 절대 반지가 지닌 힘과 파괴되어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 두 속편에선 인물들의 여정과 이야기의 결말을 보여주며, 프리퀄인 [호빗] 시리즈는 과거를 그린다. 여섯 편의 영화가 하나의 맥거핀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절대 반지가 다른 맥거핀에 비해 가치가 명확해 ‘맥거핀이 아니다’라 주장할 수 있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열망하는 물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훌륭한 맥거핀이라 할 수 있다.

행오버 시리즈 – 더그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행오버] 시리즈의 ‘정신 나간 스토리’에 심취한 순간 자연스레 기억에서 사라지는 인물이 더그다. 다른 울프팩 멤버들에 비해 분량이 적은 것도 서러운데, 심지어 단독 포스터를 제외하면 그의 모습이 담긴 공식 영화 포스터가 단 하나도 없다. 이토록 존재감이 없기에, 오히려 더그라는 캐릭터는 [행오버]에서 맥거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매번 사라지는 더그가 아니었면 술에 진탕 취한 필과 스튜, 앨런은 호랑이 옆에서 잠이 깨거나 얼음통에서 잘린 손가락을 발견하는 일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