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봄동

이미지: 왓챠플레이

바람피운 남편과 이혼하는 대신 살인을 택한 세 여성의 코믹 복수극 [와이 우먼 킬(Why Women Kill)]이 지난달 말 왓챠플레이를 통해 공개된 이후 장안의 화제작이 됐다. 지금껏 쏟아진 불륜 소재 작품 중에서 [와이 우먼 킬]이 사랑받는 건 무엇 때문일까. 촌철살인 명대사의 향연? 첫 화부터 남편들의 부정을 폭로하는 초스피드 전개? 세 시대를 매끄럽게 넘나드는 미장센? 전부 맞는 얘기지만 하나 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세 주인공의 서사가 주체적인 ‘선택’과 ‘책임’으로 짜였다는 사실이다. 주인공 베스 앤, 시몬, 테일러가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어떤 대책을 구상하고 실행하는지, 그로부터 비롯되는 결과를 어떻게 감수 혹은 극복하는지 되짚어보자.

손에 손 잡고, 베스 앤의 특별한 연대

이미지: 왓챠플레이

1963년의 전업주부 베스 앤은 정체를 숨긴 채 남편 롭의 정부 에이프릴과 친구(!)가 되면서 환골탈태하는 캐릭터다. 착하고 헌신적인 아내로만 살던 베스 앤은 묻어둔 자아를 깨우면서 무해한 듯 자신을 구속해 온 가부장제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그의 변모는 감동적이면서도 때때로 웃지 못할 사고를 낳기도 한다. 특히 가정폭력의 피해자 메리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네며 던지는 일침은 맵다 못해 얼큰하기까지 하다. “하느님은 이해 못할지도 모르죠. 근데 하느님 아내는 분명 이해할 걸요.” 불륜의 희생자에 머무르지 않고 남다른 방식으로 다른 여성들은 물론 본인까지 구원하는 베스 앤. 그의 성장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쾌감은 ‘사이다’란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몬의 애틋한 의리

이미지: 왓챠플레이

1984년, 패서디나 일대를 주름잡는 사교계 명사 시몬은 남편 칼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고, 본인도 친구의 아들 토미와 내연 관계로 발전하면서 삶이 송두리째 달라진다. 서로의 약점을 쥔 채 엎치락뒤치락 상처를 주고받던 부부는 칼이 ‘이름을 말할 수 없는(당시 사회 분위기상)’ 병, 에이즈에 걸리면서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한다. 시몬은 칼의 병세가 깊어지자 고대하던 토미와의 밀월여행을 뒤로하고 그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자신과 남편을 따돌리는 이들의 속물적인 태도를 비난하며 칼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내어 준다. 남의 눈을 두려워하며 체면 지키기에 급급하던 시몬이 오로지 사랑을 지키고자 등을 돌린 친구와 이웃에게 애원까지 하는 모습은 진심 어린 연민과 응원을 유발한다.

잘못된 만남, 테일러의 참지 않는 한 방

이미지: 왓챠플레이

이미지: 왓챠플레이
세월이 또 흘러 2019년, 다자연애자 테일러와 남편 일라이는 요즘 시각으로 봐도 꽤 파격적인 이른바 ‘개방 결혼’을 지속 중이다. 겉보기에 평온했던 일상은 한 식구로 살게 된 테일러의 동성 연인 제이드가 일라이의 관심을 사로잡으면서 급격히 분열된다. 암묵적인 규칙을 어기고 일라이와 둘만의 관계를 쌓은 것도 모자라, 일라이의 재기를 이용해 한몫 단단히 잡겠다는 제이드의 꿍꿍이는 테일러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마저 분노에 떨게 한다. 결국 테일러는 교도소에 수감된 제이드의 전 남친 듀크로부터 들은 충격적인 진실을 기회 삼아 일라이를 설득하려는 시도를 한다. 애초에 테일러 본인이 부부만의 영역에 제 3자를 들인 점에서 자충수였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그래도 위기에 처한 남편(비록 무능한 데다 자격지심까지 크지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테일러 역시 앞의 베스 앤과 시몬처럼 매력적이고 공감 가는 주인공임에는 틀림없다.

[와이 우먼 킬] 마지막회의 엔딩 시퀀스에서 베스 앤은 평소와 다름없이 상냥한 미소를 띤 채 말한다. “행복은 얻기 어렵지만, 요령은 살면서 내린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거예요.” 이를 증명하듯 같은 엔딩 속 시몬과 테일러의 얼굴도 어느 때보다 개운하고 행복해 보인다. 어떤 이들은 불륜과 살인이라는 주제에 대해 우려와 반감을 표할 것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시청자들이 [와이 우먼 킬]에 크게 몰입하고 어떤 전율마저 느꼈다면, 그것은 세 여성의 행보를 통해 삶의 인과 관계를 스스로, 그리고 끝까지 엮고 매듭짓는 게 진짜 권리요 자유임을 실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에디터 봄동: 책, 영화, TV, 음악 속 환상에 푹 빠져 사는 몽상가. 생각을 표현할 때 말보다는 글이 편한 내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