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가 7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행사 규모는 예년보다 대폭 축소됐지만, 온·오프 동시 상영 및 좌석 간 거리두기 등의 철저한 방역 체계를 준수,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언택트 영화제로 운영됐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들은 매진 사례가 속출했던 지난 11일 부천을 방문해 뉴 노멀 시대의 영화제를 경험하고 왔다.

에디터 영준 “부천이 이렇다면 부산은 어쩌지”

예매창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화들짝 놀랐다. 원하는 작품 예매에 성공하기는커녕, 웬만한 상영작이 전부 매진이었다. 제목만 보고 급하게 표를 구해 상영관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한 칸 띄어 앉기’도 아닌 ‘두 칸 띄어 앉기’를 실시하고 있으니 예상보다 좌석이 한참 적을 수밖에. 당일치기로 즐기는 영화제였기에 보고 싶었던 작품을 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집과 사무실 밖에서 느낀 영화인들의 에너지 덕에 기분 전환을 제대로 했다. 그나저나 올해 부산 국제영화제도 이럴 텐데 벌써부터 막막하다.

1.야만의 땅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이미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미국 남북전쟁 시기 당시, 중립을 지키며 미주리에 머물던 프랑스 부르주아들이 북부군의 위협을 받아 탈출을 시도한다는 내용을 그린 서부극. ‘프랑스인’이 주인공인 ‘미국 배경의 서부극’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월드 판타스틱 블루 상영작인 [야만의 땅]은 기존 클리셰를 비튼다는 점에서 꽤나 인상적이다. 특히 백인 남성이 아닌 타지의 여성’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시선을 끄는데, 극 초반에 수동적이던 여성 캐릭터들이 성장을 거듭해 주체적으로 위기에 맞서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보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다만 중반부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최종 보스인 줄 알았던 인물(역시나 여성)이 다소 허망하게 퇴장한 부분에서 맥이 탁 풀리는 건 아쉽다. 1시간 58분이 아닌 90분 정도의 영화였다면 딱 좋았을 텐데.

2. 앤트럼: 가장 치명적인 영화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이미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은 역시 월드 판타스틱 레드나 금지구역 상영작 한 편쯤은 봐줘야 제 맛이다. 비록 1순위 [임페티고어]나 [성의 극약]은 아니지만, [앤트럼: 가장 치명적인 영화]는 실험적이고 기괴한 게 매력인 작품이다. 초반부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1970년대의 저주받은 영화’를 완벽히 복원했다고 설명한다. 진지한 경고문까지 있길래 꽤나 긴장했는데, 알고 보니 이 작품은 모큐멘터리 영화였다. 하긴, 진짜 저주받은 영화를 상영할 리가 없지. 복원된 영화라 소개된 작품은 한 소년과 누나가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되살리려 금지된 의식을 진행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모큐멘터리란 사실에 맥이 조금 풀리긴 했지만 35mm 필름을 통해 재현해낸 올드한 감성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 또한 웬만한 공포 영화 부럽지 않았다.

에디터 혜란 “영화제의 자유와 활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까”

예상대로 주말 상영작은 표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매표 전쟁에서 장렬히 패배한 후 쓰라린 마음을 달래며 예상보다 더 차분한 분위기를 음미했다. 마스크가 얼굴을 짓누르는 건 익숙해졌지만, 어딘가를 가거나 실내를 출입하는 건 예전처럼 할 수 없었다. 난생처음 전자출입 명부를 사용하고 나서야 코로나19가 일상과 자유에 미치는 영향을 새삼 깨달았다. 다시는 영화제나 극장에 자유롭게 다닐 수 없겠지. 10월에 열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이럴 텐데… 영화에 대한 애정이 몇 시간 동안 느낄 갑갑함을 넘어설 수 있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1. 래시 컴 홈 – 패밀리 존

이미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빨간 맛, 매운맛이 많은 BIFAN 특성상 순한 맛 추구자인 에디터는 볼 만한 작품이 제한되어 있다(절반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래도 BIFAN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제임을 증명하기 위해, 고르고 골라서 순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 ‘패밀리 존’ 섹션에 소개된 [래시 컴 홈]은 ‘귀여운 강아지 영화’라 선택했다. 영화는 집안 사정으로 주인 플로와 떨어져야 했던 반려견 래시가 북해를 건너고 먼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반려견과 소년이 서로에게 가진 애틋한 마음이 가장 돋보이지만, 독일의 어려운 지역 경제와 가정의 경제적 위기도 전체 관람가 수준에 맞춰 잘 다뤄진다. 마무리가 모두에게 해피엔딩인 것도 만족스럽다.

2. 제임스 VS 미래의 자신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이미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블루 섹션에 선정된 [제임스 VS 미래의 자신]은 캐나다 SF 로맨스 영화로, 사교성 제로에 은둔을 좋아하는 이론물리학자 제임스의 앞에 미래의 그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미래의 노인 제임스는 외롭지 않기 위해 과거의 자신을 바꾸려 하고, 인간관계보다 학문적 성취에 더 집착하는 제임스는 미래의 자신이 하는 모든 충고를 거부한다. ‘시간 여행’이란 SF적 설정으로 눈길을 끌지만, 영화는 미래가 아닌 현재를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과거가 당신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면 정리해야 하며, 당신을 사랑하는 지금 이곳의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말이다. 전체적으로 가볍지만, 시간 여행을 하면 몸이 늘어난다는 것처럼 제작 한계를 극복하려는 엉뚱한 설정(현재와 미래의 제임스를 연기한 두 배우의 체격 차이가 크다)이나 가끔 등장하는 15금 유머가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에디터 원희 “코로나 시대에도 영화 팬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이번 BIFAN는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았다. 코로나 시대에 참석하게 된 대형 영화제인지라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이 컸는데, 영화제를 손꼽아 기다려왔던 영화 팬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일찍부터 예매한 사람들이 가득해 매진된 영화가 속출한 탓에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양옆 두 자리씩 비워둬야 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관객 수가 적어진 점도 한몫했지만, 색다르거나 접하기 어려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참석한 영화 팬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보고 싶었던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1. 카고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이미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제에 참석할 때마다 보고 싶은 영화 목록을 작성하다 보면 꼭 한 편은 인도 영화가 순위권에 들어간다.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 중 하나였던 [카고]는 아라티 카다브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인도에서 최초로 제작된 SF 영화다. 우주에서 오랫동안 홀로 유영한 프라하스타는 지구에서 전송된 화물을 재활용해 재전송하는 일을 하고 있다. 놀랍게도 프라하스타는 인간이 아니라 락샤사라는 악마다. 전송되는 화물은 죽은 사람이고, 재활용된 사람들은 지구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다. 우주와 힌두교 신화를 적절히 혼합해 독특함이 빛나는 작품이며, 잔잔히 흘러가면서 삶의 의미와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2. 블러드 머신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이미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번 영화제는 온종일 우주로 가득 채운 듯하다. 레드존에서 만난 [블러드 머신] 역시 SF 영화인데, [카고]와는 전혀 결이 다르다. [카고]가 스타트렉을 연상시킨다면, 이 작품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고나 할까? 게다가 레드존에 오른 영화답게 장르적 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두 현상금 사냥꾼이 여성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 로봇을 쫓다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데, 80년대 복고풍 느낌을 물씬 풍기는 색감의 영상미에 신디사이저 음악을 결합해 마치 50분짜리 환상적인 뮤직비디오 한 편을 본 기분이 든다.

에디터 현정 “열정에 방역 의식을 더하고”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전철을 타고 부천으로 향하는 길은 작년처럼 들뜨기보다 싱숭생숭한 기분이 앞섰다. 코로나가 바꾼 일상 풍경이 아직도 낯선 내게 올해 BIFAN은 어떤 모습으로 관객을 맞을지 궁금했다. 마스크는 기본이고 상영관에 들어서는 입장 과정 자체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역시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생각보다 더 철저하고 꼼꼼했다. 하지만 혼란은 없었다.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영화제 측과 관객들이 차분하게 규정대로 움직였다. 분명 당연한 풍경인데,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영화제는 예전과 같은 활기는 느끼기 힘들겠구나 하는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1. 랩시스 – 부천 초이스: 장편

이미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혼란스러운 마음이 가득한 상태에서 ‘부천 초이스: 장편’ 섹션 상영작인 [랩시스]를 관람했다. 1순위로 꼽았던, 월드 판타스틱 레드 섹션 작품은 아니지만, 블랙 코미디의 향기가 나는 시놉시스가 흥미로웠다. 병든 동생을 돌보는 중년 남성이 신기술 회사의 케이블 기사로 취직하고 자신의 작업 뒤에 숨은 문제를 발견한다는 이야기. [랩시스]는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문제가 커지는 디지털 소외로 문을 열고 무한경쟁시대의 냉정한 자본주의와 노동력 착취 등의 문제로 나아간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함에도 눈에 띄는 영화적 볼거리는 약하지만, 제한된 예산으로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연출력은 재기 발랄하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어두운 유머 감각으로 밀어붙이는 뚝심도 좋다. 사실 영화를 막 보고 나왔을 때는 복잡한 마음 때문인지 작품에 대한 감상을 오래 갖지 못했지만, 장면들을 떠올리며 곱씹을수록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신선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그날 더 열린 마음으로 즐기지 못한 게 아쉽다.

2. 귀신 – 코리안 판타스틱: 경쟁

이미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두 번째 작품은 ‘코리안 판타스틱: 경쟁’ 부문 상영작인 정하용 감독의 [귀신].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평소 귀신 관련 작품을 좋아해서! [귀신]은 좀비물에 자주 나오는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들’처럼 귀신보다 무서운 인간군상을 그린 작품이다. 귀신이 나타나는 장소로 유명한 폐교회에 실체를 취재하려는 방송팀과 뒷산에 돈을 묻으러 온 사기꾼, 납치극을 사주받은 범죄자들이 각기 다른 목적으로 모여들면서 꼬여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아쉽게도 유치한 각본 엉성한 연출만 기억에 남는데, 특히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방송팀이 초반부터 어설픈 행동을 남발한 게 가장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