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이미지: 마블 코믹스

어떤 만화가 오랜 기간 인기를 얻다 보면 여러 가지 설정이 덧붙여지면서 자연히 캐릭터의 기원에 변화가 생긴다.

토니 스타크는 사실 하워드 스타크의 친아들이 아니라 입양된 자식이며, 캡틴 마블은 어머니가 크리 제국에서 온 전사였기 때문에 남다른 DNA를 갖게 됐다는 설정으로 변경된 것이 좋은 예다. 울버린의 본명이 로건이 아니라 제임스 하울렛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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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에 첫 등장해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진 스파이더맨도 기원의 변화는 피할 수 없었다. 스파이더맨은 여러 타이틀이 동시에 출간될 정도로 인기를 끈 캐릭터라 독자들의 관심을 붙들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변화를 줘왔다.

피터 파커를 물었던 거미가 도망치면서 또 다른 학생을 물어 슈퍼히어로 실크를 만들어냈다거나, 고등학교 동창인 제시카 존스가 피터를 짝사랑했다는 등의 설정 변화를 보였다. 그밖에도 원래 만화의 내레이션에 불과했던 “큰 힘에 큰 책임”이 벤 삼촌의 대사로 바뀐 것처럼 소소한 설정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피터의 가족에 대한 비밀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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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피터 파커의 부모는 출장 도중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리처드 파커와 메리 파커 부부는 CIA의 비밀요원이었다. 피터가 워낙 어리기도 했지만, 스파이 활동을 철저히 감춘 탓에 알 수가 없었다. 이들 부부가 외부 활동에 전념하는 동안 벤 삼촌과 메이 숙모가 아기 피터를 돌봤기에 친부모와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피터에겐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있는데, 리처드 파커는 심각한 상황에 놓였을 때 자꾸만 농담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또한 형 벤과 마찬가지로 “큰 힘엔 큰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리처드와 메리는 스파이 임무 중에 레드 스컬에게 정체를 들켜 암살당하고 말았다. 피터의 부모를 죽인 레드 스컬은 스티브 로저스와 계속해서 싸우는 인물이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또 다른 레드 스컬이다. 사망할 당시 두 사람이 탄 비행기가 추락했으므로 피터가 알고 있는 부모의 최후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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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부모가 스파이였다는 사실은 스파이더맨의 오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는데, 나중에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바로 테레사 파커다.

누군가의 저격으로부터 피터를 구해주러 나타난 CIA 요원 테레사 파커는 자신이 여동생이라고 밝혔다. 물론 피터는 갑작스레 등장한 여동생의 존재를 믿지 않으려 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연재 시작 60여 년 만에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실제 동생이 직접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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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처드와 메리 부부가 사망하면서 벤과 메이 부부는 조카를 입양 보내야 했다. 테레사는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성장했고, 닉 퓨리에게 채용돼 CIA에 입사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테레사가 피터를 찾았고, 함께 킹핀 등의 악당들과 맞서면서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도 알아챘다. 이후 테레사는 CIA를 퇴사하고 쉴드에 입사해 쉴드의 요원이 되는데, 피터와 테레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액션 활극을 펼치는 삶을 선택한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 덕분일까? 그러나 테레사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 놈을 죽이고 싶어 하는 기질이 있어 피터와 다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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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의 영화에 이런 내용들을 포함한다면 어떨까? 톰 홀랜드의 고등학생 피터 파커에게 숨겨진 여동생 이야기는 좀 무리일 수는 있어도, 부모님이 CIA의 요원이었다는 설정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아직 벤 삼촌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다루지 않아 적절히 엮어 봐도 좋을 것 같다. 가족의 비밀을 알아가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피터 파커. 재미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