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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로운 대저택을 무대로 갖가지 사건이 일어나는 아가사 크리스티 스타일의 추리물을 좋아한다면, [십시일반]은 시작부터 구미가 당기는 드라마다. 수백억 대 자산가인 유명 화가의 생일을 맞아 저마다의 속셈을 감춘 사람들이 저택에 모여들고 두뇌싸움을 벌인다는 시놉시스를 보면 익숙하게 짐작되는 이야기가 어떻게 추리 욕구를 자극하며 펼쳐질지 호기심을 자아낸다. 더군다나 국내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는 추리물이라 반갑기도 하다.

[십시일반]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나이브스 아웃]과 비슷한 형태로 수수께끼의 포문을 연다. 호수를 끼고 산자락에 자리 잡은 고풍스러운 저택에 이제껏 한 번도 같은 자리에서 만난 적 없는 화가의 가족과 지인들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들어 어색한 위화감이 팽배한 가운데, 유언장을 공개하기로 한 생일날 아침에 화가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드라마는 화가의 죽음이 남긴 의문을 따라가며 탐욕과 위선으로 가득한 인간 군상의 부조리극을 그린다.

대개의 추리물이 탐정이나 형사를 화자로 내세우고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것과 달리, [십시일반]은 의심과 불신이 쌓인 사람들이 대립각을 세우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따라가며 무엇이 화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유산을 노리는 사람들의 천박한 탐욕과 외부에서는 칭송받는 화가의 비인간적이고 추악한 실체가 하나둘씩 드러나고, 또 오랜 관계 속에 숨어 있던 분노와 원망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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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은 고전 추리물에서 흔한 대저택 살인 미스터리로 출발하지만, 시청자들이 흥미를 끌만한 블랙 코미디와 트렌디한 요소를 도입해 경쾌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극 초반에는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배합해 모큐멘터리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이후에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모습으로 흥미를 돋운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순간에 튀어나오는 돌발 상황은 우스꽝스러운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은 실소를 자아내면서도 때로는 충격적인 반전을 가져온다.

구태의연한 로맨스 없이 추리에 집중하는 시도는 확실히 인상적이다. 모녀로 호흡을 맞춘 오나라와 김혜준을 제외하면 안방극장에서 생소한 배우들이 대거 포진했지만, 반전을 거듭하며 진상을 풀어가는 전개와 신선한 연출 방식으로 시선을 붙든다. 다만, 몇몇 장점에도 아쉬움이 더 눈에 밟힌다.

가장 큰 아쉬움은 분량이다. [십시일반]은 16부작이 흔한 미니시리즈에 8부작이라는 파격 편성을 내세웠지만, 집중력을 감안하면 4부작이 더 적합해 보인다. 화가의 죽음에서 비롯된 미스터리를 8시간 동안 채우자니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면 좋을 이야기에 감정 개입이 많아져 긴장감이 무뎌지고 전개도 주춤거린다. 마지막 회의 경우, 한 시간짜리 에필로그를 보는 듯해 맥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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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성이 없는 평면적인 캐릭터도 아쉽다. 이야기 자체는 흥미롭지만, 화가의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은 뻔한 형태로 그려진다. 거액의 유산을 노리는 사람들의 탐욕은 하나같이 천박하고(블랙코미디를 의도했으나 유치해 보일 때가 많다), 화가에게 모종의 감정을 품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수상하다(최종 범인이 처음부터 유력 용의자로 의심스럽다). 극의 출발은 솔깃했을지언정 인물들이 대체로 예상한 반경에 머물러 추리물만의 쫀쫀한 재미가 덜하다.

게다가 의문을 파헤치면서도 가족들의 의심을 사는 중심인물인 유빛나(유인호와 과거 내연녀 김지혜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는 답답할 정도로 의뭉스러운 모습만 보인다. 첫인상만 해도 유산을 노리는듯한 가족들과 선을 긋고 초연한 태도를 보여 호감을 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호함으로 일관한다. 특히 후반부에는 범인으로 몰린 위기 상황에서도 망연자실해 할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차라리 시끄러운 유산 다툼에 얽매이지 않고 진실을 궁금해하는 독고선이 더 확고한 제3자의 시선에서 극을 이끌어갔다면 흥미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른들의 사정과는 다른 유해준도 눈에 띈다.

모두를 만족하는 드라마를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미드나 영드로 장르물을 많이 접한 시청자에게는 아쉬움을 샀을 테지만, 기존의 드라마와 다른 소재와 이야기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2제의, 제3의 [십시일반]과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와 장르물의 저변이 더욱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