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극장 개봉작 2편과 지난주 공개된 넷플릭스/왓챠 신작 3편 후기


테넷(Tenet) – 이해하려 하지 말고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세요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에디터 원희: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테넷]이 드디어 극장을 찾아왔다. 엔트로피를 역행시켜 시간을 거스른다는 미래 기술 ‘인버전’을 사용해 세상을 파괴하려는 사토르를 막기 위해 작전이 진행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영화 속에서 인버전의 개념을 설명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등장하는데, 원리를 단박에 이해하기에는 난해하고 복잡하다. 이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전부 이해하려고 매달리지 말고,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고 받아들여야 내용을 따라잡기 수월하다. 시간을 역행하는 모습을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며, 특히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사운드트랙이 돋보인다. 캣을 그저 모성애에 얽매여 남편을 떠나지 못하는 역할로 그려내 특유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 단점이지만, 초반에 공개된 단서들이 뒤로 갈수록 퍼즐처럼 착착 들어맞으면서 장르적 쾌감을 안겨준다.

루시퍼(Lucifer) 시즌 5 파트 1 – 더 악마적이야! 더 섹시해! 이야기 밀당도 완전 잘해!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혜란: ★★★★ 지옥의 왕 루시퍼가 넷플릭스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 혼란에 빠진 지옥을 정리하려 클로이와 LA를 떠났던 루시퍼를 지상으로 불러낸 방법은? 바로 그를 너무나 증오하는 쌍둥이 미카엘이었다. 미카엘에게 자신의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돌아온 루시퍼는 여전히 건방지고 섹시하고 내 여자에겐 순정을 바친다. 클로이는 여전히 사랑과 일 모두 용감하다. 아메나디엘과 린다는 육아에 여념이 없고, 댄은 새 영적 체험에, 엘라는 새 사랑에 빠진다. 이 사이에서 뒷배경이 되기 딱 좋았을 매지킨은 이번 시즌 가장 큰 변화를 보인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그가 가져온 파장은 어마어마하다. 그 감정의 근원을 다룬 4화는 이번 시즌 베스트 에피소드다. 매지킨의 어머니 릴리트와 루시퍼의 관계 등을 다룬 스토리는 흥미롭고, 세련된 흑백 촬영이나 누아르 탐정물의 스테레오 타입을 깨는 캐스팅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이 스코어(High Score) – 비디오 게임을 사랑한다면, 당장 PUSH START BUTTON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홍선: ★★★ 영화만큼 게임을 좋아한다면, 썸네일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가 ‘마지막 스테이지의 보스’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하이 스코어]는 8,90년대 그 시절 우리를 불타오르게 한 비디오 게임의 역사와 비하인드를 담은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마리오, 소닉, 스트리트 파이터, 둠 등 비디오 게임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작품들을 6개의 챕터로 나눠 소개한다. 게임을 소재로 한 만큼 재기 발랄한 연출이 돋보인다. 매화마다 레트로 게임의 픽셀로 이뤄진 애니메이션이 눈길을 끌고, 자신들이 만든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개발진들의 입담은 웃음을 자아낸다. [하이 스코어]는 게임의 위대한 탄생과 긍정적인 요소만을 다루지 않는다. 격투 게임의 열풍이 촉발한 게임의 폭력성 및 사회 문제도 비중 있게 다루며 시선의 균형을 맞춘다. 소재가 갖고 있는 특별함에 비해 심심한 톤의 내레이션은 아쉽지만, 그동안 몰랐던 고전 게임들의 숨겨진 비밀을 알 수 있어 흥미롭고, 게임을 즐겼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 마음이 설렌다.

미세스 아메리카(Mrs. America) – 결국 모두의 이야기다
이미지: 왓챠

에디터 영준: ★★★★ 오직 자신의 야망만을 위해 미국 정치사를 퇴보시킨 정치인이 있다? [미세스 아메리카]는 1970년대 성평등 헌법수정안(ERA) 비준을 좌절시킨 인물, 필리스 슐래플리의 이야기다. 출중한 능력과 지식을 갖추고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계에서 외면받은 슐래플리는 당시 보수와 진보 모두의 관심사였던 ERA로 정치 인생의 활로를 모색한다. 역설적이게도 슐래플리는 여성 해방 운동가들이 ‘주부로서의 특권을 빼앗는다’며 비준에 반대,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지만 결과는 역사에 나와있는 대로다. 그러나 [미세스 아메리카]는 실패한 여성 인권 운동의 역사만을 다룬 작품은 아니다. 작품 속 소수자 집단 내에서의 소수자 차별, ‘내로남불’식 의사결정, 본인의 이익을 위해 같은 진영이라도 가차 없이 밀어내는 모습은 시청자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남 일 같지 않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맞는 말이다. [미세스 아메리카]가 보여준 50년 전의 모습은 결국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후쿠오카(Fukuoka) –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묘한 여행
이미지: (주)인디스토리, (주)률필름

에디터 현정: ★★★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하지만, 혼란스럽기보다 신비롭고 편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경주], [군산]에 이은 장률 감독의 도시 3부작의 마지막 영화 [후쿠오카]는 세 남녀의 알쏭달쏭한 후쿠오카 여정을 그린다. 28년 전 같은 여자를 사랑했다 절교한 두 중년 남성과 이들의 오랜 오해와 앙금을 마주하게 이끈 묘령의 젊은 여성이 뚜렷한 목적 없이 후쿠오카의 술집과 카페, 거리를 배회하며, 기묘한 공간감으로 둘러싸인 판타지를 선보인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렀던 두 남자는 으르렁거리는 사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마주하고, 두 남자와 후쿠오카의 거리를 자유롭게 오가는 여자는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미묘한 안도감을 준다. 모호하게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까닭은 경계를 허무는 즐거움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다만 여성 캐릭터의 쓰임새가 낡은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