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현실을 이기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놀랍고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며 감동적이기도 한 여러 실제 이야기들이 꾸준히 드라마로 제작된다. 지난해 가장 인상 깊은 성과를 거둔 [체르노빌]은 비극적인 실화에 기반하며, 올해 상반기에 뜨거운 반응을 얻은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 무법지대]는 발 빠르게 드라마 제작에 착수했다. 열심히 구글링하면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어떻게 재현됐는지 자연스레 궁금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대한 호기심이 작품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 얼마나 사전 조사를 했는지, 작가적 상상력이 어디에서 개입했는지, 어떤 태도로 혹은 어떤 시선으로 실화를 다뤘는지 등 여러 이유로 실화 기반 작품에 관심을 가진다. 한차례 실화를 다룬 작품을 소개한 적 있기에 최근 선보인 작품 위주로 극적인 실화를 옮긴 드라마를 찾아봤다.

맨헌트: 죽음의 게임(Manhunt: Deadly Games) 

이미지: 캐치온

[맨헌트: 죽음의 게임]은 대형 인명 피해를 막아낸 시민 영웅에서 한순간에 폭탄 테러범으로 내몰린 리처드 쥬얼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 17년간 악명을 떨쳤던 폭탄 테러리스트 유나바머(시어도어 카진스키)의 검거 과정을 그린 [맨헌트: 유나바머(2017)]의 앤솔로지 형식의 두 번째 작품이다. 샘 워싱턴과 폴 베타니에 이어 [마인드헌터]에서 서늘한 존재감을 보여준 카메론 브리튼(에드먼드 캠퍼 役)이 주연을 맡아 평범한 남자의 삶이 무책임한 언론과 공권력에 의해 테러범으로 지목된 후 어떻게 무너졌는지 보여준다. 총 10부작으로 구성됐으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리처드 쥬얼이 테러 위협을 발견해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고도 자작극 의혹을 제기한 애틀랜타 저널의 보도로 폭탄 테러 용의자로 몰리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난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도 같은 주제를 다룬 영화를 선보였는데, 함께 비교해서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캐치온)

스테이트리스(Stateless) 

이미지: 넷플릭스

지난 7월에 공개된 6부작 드라마 [스테이트리스]는 실화에 영감을 얻어 호주의 이민자 수용소에 갇힌 난민들과 이를 감시하고 시설을 운영하는 관리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족과 종교 집단으로부터 도망친 소피,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아미르, 생계를 부양하고자 경비원이 된 캠, 수용소 책임자로 부임한 클레어, 네 사람을 중심으로 호주 난민 제도의 열악하고 부조리한 실상을 드러낸다. 실화의 주인공은 [핸드메이즈 테일]의 이본느 스트라호브스키가 연기한 소피. 독일 태생의 호주 시민 코넬리아 라우가 극중 소피처럼 사이비 종교 집단에 빠진 뒤 정신질환이 악화되면서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약 10개월간 난민 수용소에 구금됐던 사건이 드라마의 토대가 됐다. (넷플릭스)

더티 존(Dirty John) 

이미지: 넷플릭스

‘존 미핸’과 ‘베티 브로더릭’이란 부제로 두 시즌(각 8부작)이 공개된 [더티 존]은 나쁜 남자로 인해 벌어진 충격 실화를 재구성한 드라마다. 2018년에 공개된 시즌 1은 2016년에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더티 존’이란 별명으로 불린 악랄한 사기꾼 존 미핸이 데이팅앱에서 만난 성공한 사업가 데브라의 환심을 사려다 파국을 맞이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중후한 매력을 걷어내고 교활하고 비열한 인물로 분한 에릭 바나의 연기가 소름 끼친다. 최근 공개된 시즌 2는 1989년에 전 남편과 그의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베티 브로데릭의 사연을 다룬다. 오랜 기간 남편에게 세뇌당하고 정신적인 학대를 겪은 여성이 살인범이 되기까지의 끔찍한 결혼생활과 현재 시점의 재판 과정을 교차하며 전개한다. 아만다 피트와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지켜보기 괴로운 두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넷플릭스)

이스케이프 앳 댄모라(Escape at Dannemora) 

이미지: 왓챠

[이스케이프 앳 댄모라]는 22일 만에 끝난 교도소 탈옥 실화를 극화한 작품이다. 살인죄로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두 죄수가 벽과 하수관을 뚫고, 1845년 세워진 이후 단 한차례도 탈옥이 발생하지 않았을 만큼, 삼엄한 경비로 유명한 뉴욕의 댄모라 클린턴교도소를 탈옥한 사건이다. 드라마는 도주보다는 탈옥 과정에 집중해 [쇼생크 탈출]이 연상되는 극적인 탈주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꼼꼼하게 묘사한다. 각자의 이유로 탈옥을 결심한 매트와 스웨트가 최고의 보안 등급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교도관의 재량에 따라 은밀하게 자유가 허용되는 분위기와 사적인 관계를 맺은 재단사 조이스를 이용해 수개월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행하는 모습이 7부작 동안 펼쳐진다. 배우 겸 감독 벤 스틸러가 연출을 맡고, 베니시오 델 토로와 폴 다노, 패트리샤 아퀘트가 탈주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무력한 권태에 빠진 재단사로 분한 패트리샤 아퀘트의 연기가 인상 깊다. (왓챠)

세기의 도둑들(The Great Heist)

이미지: 넷플릭스

[세기의 도둑들]은 1994년 콜롬비아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실화를 6부작으로 옮긴 작품이다. 드라마 [종이의 집], 영화 [오션스] 시리즈처럼 한 무리의 범죄자들이 무모하고도 대담한 범죄를 벌인 이야기다. 화려하고 멋지게 포장된 허구의 영화나 드라마와 다른 게 있다면, ‘세기의 강도 사건’이라 불릴 만큼 떠들썩했던 실화는 실패로 귀결한다는 것이다. 휴일을 맞은 중앙은행에 에어컨 수리 기사를 가장해 침입하고, 주금고에 보관 중이던 240억 7,200만 페소(현재 가치 약 4,100만 달러)를 총 한 번 쏘지 않고 훔치는 데 성공했으나 인생 역전을 꿈꿨던 도둑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드라마는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경쾌한 리듬감으로 담아내되 멋지게 부풀리는 대신 예기치 않은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중점을 둔다. (넷플릭스)

더 서치: 사라진 아이(Crime Diaries: The Search) 

이미지: 넷플릭스

[더 서치: 사라진 아이]는 아직까지도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아동 실종 미스터리를 다룬다. 2010년, 멕시코시티 근교의 부유한 주택가에서 방에서 잠을 자던 4살 소녀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이다. 6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는 촌각을 다투는 실종 수사 과정보다 사건을 둘러싼 비이성적인 풍경에 집중하며 멕시코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드러낸다. 초동수사부터 헛발질을 하고 출세의 기회로 여기는 한심하고 나쁜 어른들이 릴레이를 하듯 등장하는데, 안타깝고 충격적인 결말로 끝나기까지 사라진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어른들은 보이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더 서치: 사라진 아이] 이전에도 라틴 아메리카의 유명한 범죄 실화를 미니시리즈로 선보였다. 1994년 멕시코 대선 후보 암살 사건을 다룬 [범죄의 기록: 비운의 후보], 2010년 콜롬비아에서 발생한 원주민 대학생 살인사건을 다룬 [범죄의 기록: 마지막 핼러윈]이 있다. (넷플릭스)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A Very English Scandal) 

이미지: 캐치온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은 믿기 힘든 치정 실화를 블랙 코미디로 옮긴 3부작 드라마다. 유력 정치인이 전 연인을 청부 살인하려다 들통난 사건이다. 휴 그랜트와 벤 위쇼가 동성애가 금지됐던 1960-70년대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분해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사건은 1967년부터 1976년까지 자유당 대표를 역임할 만큼 저명한 국회의원 제레미 소프의 이중생활에서 시작된다. 그의 비밀은 동성애. 1961년 우연히 만나 수년 동안 은밀한 관계를 지속했던 노먼 스콧이 성 정체성을 빌미로 협박하자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하지만 계획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결국 제레미 소프는 1979년 법정에 서고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잃는다. [닥터 후]의 작가 러셀 T. 데이비스가 동명 논픽션을 각색했고, [플로렌스]의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가 연출을 맡았다. 1960년대 영국 사교계 명사 마거릿 캠벨의 이혼 스캔들을 다룬 시즌 2가 나올 예정이다. (왓챠)

그리고 베를린에서(Unorthodox) 

이미지: 넷플릭스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그리고 베를린에서]의 주인공 에스티는 원작자 데버라 펠드만의 분신 같은 존재다. 세부적으로 많은 부분 각색됐지만, 작가 역시 여성을 억압하는 하시디즘 공동체에서 태어나 에스티처럼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 떠났다. 펠드먼의 삶을 돌아보자면,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조부모 밑에서 성장, 17세에 사랑 없는 중매결혼을 했고 임신 문제로 남편과 그 가족들과 어려움을 겪었다. 임신 직후 공동체를 탈출한 에스티와 달리, 2006년 아들을 출산한 뒤 뉴욕 용커스로 이사하고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2009년 대학 교직원과 직원들의 도움으로 남편과 공동체를 떠났고, 2012년 회고록을 발간했으며, 2014년에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작가 생활을 이어갔다. (넷플릭스)

셀프 메이드: 마담 C. J. 워커(Self Made: Inspired by the Life of Madam C.J. Walker) 

이미지: 넷플릭스

[셀프 메이드: 마담 C. J. 워커]는 자수성가한 흑인 미용 사업가 마담 C. J. 워커(1867-1919)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다. 증손녀 알릴리아 번들스가 쓴 『On Her Own Ground 』에 영감을 받아, 각종 차별과 역경을 딛고 성공하기까지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꿈을 키워간 감동적인 이야기가 4부작에 걸쳐 펼쳐진다. 옥타비아 스펜서가 일상적으로 인종 차별과 성차별이 만연했던 사회에서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흑인 여성들의 희망이 된 인물을 연기하며, 제작에도 참여했다. 갖은 사회적 제약에도 꿈을 지키고 가난하고 힘없는 흑인 여성들의 자립과 권리를 위해 앞장선 모습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그 자체다. (넷플릭스)

미세스 아메리카(Mrs. America) 

이미지: 왓챠

[미세스 아메리카]는 앞서 소개한 마담 C. J. 워커와 전혀 다른 삶을 산 여성의 이야기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여성해방운동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보수 진영 극우 활동가 필리스 슐래플리가 그 주인공. 1970년대 미국 사회의 화두였던 성평등 헌법수정안(ERA)을 비준하려는 진보 진영 여성들과 치열하게 대립해 법안 통과를 저지한 논란의 인물이다. 9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는 케이트 블란쳇이 완벽하게 재현한 필리스 슐래플리가 존재감 없는 비주류에서 정치판을 뒤흔든 인물로 거듭난 배경부터 글로리아 스타이넘, 베티 프리단, 셜리 치점, 벨라 앱저그 등이 주축이 된 진보 진영 내부의 갈등과 모순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필리스 슐래플리란 위선적인 인물에 의해 좌절된 여성운동이 오늘날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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