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10대의 삶을 포기하고 연기에 전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연기력이 출중하다 해도 아역 배우 이미지에 갇힐 수도 있고, 유명세를 치르느라 사생활이 없어질 수도 있다.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노력했는데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지 못해 너무 이른 좌절을 느낄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런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자신의 이름으로 대표작을 만들었거나, 혹은 앞으로 또 다른 대표작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아역 출신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을 소개한다.

굿 닥터(The Good Doctor) – 프레디 하이모어(Freddie Highmore, 1992년생, 영국)
이미지: 캐치온

프레디 하이모어가 없는 [굿 닥터]를 상상할 수 있을까. 공감 능력이 부족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기억력과 공간지각력이 뛰어나 다른 의사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외과의사 숀 머피. [굿 닥터]는 서번트 신드롬과 자폐증이 있는 숀 머피가 산호세 보나벤처 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며 선입견과 편견을 극복하고 의사로서, 한 개인으로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프레디 하이모어는 호소력 짙은 연기로 예민하고 감정적인 인물을 완벽하게 그려내 시청률을 견인하며,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어거스트 러쉬]로 얻은 아역 배우 이미지를 걷어내고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다. 뿐만 아니라 성인 배우로 발돋움한 전작 [베이츠 모텔]에서 보여준 사이코패스 노먼 베이츠도 넘어섰다. 캐치온에서 산호세 보나벤처 병원에서 한고비를 넘기고, 러브라인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숀의 세 번째 이야기를 방영한다.

리버데일(Riverdale) – 콜 스프라우스(Cole Sprouse, 1992년생, 미국)
이미지: 넷플릭스

저그헤드는 겉보기엔 평화로운 마을 리버데일에서 벌어진 미스터리의 세계로 이끄는 인물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하며, 매의 눈으로 위선적인 마을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사건을 주시한다. 콜 스프라우스는 자유롭고 반항적이며 퇴폐적인 분위기를 더해 괴짜 캐릭터인 저그헤드를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그는 하이틴 드라마와 미스터리가 만난 [리버데일]의 최대 수혜자다. 생후 8개월 만에 쌍둥이 형제 딜런 스프라우스와 연기를 시작하고, [프렌즈], [잭과 코디, 우리 학교는 호화유람선]에 출연해 인지도를 얻었지만, [리버데일]을 만나 아역 배우 이미지를 벗고 청춘스타로 올라섰다. 콜 스프라우스뿐 아니라 여러 스타들을 배출한 [리버데일]은 내년 초에 다섯 번째 시즌으로 찾아올 예정이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설득력 없는 막장 전개로 원성이 자자한데, 초창기의 신선한 즐거움이 있는 이야기로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킬링 이브(Killing Eve) – 조디 코머(Jodie Comer, 1993년생, 영국)
이미지: 왓챠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보안 요원 이브는 좀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 암살자 빌라넬을 추적하면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위험한 세계에 빠져든다. 잔인무도한 킬러 빌라넬은 살인을 재밌는 놀이처럼 여기며, 자신을 뒤쫓는 이브에게 기묘한 애정을 느끼고 그의 평범한 삶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조디 코머는 천진함과 냉혹함이 공존하는 변덕스러운 인물에 생동감이 넘치는 생명력을 입히고, 일상에 지친 이브를 연기하는 산드라 오와 시선을 뗄 수 없는 애증 관계를 형성한다. [킬링 이브]가 첩보물의 규칙을 전복하고 신선한 서사로 전 세계적인 반향을 얻으면서 조디 코머는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얼핏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 같기도 하지만, 의외로 오랜 기간 연기 활동을 꾸준히 한 배우다. 조디 코머는 2008년 [The Royal Today]로 데뷔하고 꾸준히 TV 시리즈에 출연해왔는데, [부부의 세계]의 원작 드라마로 알려진 [닥터 포스터]를 비롯해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화이트 프린세스], [써틴] 등에서 그를 볼 수 있다.

유포리아(Euphoria) – 젠데이아(Zendaya, 1996년생, 미국)
이미지: HBO

지난 21일, 에미상 시상식에서 가장 이목을 끈 사람은 [유포리아]의 젠데이아일 것이다. 올리비아 콜맨, 산드라 오, 로라 리니 등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젠데이아가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젠데이아는 역대 수상자 중 가장 어린 나이(만 24세)로, 비올라 데이비스(범죄의 재구성) 이후 두 번째로 수상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배우라는 기록을 남겼다. 아직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서비스되지 않는 까닭에 젠데이아하면 디즈니 아역 배우 출신이자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위대한 쇼맨]이 더 먼저 생각날지도 모르지만, 배우로서 입지를 굳히게 한 작품은 이번에 에미상을 안겨준 [유포리아]다. HBO에서 제작한 [유포리아]는 마약, 범죄와 같은 각종 일탈과 소셜미디어에 노출된 10대들의 이야기를 대담한 스토리텔링과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그려낸 드라마다. 방송 이후 드라마 속 메이크업, 패션 등이 화제에 오를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젠데이아는 약물중독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17세 루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를 펼쳤는데, 국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기를!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 메이지 윌리암스(Maisie Williams, 1997년생, 영국)
이미지: 스크린

메이지 윌리암스는 [왕좌의 게임]으로 데뷔해 드라마와 함께 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진하고 활달하며 호기심 많던 소녀 아리아 스타크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고단하고 폭력적인 환경에 놓이면서 생존과 복수를 위해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로 살벌하게 변해간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장난기 많던 아이의 모습이 가득했지만, 점차 차갑고 무감한 표정으로 바뀐다. 데뷔작부터 대작 드라마를 만난 메이지 윌리암스는 온갖 고생을 하며 변해가는 인물을 빼어난 연기로 소화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지난해 [왕좌의 게임]이 시즌 8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아리아 스타크는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걸로 긴 여정을 마무리했는데, 메이지 윌리암스는 이후 또 어떤 자신만의 대표작을 만들지 기대된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Sex Education) – 에이사 버터필드(Asa Butterfield, 1997년생, 영국)
이미지: 넷플릭스

영화 [휴고],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엔더스 게임],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등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에이사 버터필드는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에서 주인공 오티스로 분해 풋풋한 너드미를 뽐낸다. 비밀리에 성 상담소를 운영하며 성 상담사인 엄마에게 어깨너머로 습득한 성 지식을 활용해 같은 학교 친구들의 성 고민을 해결하는 데, 정작 본인의 문제를 마주하는 것엔 취약하다. 성에 솔직한 엄마는 은근히 부담스럽고,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넘기는 성적 욕구는 단단히 봉인된 듯 풀리지 않으며, 진작부터 좋아했던 메이브에겐 진심을 털어놓지 못한다. 에이사 버터필드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소심한 10대를 현실 세계에서 마주할 것 같은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낸다.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 인간적인 모습이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에 빠져들게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메이브와는 어떻게 될까?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Chilling Adventures of Sabrina) – 키어넌 십카(Kiernan Shipka, 1999년생, 미국)
이미지: 넷플릭스

사브리나는 열여섯 생일을 앞두고 인간과 마녀, 두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놓인다. 아니, 강요에 가깝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젤다 고모는 친구들이 있는 인간 세계를 떠나 마법 학교에 다니길 원한다. 하지만 당차고 똑똑하며 진취적인 10대 사브리나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키어넌 십카는 어두운 상상력에서 비롯된 이야기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단단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시청자를 사브리나의 모험에 끌어들인다. 인간과 마녀의 세계가 공존하는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평범한 10대의 사브리나와 사악한 마녀의 세계에 발을 들인 사브리나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키어넌 십카의 연기력이 눈부시다. 생후 5개월에 의학 드라마 [ER]로 연예계에 입문한 그는 아역으로 출연한 [매드맨]에서 일찌감치 연기력을 인정받았는데, 그동안 쌓은 내공이 [사브리나의 오싹한 만남]에서 제대로 터진 듯하다. 다만 아쉽게도 점점 더 복잡하고 오싹해지는 사브리나의 여정은 네 번째 시즌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엄브렐러 아카데미(The Umbrella Academy) – 에이단 갤러거(Aidan Gallagher, 2003년생, 미국)
이미지: 넷플릭스

요즘 가장 핫한 10대 배우는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에이단 갤러거일 것이다. 꾸준한 인기몰이 중인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한날한시에 태어나 억만장자 하그리브스 경에게 입양된 7명의 초능력자들이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 힘을 합치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실상은 비협조적인 남매들 사이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조장 파이브의 극한의 조별 과제). 에이단 갤러거가 연기한 파이브는 시공간 이동 능력을 뽐내다 종말이 닥친 미래에 갇혀 45년을 홀로 보내고 양아버지가 죽고 난 후에야 가족들이 있는 현재로 돌아온 인물. 그 사이 커미션 최고의 암살자로 일한 덕분에 탁월한 전투 실력을 갖췄지만, 돌아오는 과정에서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떠날 때 상태인 열세 살의 몸이 됐다. 2013년 [모던 패밀리]로 데뷔해 [Nicky, Ricky, Dicky & Dawn]에서 활약했던 에이단 갤러거는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통해 처음으로 성인 배우들과 나란히 연기하면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새겼다. 캐릭터의 매력도 크지만, 이를 찰떡같이 소화한 배우의 몫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넷플릭스의 공식 발표는 없지만 [엄브렐러 아카데미]가 다음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파이브=에이단의 활약은 계속되지 않을까.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 밀리 바비 브라운(Millie Bobby Brown, 2004년생, 영국)
이미지: 넷플릭스

2016년 여름, [기묘한 이야기]는 공개되자마자 열띤 반응을 얻었다. 작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 호킨스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음모와 사라진 친구를 찾으려는 우정 어린 모험은 풋풋하고 짜릿하고 신선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마이크, 더스틴, 루카스 세 소년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녀 일레븐. 밀리 바비 브라운은 삭발한 모습으로 등장해 소년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초능력으로 보호해 주는 일레븐에 신비로운 존재감을 입혀 미지의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했다. 시즌이 거듭되면서는 우정과 사랑, 가족 관계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순수하고 활기찬 10대의 일상적인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기묘한 이야기]가 지금의 엄청난 팬덤을 갖게 된 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일레븐에게 따뜻한 친밀감을 불어넣은 밀리 바비 브라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슴 아픈 이별을 한 일레븐은 네 번째 시즌에선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