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바다, 부산으로 오세요”라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매년 인사가 올해만큼은 뭔가 어색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때 개최 여부가 불확실했고, 결국 상영관 및 객석을 축소하고, 모든 부대 행사를 취소하는 등 예년과 달리 조용히 관객들을 맞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에서도 전체 티켓의 90% 가까이 판매되었고, 메인 상영관인 영화의전당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손님맞이에 바쁘다. 여러 어려움을 딛고 관객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이번 영화제의 달라진 점과 미리 본 화제작들을 소개한다.  

철저한 방역을 기본으로 상영 중심의 영화제 추구

올해 영화제는 관객들의 안전을 위해 방역을 최우선으로 두고, 작품 상영 중심으로만 진행된다. 영화의전당 내 6개 스크린(중극장, 야외극장, 시네마테크, 소극장, 하늘연극장, 인디플러스)에서만 상영되며, 개/폐막식 및 야외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좌석은 상영관 별로 25%만 판매하고, 티켓 발권 역시 100% 온라인에서만 진행되어 올해는 현장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 없다.

영화의전당 입장도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다. 지정된 게이트에서 QR코드 인증과 발열 체크를 확인해야만 입장할 수 있으며, 상영관이 밀집된 시네마운틴은 당일 모바일 티켓을 소지해야 출입이 가능하다. 영화의전당 입장부터 상영관까지 두세 번의 검역을 거치기 때문에 여유 시간을 갖고 도착하는 게 좋다.  

위축된 영화제 분위기, GV의 열기로 대신한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68개국 192편이 상영된다. 전년도에 비해 약 100여 편 가량 줄었고, 단 1회만 상영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줄어든 좌석 수 때문에 작품과 관객이 만나는 기회는 좁아졌다.

다만 192편의 상영작 중 140편이 GV를 마련해 영화제의 위축된 분위기를 대신할 예정이다. 해외 게스트들은 상영 후 온라인으로, 한국영화는 감독과 배우들이 부산에 직접 방문해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또한 GV는 상영 후 오픈채팅을 통해 진행된다. 영화를 본 관객 모두가 실시간으로 질문할 수 있고, 게스트 역시 알찬 질문들을 선택해서 대답하기에 이전보다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미리 본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5

① ‘미나리’ 포스트 기생충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이미지: A24

출품작 수는 줄었지만, 작품의 면모는 사무국 내부에서도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쟁쟁하다. 코로나로 열리지 못한 칸국제영화제의 선정작 56편 중 23편이 부산에서 공개되는 것을 비롯해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 등 세계 주요 영화제의 화제작들을 선보인다.

초청작 중에서 이목이 쏠린 작품은 단연 [미나리]다. 희망을 찾아 미국 이민을 선택한 한 가족의 이야기로, 올해 선댄스영화제 미국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벌써부터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포스트 기생충’으로 거론될 정도.

영화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의 생활을 담담하게 그리면서 지금까지 비슷한 소재를 담은 작품과 궤를 달리한다. 인종 차별, 이주민에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와 같은 전형적인 갈등 요소를 배제하고,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탁 트인 푸른 들판, 바퀴 달린 집, 옛날 TV, 작품의 제목인 미나리 등 화려하지 않지만 볼수록 의미 있는 배경을 영상에 담아 몰입감을 높인다.

스티븐 연과 한예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부부로 나와 안정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외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은 중반부에 등장해 활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외할머니와 손자들이 겪는 문화 갈등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소소한 웃음을 이끌어내고, 이질적인 두 세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공감가게 그린다. [미나리]는 23일 금요일 오후 8시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공개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② 영화제의 시작과 끝을 장식할 ‘칠중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미지: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할 개/폐막작도 놓칠 수 없다. 먼저 개막작 [칠중주: 홍콩 이야기]는 홍콩을 주제로 서극, 조니 토, 허인화 등 전설적인 감독이 연출한 7편의 옴니버스 영화를 묶은 작품이다. 1950년대부터 근미래까지 다양한 시대 배경에 감독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담긴 이야기를 선보인다. 7편의 작품 중에서도 조니 토의 [보난자]와 임영동의 [길을 잃다]가 인상적이다. [보난자]는 닷컴 버블, 사스, 서브프라임 사태 등 홍콩의 격동적인 변화를 유머러스하게 담았다. 특히 사스 시절의 이야기는 현재의 코로나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웃음 속에 묘한 씁쓸함을 남긴다. [길을 잃다]는 과거의 홍콩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애틋하게 담아낸다. 사진을 통해 옛 추억과 현실을 잇는 연출이 미려하며, 따뜻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미지: 부산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축제의 마지막을 책임진다.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와 바다를 보고 싶은 지체 장애인 조제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이야기로, 다채로운 에피소드와 정감 가는 캐릭터들을 더해 영화팬들과 만난다. 국내에서는 2004년 개봉한 동명 영화에 관한 기억이 많은 남아있을 터인데, 애니메이션은 결이 꽤 많이 다르다. 조제와 츠네오가 함께 하는 과정이 실사보다 훨씬 밝고 로맨틱하게 진행되고, 영화에는 없던 굵직한 사건들이 많아 소재만 같을 뿐 다른 작품을 보는 기분이다. 영화의 묵직하고 현실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화사한 영상과 함께 보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그리는 타무라 코타로 감독의 작품도 분명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③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신감, 갈라프레젠테이션 ‘트루 마더스’ ‘스파이의 아내’

이미지: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제 개막 전 언론시사회에서 먼저 베일을 벗은 [트루 마더스]와 [스파이의 아내]는 영화팬들의 관심이 집중될 만한 작품이다. 칸과 부산이 사랑하는 가오세 나오미 감독의 신작 [트루 마더스]는 아사토를 입양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사코토에게 아이의 친모라고 주장하는 히카리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얼핏 돈과 친권을 요구하는 낳은 엄마에 맞서는 사코토의 절박한 모성애를 다루는 듯하지만, 영화는 그보다 더 깊은 사연을 펼친다. 사토코가 아사토를 입양하는 과정과 히카리가 아이를 보내고 어떤 삶을 견뎌냈는지를 교차하며, 두 엄마의 현실적인 고민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두 엄마의 양육 다툼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다루지 않아, 말 못 할 사정 속에 어찌할 수 없었던 선택들이 안타깝게 다가와 여러 번 눈물을 훔치게 된다. 

이미지: 부산국제영화제

[스파이의 아내]는 컬트 영화의 장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이자 올해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NHK에서 방영되었던 스페셜 드라마를 다시 스크린에 옮긴 영화로, 194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무역상을 운영하는 남편을 스파이로 의심하는 아내의 이야기다. 아오이 유우가 남편을 의심하는 아내 사토코를 맡아 타카하시 잇세이,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호흡을 맞춘다. 영화는 목표와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들의 갈등을 촘촘하게 엮어내고, 의상과 건축, 미술 등 배경 묘사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다. 후반부로 갈수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로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하기 힘들며,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주인공들의 고군분투가 시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묵직한 주제의식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