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스트 아워]로 생애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게리 올드만은 윈스턴 처칠을 위해 혼신의 열정을 쏟아부었다. 목소리와 억양, 걸음걸이는 기본, 노동에 가까운 장시간의 특수분장 과정을 거쳐 윈스턴 처칠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덕분에 너무도 유명하고 여러 대중매체에서 다루었던 인물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와 풍부한 감정을 끌어낼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싱크로율’은 높으면 높을수록 익히 잘 아는 이야기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오늘은 과장되게 말하면 ‘인간 복사기’로 의심스러울 만큼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력이 빛나는 작품을 소개한다.

코미 룰: FBI 폭로 스캔들(The Comey Rule)

이미지: 캐치온

최근 공개된 드라마 중 놀라운 싱크로율로 시선을 끄는 작품이 있다. 브렌단 글리슨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 나선 [코미 룰: FBI 폭로 스캔들]이다. 알렉 볼드윈이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서 풍자적인 면모를 강조했다면, 브렌단 글리슨은 트럼프의 즉흥적이고 대담하며 위협적인 면모를 부각해 보는 이를 압도한다. 판박이 같은 스타일링과 입모양이나 몸짓 같은 특유의 제스처와 표정은 당연히 기본이다. [코미 룰: FBI 폭로 스캔들]은 브렌단 글리슨의 변신만 화제가 아니다. 다루는 내용도 만만치 않다. 2016년 미국 대선 직전,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 전 FBI 국장 제임스 코미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과 도널드 트럼프의 최대 의혹인 러시아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FBI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했던 제임스 코미의 FBI 재임 시절을 다룬다. 제프 다니엘스는 브렌단 글리슨처럼 실제 인물과 외형적으로 가깝진 않지만, 탁월한 연기력으로 윤리적 책임과 권력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국내에서는 캐치온에서 독점 서비스한다.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Brexit: The Uncivil War)

이미지: Channel 4

[코미 룰: FBI 폭로 스캔들]이 2016년 미국 대선 전후의 이야기라면,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은 트럼프 당선 못지않게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관한 이야기다. 이메일 스캔들이 재점화되면서 힐러리가 패배한 미국 대선처럼 유럽연합(EU) 잔류가 우세하게 점쳐졌던 결과를 뒤엎고 탈퇴 찬성파가 승리를 거둔 투표다. 드라마는 당시 캠페인을 주도한 도미닝 커밍스(현재 영국 총리 수석 보좌관)의 시선에서 찬성파 진영이 어떤 전략으로 승리를 끌어냈는지 극적인 투표 과정을 다룬다.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한 만큼 당시 런던 시장이었던 보수당 정치인 보리스 존슨, 독립당 대표 나이절 패라지 등 실존 인물들과 흡사한 분위기를 연출한 배우들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도미닝 커밍스를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다. 사실적인 재현을 위해 과감하게 탈모 헤어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덧붙여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패트릭 슈트어트, 헬레나 본햄 카터, 대니 보일 등 문화계 동료들과 함께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왓챠, 웨이브, 시즌, 시리즈온에서 볼 수 있다.

디 액트(The Act)

이미지: hulu

[키싱 부스]에서 사랑스러운 엘을 연기한 조이 킹은 [디 액트]에서 기존과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몸은 다 자랐어도 순진무구한 동화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집시 역을 맡아 알이 큰 안경을 쓰고 삭발 머리로 등장해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그런데 그 모습이 순수하기보다 묘한 위화감이 감돈다. 바로 엄마 디디와의 비정상적인 모녀 관계 때문이다. 집시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과잉보호를 받아왔는데, 디디는 아픈 딸을 선전해 각종 후원을 챙겨왔다. 문제는 집시가 그동안 자신이 아프다고 믿었던 게 엄마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게다가 이성에 눈을 뜨게 되면서 집시는 엄마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해 계획을 세운다. 조이 킹은 실제 사건의 주인공에 가까운 비주얼로 탈바꿈해 엄마 역의 패트리샤 아퀘트와 함께 놀라운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한편, [디 액트]를 위해 머리를 짧게 잘라 [키싱 부스 2]를 촬영할 때는 가발을 착용했다고.

퀴즈(Quiz)

이미지: 왓챠

3부작 드라마 [퀴즈]는 영국의 평범한 중산층 부부와 방송국 관계자들의 진실 공방전을 다룬다. 2001년, ‘기침 스캔들’이라 불리며 영국을 들썩이게 했던 사건으로 인기 프로그램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에서 우승한 찰스 잉그럼이 부인 다이애나와 또 다른 출연자 테크윈과 공모했다는 의혹이다. 희대의 사기꾼인지,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낸 희생양인지 의견이 분분한 사건을 위해 영국의 베테랑 배우들이 모였는데, 퀴즈쇼 진행자 크리스 태런트로 분한 마이클 쉰의 존재감이 강렬하다. 우선 출연 배우 중 가장 적극적으로 외형적인 변신을 시도한 데다, 매혹적인 연기로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운 사건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선에 자리하고 시청자들의 선택을 지켜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왓챠 익스클루시브로 공개됐다.

데스(Des)

이미지: ITV

데이비드 테넌트가 영국의 악명 높은 살인마로 변신했다. 1983년, 하수구가 막힌다는 배관공의 신고로 덜미가 잡힌 후에 경찰 조사 과정에서 엽기적인 만행이 드러난 데니스 닐슨의 이야기를 다룬 [데스]에서 바로 그 문제의 인물을 연기한 것. 드라마는 범행 과정의 잔혹한 묘사를 배제하고 재판에 이르기까지의 취조 과정을 중심으로 한 인물의 끔찍한 초상화를 완성한다. 데이비드 테넌트 역시 ‘친절한 살인마’로 불렸던 소름 끼치는 인물을 침착하고 태연하게 재현한다. 실제 인물과 흡사하도록 헤어스타일과 안경의 도움을 받긴 했어도 전작들의 모습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서늘한 잔상을 드리운다.

미세스 아메리카(Mrs. America)

이미지: 왓챠

지난 8월 왓챠에 공개된 [미세스 아메리카]는 1970년대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던 성평등 헌법수정안(ERA) 비준 승인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주의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던 극우 활동가 필리스 슐래플리를 중심으로,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는 진보 진영과 이를 막으려는 보수 진영이 벌인 치열한 갈등을 풍부한 시점으로 조명한다. 현재와도 맥락이 닿는 실화도 흥미롭지만, 철저한 고증으로 1970년대의 미국을 세심하게 재현해 시각적 볼거리를 풍부하게 선사한다. 얄미울 정도로 논란의 인물을 감쪽같이 재현한 케이트 블란쳇은 물론, 대표적인 여성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역의 로즈 번, 1972년 흑인 여성 최초로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로 나섰던 셜리 치점 역의 우조 압두바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낸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더 크라운(The Crown)

이미지: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대표적인 시리즈 [더 크라운]은 우리가 잘 모르는 왕실 이야기를 영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과 함께 담아낸다. 독특하게도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위 기간에 따라 해당 나이대에 맞는 배우들로 교체해서 진행하는데, 같은 배역을 서로 다른 배우가 연기해도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고풍스럽고 우아한 프로덕션으로 품격을 더한다. 젊은 시절을 다룬 시즌 1~2는 클레어 포이와 맷 스미스, 바네사 커비가 스물다섯의 나이에 국왕의 자리에 올랐던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 공, 마거릿 공주를 맡아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 영국을 대표하는 왕실을 이끌어야 했던 막중한 책임감과 개인의 욕망 사이에 고뇌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배우들이 바뀐 시즌 3부터는 좀 더 본격적으로 영국의 근현대 정치사로 진입한다. 올리비아 콜먼, 토비어스 멘지스, 헬레나 본햄 카터가 앞서 세 배우의 자리를 이어받고, 조쉬 오코너가 젊은 찰스 왕세자를 맡아 6-70년대의 주요 굵직한 사건들 속에 진통을 겪었던 왕실의 숨은 이야기를 전한다. 배우 교체라는 과감한 전략이 우려에서 기대로 바뀔 만큼 실제 인물들에 걸맞은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반응을 얻었다. 80년대로 넘어가는 시즌 4는 영국 현대 정치사에 빼놓을 수 없는 마거릿 대처 총리와 왕실 스캔들의 중심에 있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본격 등장하는데, 질리언 앤더슨과 신예 엠마 코린이 이목이 집중된 두 인물로 나선다. 오는 11월 15일 시즌 4가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