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고기능 소시오패스’라고 말한 셜록은 TV 드라마 속 대표적인 괴짜 캐릭터다. 원작의 셜록처럼 명석한 두뇌와 추리력을 겸비했지만, 인성은 파탄에 가까운 상태로 재현됐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말을 서슴없이 건넬 정도로 무례하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구미가 당기는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뛸 듯이 기뻐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범죄자는 아니지만, 셜록처럼 사회성이 의심스러운 캐릭터는 또 누가 있을까? 셜록 못지않게 유명한 인물부터 최근 작품에 등장한 뉴페이스까지 인간관계가 한참 서툰 이들을 만나보자.

퀸스 갬빗(The Queen’s Gambit)

이미지: 넷플릭스

[퀸스 갬빗]은 고아 소녀 베스가 남성 중심의 체스 세계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여정을 그린다. 역대 넷플릭스 리미티드 시리즈 중 최고 시청 기록을 세울 만큼 인기몰이 중인데, 그 중심에는 외로운 천재 베스 하먼이 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보육원에 맡겨진 베스는 그곳의 관리인 샤이벌을 만나 체스의 세계에 눈을 뜨고 승리를 향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최고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천재적인 능력엔 대가가 필요한 것일까. 승리에 집착할수록 중독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상처로 남은 어린 시절의 기억도 그를 괴롭힌다. 그래서 더 마음의 문을 닫고 혼자만의 세계에 고립된 채 오직 승부욕으로 버티며 체스 세계를 정복해간다.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는 여정은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기보다 중독에 의존했던, 차갑고 무감각한 베스가 경계를 허물어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본즈(Bones)

이미지: FOX

[본즈]는 [CSI], [NCIS]처럼 에피소드마다 독립된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 드라마다. 차별점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뼈’다. 제퍼소니안 연구소 소속의 법의학 인류학자 템퍼런스 브레넌 박사가 FBI 요원 실리 부스를 도와 각종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뼈를 분석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뼈를 단서로 사건을 풀어가는 설정만큼이나 수사의 핵심 인물 브레넌 박사의 독특한 개성이 흥미롭다. 인류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원칙으로 매번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흔히 말하는 인간적인 매력은 떨어진다. 사교성이 부족해 사람들의 감정에 둔감하게 반응하고 의도치 않게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가 하면, 대중문화보다는 이성과 지식을, 로맨틱한 교류보다는 가벼운 관계를 선호해 당황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늘 무미건조하게 기계적인 반응만을 보이지 않는다.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성장한 과거가 있어 사건과 관련된 아이들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브레넌 박사는 인간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부스와 티격태격하면서 경직됐던 성격에도 변화가 생긴다. (아마존, 시리즈온, 시즌)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

이미지: CBS

종영했어도 대표적인 인기 시트콤으로 꼽히는 [빅뱅 이론]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괴짜 과학자 레너드와 쉘든이 사는 아파트에 배우 지망생 웨이트리스 페니가 이사 오면서 벌어지는 유쾌한 일상을 그린다. 2019년 시즌 12로 종영할 때까지 인기를 누렸던 비결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캐릭터에 있다. 친구들 중 레너드가 무난한 인물로 보일 만큼 쉘든, 하워드, 라지는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데, 그중에서도 사회성이 제로 수준에 가까운 쉘든의 존재감이 압권이다. 천재적인 수준의 지능(IQ 187)과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대수학, 미적분학, 경제학 등의 학문에 광범위한 지식을 가졌지만, 대인관계에 필요한 것들을 이론으로만 접해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서툴며 유아적인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자신의 우월함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데다 결벽증과 강박증도 있어 웃음의 핵심을 담당한다. 쉘든 캐릭터의 인기 덕분에 스핀오프 [영 쉘든]을 제작 방영 중이다. (넷플릭스, 왓챠, 시리즈온, 시즌, 카카오페이지)

영 포프(The Young Pope)

이미지: Sky Atlantic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호화롭고 예술적인 영상미가 단번에 시선을 잡는 드라마다. 그 중심엔 잘생긴 젊은 교황으로 분한 주드 로가 있다. 그가 연기한 비오 13세, 레니 벨라르도는 40대의 젊은 나이에 종신직인 교황직에 선출된 인물이나 성직자가 갖는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자애롭고 겸허한 모습을 기대하자니, 양심이 죄를 묻지 않기에 고해성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오만하고 독선적인 모습이 먼저 눈에 띈다. 게다가 꼭두각시가 되길 원했던 최연소 교황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자 탐탁지 않게 여기는 바티칸의 보수적인 성직자들보다 더 권위적이며 계산적이다. [영 포프]는 흠잡을 데 없이 비범하고 완벽하지만 독불장군 같은 비오 13세가 바티칸에 불러온 파문을 허를 찌르는 유머와 함께 담아낸다. (왓챠, 시즌, 시리즈온)

크리미널 마인드(Criminal Minds)

이미지: CBS

올해 초 종영한 [크리미널 마인드]는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각종 난해한 사건을 풀어가는 수사물이다. 범죄자의 심리를 꿰뚫는다는 설정으로 인기를 끌어 오랜 기간 방영했는데, 드라마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캐릭터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중 인기 캐릭터 스펜서 리드는 천재성과 대비되는 부족한 사회성으로 흥미를 유발했다. 비상한 두뇌 덕분에 일찌감치 수학, 화학, 공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학위를 취득하고, 분당 2만 단어를 독해하는 엄청난 기억력과 집중력을 가진 고스펙의 소유자. 반면 사교성은 부족해 분위기 파악이 한발 늦고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고집스럽고 친해지기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 심성은 선해 BAU 팀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간다. (왓챠, 웨이브, 시즌, 시리즈온, 카카오페이지)

하우스(House)

이미지: FOX

프린스턴 대학병원의 괴팍한 천재 의사 그레고리 하우스가 다른 병원에서 진단하지 못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이야기다. 정확히는 병명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기존의 의학 드라마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환자들의 사연과 의사들의 헌신을 통해 인간적인 감정을 끌어낸다면, [하우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고집스러운 인물이 셜록 뺨치는 추리력과 해박한 의학 지식으로 질병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다. 그레고리 하우스는 비상한 실력을 가졌으나 성격은 울퉁불퉁한 천재적인 인물의 전형이다. 신랄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배려가 부족해 동료든 환자든 잡음이 비일비재하다. 한마디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인물. 게다가 만성적인 다리 통증으로 진통제에 의존하면서 괴팍한 성격이 심해진다. 결코 호감 가는 성격은 아니나 의사인지 탐정인지 헷갈리는 탁월한 실력으로 질병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왓챠, 웨이브, 시리즈온, 카카오페이지)

트루 디텍티브(True Detective)

이미지: HBO

명작 수사물로 꼽히는 [트루 디텍티브] 시즌 1은 1995년과 2012년이라는 17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잔혹한 연쇄살인마를 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는 판이한 성격을 가진 두 형사 마틴 하트와 러스틴 콜이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과거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현재를 교차하며 어둡고 혼란스러운 세계로 끌어들인다. 당시 TV 시리즈로는 드물게 주로 영화 작업만을 하던 우디 해럴슨과 매튜 맥커너히가 출연해 노련한 연기로 몰입감을 더해줬는데,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유들유들한 성격의 마틴 하트와 대비되는 매튜 맥커너히의 러스틴 콜이 많은 사람들을 매료했다. 수사관으로서 능력은 무척 뛰어나지만, 딸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겪은 후 지독한 고독과 염세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혀 동료들도 상대하기 불편한 인물이다. 그나마 마틴과 수사를 했던 1995년은 성격은 까다롭긴 해도 멀끔해 보였지만, 2012년에는 거의 노숙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버려 충격을 안긴다. (왓챠, 시즌)

엄브렐러 아카데미(The Umbrella Academy)

이미지: 넷플릭스

얼마 전 시즌 3이 제작이 확정된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억만장자에 입양된 초능력자들이 지구 종말 위기를 막으려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녀들에게 엄격했던 하그리브스경 때문일까, 저마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남매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는데, 열세 살에 시공간 이동 능력을 과시하려다 종말이 닥친 미래에 40년 넘게 갇혔던 파이브가 유난하다. 오랜 시간 미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커미션에서 활약했던 그는 실질적인 나이는 58세지만, 이동 과정에서 계산 오류로 사라지기 전인 13살의 몸으로 돌아와 그사이 훌쩍 자란 남매들과 부조화를 이룬다. 단순히 겉보기만 다른 게 아니라 성격도 남다르다. 건방지고 자존심이 강해 가족들을 어리석고 열등하게 여기고 비꼬기 일쑤며(특히 루서, 디에고, 클라우스), 사생활에도 대체로 무심하다. 애정을 갖고 대하는 가족은 바냐가 유일하다. 하지만 까칠하고 반사회적인 성격에도 가족에 대한 애정은 끔찍해서 종말을 막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