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권나연

이미지: 디즈니 플러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사태 영향으로 2020년은 2010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영화가 개봉하지 않은 해가 되었다. MCU 팬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줄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완다비전(WandaVision)]이 2021년 1월 우리에게 찾아올 예정이다.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를 주인공으로 집중 조명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예고편부터 수상하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사망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돌아오지 않았던 비전(폴 베타니)이 어째서인지 멀쩡하게 살아서 등장하는 데다, 평화로운 교외의 전원풍 일상 속에 이질적인 글리치 효과가 나오는가 하면, 어떤 강제력을 이겨내고 힘겹게 S.O.S.를 보내는 듯한 이웃들의 대사까지 섬뜩하기 그지없다. 총 6부작으로 기획된 [완다비전]은 대체 어떤 드라마일까?

작품 공개를 2주 앞둔 지금, 아직까지 베일에 싸인 작품의 귀추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원작 코믹스를 읽어보는 것이다. [완다비전]이 뿌리를 두고 있는 책은 두 가지로 알려졌다. 하나는 2005년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가 쓰고 올리비에 코이펠이 그린 『하우스 오브 엠』이고, 또 하나는 2015년 톰 킹이 쓰고 가브리엘 에르난데스 왈타가 그린 『비전』이다.

이미지: 시공사

『 하우스 오브 엠』은 쌍둥이 아이들을 잃은 슬픔에 정신이 무너진 완다가 초월적인 위력의 마법을 부려 전 세계가 뒤바뀌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수 인종으로 박대 받던 뮤턴트가 이제는 세계를 지배하고, ‘사피엔’으로 불리는 보통의 인류가 소수자가 되어 천대받는 세상으로 변한 것이다. 인위적인 마법이 세상을 바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웅들은 힘을 모아 막시모프 가문에 반기를 든다. 뒤따른 폭력 사태에 충격을 받은 완다는 비뚤어진 시각으로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이 뮤턴트들에게 기인하고 있음을 천명하며 현실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한편, 극히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뮤턴트의 초능력을 제거해버린다. “뮤턴트는 이제 그만” 완다의 단 세 마디에 뮤턴트는 멸종 직전의 위기에 처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요소로 세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는 완다의 정신질환적 특징이다. 엘리자베스 올슨은 작년 뉴욕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스칼렛 위치가 마블 코믹스에서 정신질환을 대표하는 캐릭터였으며, 그에 대한 오명을 감당해내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음을 짚어냈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엠파이어를 통해 역대 MCU 영화를 통틀어 누구보다도 가장 큰 트라우마를 겪은 캐릭터로 완다 막시모프를 지목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은 비극적인 사건이 완다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중요하게 묘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쌍둥이 아이들의 존재다. 원작에서 완다는 인조인간 비전과의 아이를 간절히 원한 나머지 마법을 사용해 쌍둥이 아들 빌리와 토미를 임신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악마 메피스토의 조각난 영혼에서 기인했음이 밝혀지고, 그가 죽음에서 부활해 아이들의 영혼을 흡수함에 따라 아이들 역시 죽어 없어지게 된다. 이후 빌리와 토미의 영혼은 메피스토를 파괴한 뒤에 환생하고 각각 별개의 가정에서 태어나 슈퍼히어로 팀 ‘영 어벤저스’의 핵심 멤버가 된다. [완다비전]의 예고편과 티저 이미지에 완다와 비전 두 사람이 갓난아이 둘을 안고 있는 모습이 보여 영 어벤저스 팬들은 부푼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셋째는 뮤턴트 종족의 사활이라는 테마다. 완다와 피에트로 막시모프(에런 테일러 존슨)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하이드라의 인체 실험을 거친 강화인간(enhanced)으로 설명되었는데, 최근 출간된 MCU 영화와 연결고리를 갖는 책인 『와칸다 파일: 어벤저스와 그 이상에 대한 기술적 탐구서』에서 다른 가능성이 비쳤다. 이 책에는 하이드라의 수장 스트러커 남작(토마스 크레치만)이 직접 쓴 메모로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인체 실험 자원자인 그들에게 실험이 잘 통하게 만들어주는 적합한 유전 표지를 지니고 있다.” 완다와 피에트로가 유전적인 초인의 특질을 가진 뮤턴트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디즈니가 21세기폭스를 인수하면서 엑스맨의 영상화 판권을 회수한 이상, 『하우스 오브 엠』을 원작으로 하는 [완다비전]이 MCU 속 뮤턴트의 등장을 알리는 효시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미지: 시공사

『비전』은 세계를 37번이나 구한 어벤저 비전이 직접 만든 인조인간 가족과 함께 워싱턴 DC 근교의 한적한 마을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다룬다. 완벽한 가족이라는 환상은 너무나도 빨리 깨지고, “비전이 어벤저스를 몰살할 것이다”라는 자기실현적 예언과 함께 이야기는 파국에 치닫는다. 비전은 작중 시점에서 완다와 헤어진 지 오래되었으며, 완다에게 선물 받은 뇌파 자료에 기반해 아내 버지니아를 만들어낸다. 버지니아의 결함은 무의식 속 남아있는 완다의 기억 파편에 유래했고 암세포처럼 가족 전체로 퍼져 나간다. ‘한적한 교외의 평화로운 일상 속 불길하고 음습한 비밀들’은 『비전』을 대표하는 묘사다. [완다비전]의 가장 중요한 시각적 테마인 ‘시대별 시트콤’에 영향을 줬음에 틀림없다. 폴 베타니는 인버스와 인터뷰에서 “비전은 인간이 된다는 것과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을 고민하는 인조인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비전의 캐릭터가 완다의 정신적 불안과 함께하면 극에 또 하나의 엔진을 더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뷰 출처① 엘리자베스 올슨 ‘뉴욕 타임즈’
인터뷰 출처② 케빈 파이기 ‘엠파이어’
인터뷰 출처③ 폴 베타니 ‘인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