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유향

이미지: 큐브 엔터테인먼트

오는 11일, (여자)아이들의 미니앨범 4집 “I Burn”이 발매된다.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8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여자)아이들의 비주얼 필름을 게시했고, 다음 날에는 컴백 앨범명을 공개했다. 2018년 5월에 데뷔하고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여자)아이들이 이번에는 어떤 컨셉과 방향성으로 돌아올지 주목된다. 특히 그룹의 리더 소연이 타이틀곡은 물론 수록곡까지 작곡, 작사하며 그들만의 음악 정체성을 만들어가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그룹 방향성에 어떤 기여를 할지 기대가 된다. 매번 강렬한 테마와 음악, 비주얼을 선사하는 (여자)아이들의 역대 뮤직비디오와 무대, 그리고 음악을 살피며 곧 다가올 컴백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가져본다.

소연의 손끝에서 쓰이는 맹렬하고 펑키한 멜로디

이미지: 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연은 작곡에 있어 스스로에게 제한을 두지 않는다. 데뷔 후 첫 앨범의 타이틀곡인 뭄바톤의 “LATATA”는 하우스와 레게가 혼합된 장르를, “Senorita”는 라틴팝을, “Oh My God”은 어반 힙합의 장르를 선보이며 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어반 힙합이나 하우스는 이전에도 케이팝이 애용하는 장르지만, 뭄바톤과 레게로 타이틀곡을 흥행시킨 것은 (여자)아이들이 독보적이다. 특히 지난 8월에 나온 트로피컬한 멜로디가 섞인 뭄바톤 장르의 “덤디덤디”는 여름을 강타하는 강렬한 비트와 웅장한 베이스로 계절감까지 챙기며 소연의 음악적 감각을 한 번 더 입증했다.

노래 가사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 첫 디지털 싱글인 “한(一)”은 사랑 노래라고 단정 짓기 어려울 만큼 깊은 서사를 그려낸다. “널 잊으리라 / 저리 가 오지 마 돌아보지도 말아 / 널 지우리라 / 저리 가 오지 마 돌아보지도 말아”라고 최면을 걸며, (여자)아이들의 곡 중 날카롭고도 애처로운 태도를 유지한다. ‘한’이라는 한국적인 소재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가사 속 짙게 깔린 상처와 아픔을 드러낸다.

(여자)아이들의 컨셉, 그들만의 수식어

이미지: 큐브 엔터테인먼트

‘한’이 맺힌 여인의 복수심, 거부와 혼란을 겪으며 자신을 의심하고 신뢰하게 된 “Oh My God,” 왕관을 위해 맞서 싸우는 “LION,” 상큼하기보단 후덥지근한 여름의 “덤디덤디”까지. (여자)아이들은 기존 걸그룹의 프레임워크인 섹시, 큐트, 청순 등의 일차원적인 컨셉을 부수고 그들만의 서사를 창조한다. 가끔은 이국적이고 가끔은 신화적인 컨셉과 함께 케이팝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룹 정체성이 확고한 “Oh My God”의 가사를 인용하자면, (여자)아이들은 “미친 듯이 아름답고 다시 보니 악마 같고, 이성을 쏙 빼놓고 제멋대로 들어오고(지), 불꽃처럼 강렬하고 데일 만큼 사랑한다(하고)”. 그들은 사랑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래하지만 절대 같은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며, 노래의 대상도 매번 달라진다.

그러면서도 멤버들 개개인의 개성과 색깔은 항상 뚜렷하다.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지향하며 같은 컨셉을 놓고도 멤버들은 각자 자기만의 해석을 선보인다. 이것이 제일 잘 보이는 분야는 보컬인데, 전에 한 인터뷰에서 소연은 색깔이 없고 획일화된 보컬 레슨보다는 멤버별 강점을 살려줄 선생님을 찾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소연과 (여자)아이들의 독창성에 대한 열정은 민니의 몽환적인 발성과 우기의 중저음, 그룹의 보편적이지 않은 보컬 스타일에도 한몫한다.

(여자)아이들과 큐브 엔터테인먼트가 지향하는 예술세계

이미지: 큐브 엔터테인먼트

그룹과 회사 모두가 글로벌을 지향한다. 2019년 7월부터는 일본 앨범을, 2020년 5월부터는 영어 버전 앨범을 발매하고 전 세계에 있는 팬들에게 다가갔다. 기존에 있던 “LATATA”와 “Oh My God”을 가사만 번역해 발매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글로벌한 컨셉과 음악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더불어 강렬함과 파워, (여자)아이들만이 끌어모을 수 있는 서사성과 열정은 언어의 벽을 넘어서도 전해진다. 태국 멤버인 민니와 중국 출신의 우기 슈화가 있는 (여자)아이들은 해외 활동에도 천천히 시동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측에서 기획한 가상 케이팝 그룹의 K/DA에 소연과 미연이 참여해 국제적인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자)아이들의 안무는 가사에 충실하고 중독적이라 해외 팬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에서 열풍을 일으키기에 최적화되었다.

무엇보다 (여자)아이들은 평면적인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여러 겹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타이틀곡뿐만 아니라 수록곡에서도 드러나는데, 음악의 깊은 스토리성이 탄탄하고 임팩트 있는 강렬함의 비결로 볼 수 있겠다.

현재로 돌아와 (여자)아이들이 얼마 전 공개한 53초가량의 비주얼 필름을 보면, 멤버들의 고혹적인 눈빛에 초점이 맞춰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역시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며 영상에 사용된 트랙은 가볍지 않은 멜로디와 베이스를 선사해 벌써부터 노래의 중독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계절감도 반영하는 (여자)아이들은 어쩌면 추운 새해에 걸맞게 성숙하고 벨벳처럼 고급스러운 앨범을 들고 오지 않을까. 특히 몽환적인 컨셉임을 암시하는 영상의 “Will vanish,” 또는 “we’ll vanish”라고 속삭이는 멤버의 목소리 덕분에 (여자)아이들의 새 앨범에 기대감이 고조된다.

에디터 김유향: 화려하고 불안정한 가능성으로 도배된 케이팝을 쫓습니다.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자리잡은 아이돌들의 다양한 세계관과 판타지를 흥미로워하며 사소한 것에 의미부여하기가 취미이자 특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