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유난히 눈 소식이 잦고, 매서운 추위가 엄습해 안 그래도 움츠러든 일상을 더 꽁꽁 얼어붙게 했다. 우리만 폭설과 한파로 고생한 게 아니다. 스페인은 50년 만에 기록적인 눈 폭탄이 쏟아졌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도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이처럼 지구 곳곳에서 겨울의 맹렬한 기세를 실감하고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어땠을까? [겨울왕국], [샤이닝], [이터널 선샤인] 등 겨울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듯이 추운 계절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드라마도 있다. 그중 ‘겨울 시즌’을 주 무대로 하는 TV 시리즈 8편을 소개한다.

설국열차(Snowpiercer, 2020- )

이미지: 넷플릭스

종말이 닥쳐 얼어붙은 지구, 모든 생명이 꺼진 대륙을 쉼 없이 달리는 기차는 살아남은 이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 그래픽 노블에 기반을 둔 [설국열차]는 기상이변으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의 이야기를 스릴러 형식으로 담아낸다. 호화롭고 안락한 1등칸부터 오직 생존만을 위한 열악하기 짝이 없는 꼬리칸까지, 철저히 계급화된 기차 안 세상은 창밖으로 잠시나마 스쳐도 꽁꽁 얼어붙는 혹독한 날씨와 다를 바 없다. [설국열차]는 빙하기로 돌아간 지구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자원 고갈, 난민, 빈부격차, 계층 갈등과 같은 오늘날의 사회적 이슈를 무시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로 풀어낸다. 오는 1월 26일, 숀 빈이 새롭게 합류한 시즌 2가 공개된다. (넷플릭스)

파고(Fargo, 2014- )

이미지: FX

코엔 형제 감독의 동명 영화에 영감을 받아 앤솔로지 형태의 네 시즌이 제작된 블랙 코미디 성격이 짙은 범죄 드라마다. 매 시즌마다 사소한 우연이 겹치거나 우발적인 사건이 화근이 되어 일파만파 번져가는 파국을 예측불허의 전개로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연쇄적인 불운의 발단이 된 평범한 이들은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건과 연루된 범죄자들과 이를 추적하는 수사관들을 상대하고,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부조리한 상황이 황당하면서도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코엔 형제 감독의 영화에서 봤듯이 폭설이 내리는 겨울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차가운 계절감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빚어내는 희비극을 무심하게 감싸며 시리즈만의 독특한 개성을 공고히 한다. (웨이브)

더 테러(The Terror, 2018- )

이미지: AMC

[더 테러] 시즌 1은 댄 시먼즈의 동명 팩션을 드라마로 옮긴 작품이다. 1845년, 북서항로 개척을 위해 북극으로 향했다가 실종된 영국 해군 탐사선 이리버스호와 테러호가 그 주인공이다. 영국 해군이면서 탐험가로 명성을 얻은 존 프랭클린과 이리버스호 대신, 두 번째 함선 테러호와 이를 이끈 크로지어 함장을 중심에 내세우고, 혹한의 날씨에 좌초된 탐험대원들의 악몽 같은 이야기를 펼친다.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추위는 안이하고 자만했던 이들을 고립시키고 절망적인 무력감을 안기며, 원주민 신화 속의 괴물은 끝 모를 공포감을 조성한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 존재를 실감할 수 있는데, 눈보라가 거칠게 휘몰아치는 살인적인 추위를 생생하게 묘사해 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아마존)

헬릭스(Helix, 2014-2015)

이미지: SyFy

고립된 공간에 퍼지는 바이러스만큼 위험한 게 있을까. [헬릭스]는 북극의 첨단 연구시설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하자 그곳에 파견된 CDC 소속 전문가들이 인류에 미칠 재앙을 막으려는 고군분투를 그린다. 과학자와 용병으로 구성된 그룹은 감염되면 검은 피를 토하며 죽거나 폭력적으로 돌변해 인간을 공격하고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하지만, 외부와 단절하고 활동 영역을 제한하는 극지방의 혹독한 환경과 그들 사이에 감도는 불신과 의혹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시즌 2는 서늘한 고립감을 조성했던 북극을 떠나 열대 섬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여러 시점을 오가며 진행한다. (웨이브, 티빙)

트랩트(Trapped, 2015-)

이미지: 넷플릭스

올해 세 번째 시즌이 공개될 예정인 [트랩트]는 차갑고 황량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수사물이다. 경찰서장을 포함해 경찰이라고는 달랑 세 명인 한적한 항구 마을에 신체가 절단된 시신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가 주 이야기다. 내용만으로는 얼핏 다른 수사물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아이슬란드’하면 떠오르는 추운 날씨와 척박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남다른 인상을 남긴다. 보기만 해도 버겁고 무력해지는 거센 눈 폭풍과 지독한 날씨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트랩트]의 매력이다. 다소 느릿한 전개에도 수사관들이 악천후를 뚫고 비밀스럽고 비협조적인 사람들을 상대하며 마주하는 상황들은 강한 몰입감과 긴장감을 조성하고, 폭설로 고립된 풍경은 묘한 신비감을 더한다. 시즌 2에서는 아쉽게도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볼 수 없었는데, 시즌 3에서는 다시 거센 눈발이 휘날리는 서늘함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넷플릭스)

카디널(Cardinal, 2017-2020)

이미지: CTV

캐나다 CTV에서 제작한 [카디널]은 작가 자일스 블런트의 범죄 소설 시리즈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한적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고집스러운 집념을 가진 형사 존 카디널과 믿음직한 파트너 리스 델롬이 시즌마다 잔혹한 사건을 수사하는 이야기다. [카디널] 역시 눈으로 뒤덮인 겨울 풍경이 스산한 적막감을 조성하며 수수께끼의 사건으로 끌어들인다. 복잡한 개인사로 고통받는 주인공, 느릿한 호흡, 서늘한 계절감은 북유럽에서 건너온 노르딕 누아르를 닮았다. 시즌 2~3는 겨울을 벗어나 녹음이 우거진 울창한 숲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며, 마지막 시즌 4는 다시 차가운 계절로 돌아와 혹독한 날씨가 끔찍한 범죄와 연결되는 내용을 담아낸다. (왓챠, 웨이브, 티빙)

스핀 아웃(Spinning Out, 2020)

이미지: 넷플릭스

대표적인 겨울 스포츠인 ‘스케이팅’을 주요 이야기로 삼은 드라마다. 피겨 스케이팅이 인생의 전부였던 캣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방황하던 중 페어 스케이팅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얻고 재기를 꿈꾸는 과정을 주변 인물과의 복잡다단한 관계와 함께 그려낸다. 흥미로운 소재를 살리지 못한 진부한 스토리는 아쉽지만,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페어 스케이팅 퍼포먼스는 근사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실제 캐나다 피겨 선수들이 배우들의 배역을 맡아 완성도를 높였다고 한다. 또한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휴양지가 배경이라 올겨울 집콕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 (넷플릭스)

대시 & 릴리(Dash & Lily, 2020-)

이미지: 넷플릭스

앞서 소개한 작품들과 달리 [대시 & 릴리]는 겨울의 낭만적인 정서를 듬뿍 담은 하이틴 로맨스다. 손발이 시린 동장군이 싫은 사람에게도 포근한 이미지로 다가가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배경으로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간질간질한 두 청춘의 만남을 그린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의 로망인 대도시 뉴욕의 랜드마크가 곳곳에 등장해 그곳을 방문한 이들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하이틴 로맨스 특유의 아기자기한 설정과 아날로그 감성이 어우러져 대시와 릴리의 겨울은 따뜻하기만 한데, 유독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좋겠다.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