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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출두요! 이 말 한마디에 짜릿하고 후련한 통쾌함이 가득하다. 꾸준히 시청률 상승세를 기록 중인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이하 ‘암행어사’)]은 이 시원한 외침으로 익숙한 암행어사가 주인공이다. 조선시대에 왕의 특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에 파견돼 불법행위를 단속했던 제도에 모티브를 얻어 부패한 탐관오리에 맞서는 청춘들의 우여곡절 여정을 그린다. 이미 많은 작품에서 소개된 암행어사란 캐릭터 자체는 새롭지 않으나 김명수, 권나라, 이이경 등 젊은 배우들을 포진해 사극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부각하며 차별화를 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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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의 가장 큰 매력은 친숙한 소재, 친근한 이야기다. 부당한 권력을 고발하는 암행어사 제도는 그 자체로 권선징악을 상징한다. 드라마는 자연스레 백성을 곤궁에 빠뜨리는 악을 심판하고, 선과 정의가 승리하는 구조를 취한다. 기시감을 부인하기 힘드나 익숙한 구조라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그보다는 부패한 세력과 맞서 싸우는데서 오는 쾌감이 만족감을 안긴다. 게다가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요즘 작품들과 달리 뚜렷하게 메시지로 직진해 시청이 편안하고 피로감이 덜하다.

여기에 사연 있는 청춘들의 성장 서사를 더해 극을 보다 풍부하게 이끈다. 등 떠밀리듯 암행어사가 된 성이겸은 장원급제로 궐에 입성한 인재였으나 이복동생에게 사랑했던 연인을 빼앗기고 방탕한 생활에 빠졌고, 홍다인은 아버지 휘영군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다모가 됐다. 서로 다른 이유로 무기력하고 좌절했던 두 청춘은 암행어사단으로 함께하면서 백성의 어려운 삶을 목격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고자 고군분투한다. 이들의 변화와 각성은 히어로의 성장 서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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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친숙한 재료를 배합하는 방식은 장점을 무색하게 할 만큼 헐겁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사극을 지향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야기 구조는 도식적이고, 캐릭터들은 밋밋하다. 드라마는 어사단이 잠입하는 각 암행지에서 권력가들의 만행을 알아차리고 이를 해결해가는 방식을 취해 처음부터 시청하지 않아도 중간 유입이 용이하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가벼운 톤으로 풀어내 부담도 덜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편의적으로 흘러가고, 그나마도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된다. 매번 사건들은 어사단의 어설픈 행동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위기가 고조되는 타이밍에 극적으로 해결된다. 이 과정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치밀함이나 긴장감은 찾을 수 없다.

서사가 단순하고 식상하게 느껴지는 데는 일차원적인 대립 구도도 한몫한다.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암행어사]의 인물들은 대체로 선과 악이 뚜렷한 이분법적인 모습을 취한다. 어사단이 마주하는 마을의 수령과 양반들은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권력층의 전형이며, 조정에서 도승지 장태승을 견제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는 영의정 김병근 부자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선과 악의 구도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양면적인 캐릭터들이 시선을 끄는 요즘 추세와 비교하면 드라마 속 인물들은 올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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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극의 중심에 있는 어사단의 캐릭터들이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몸과 마음이 엇갈렸던 이겸, 다인, 춘삼이 여러 고비를 겪으면서 함께 성장하고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지만, 캐릭터들을 뻔한 방식으로 조형해 입체적인 매력을 찾기 힘들다. 미적지근한 관료생활을 했던 이겸의 성장과 그를 난봉꾼으로 여겼던 다인의 태도 변화는 충분한 설득력 없이 뻔한 수순으로 단조롭게 그려진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로맨스도 일종의 공식처럼 진행돼 유치하고 생뚱맞은 분위기를 연출하곤 한다. 이겸의 몸종 춘삼은 기능적인 감초 캐릭터 역할에 그친다. 결국 각 인물들이 저마다의 장점으로 합심해 위기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감정에 치우치거나 안이한 행동으로 또 다른 화를 부르고 결정적인 순간에 운 좋게 해결되는 모양새다. 서사가 단순해도 캐릭터들이 톡톡 튀는 개성이 있고, 그에 부합하는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면 잔재미를 선사하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을 텐데, 어쩐지 [암행어사]의 인물들은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느슨하게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암행어사]가 꾸준히 시청자를 불러 모으는 이유는 요즘처럼 답답한 시기에 악을 응징하는 어사단의 활약이라는 명쾌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적인 배경을 빌려왔을 뿐 가상의 인물들로 이야기를 전개해 왜곡 논란에서 자유롭기도 하다. 하지만 채 영글지 못한 캐릭터와 심심할 정도로 단순한 전개 방식은 아무래도 아쉽다. 좀 더 디테일에 신경 쓰고, 어사단의 매력을 골고루 부각했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