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참 다양한 생각이 드는 시기다.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뭘 했지?’라며 후회하고 씁쓸하다가도, 또 어느새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되니 말이다. 연말연시 복잡미묘한 감정에 휩싸인 이들에게 뻔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가 찾아왔다. 바로 홍지영 감독의 [새해전야]다.

[새해전야]는 새해를 일주일 앞두고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있는 네 커플, 아홉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옴니버스 영화다. 이들의 고민은 특별한 게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직접 겪고 있는 일상적인 문제들이다. 그렇기에 극중 인물들과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고, 또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내 일인 것처럼 기쁨과 감동도 밀려온다.

이미지: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강력계 형사 지호(김강우)는 민원실로 좌천된 이후, 이혼을 앞둔 남편으로부터 신변보호를 요청한 재활 트레이너 효영(유인나)을 만난다. ‘이혼’이라는 공통점을 가졌기에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점 가까워지지만, 지호는 자신의 과거 때문에 새로운 인연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진아(이연희)는 비정규직으로 지내며 하루하루가 불안하던 중, 6년이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했던 남자친구의 이별통보를 받고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린다. 힘겨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재헌(유연석) 역시 몇 해 전, 한국에서의 삶에 지쳐 아르헨티나로 넘어와 와인 배달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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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 대표 용찬(이동휘)은 중국인 여자친구 야오린(천두링)과 결혼을 앞두고 결혼자금을 모두 빼앗기는 사기를 당한다. 설상가상 한국지사로 발령받은 야오린과 행복할 줄 알았던 삶은 예상치 못한 문화 장벽에 흔들리고, 용찬의 누나 용미(엄혜란)는 홀로 애지중지 키운 남동생의 국제결혼에 심란하기만 하다.

스노보드 패럴림픽 국가대표 래환(유태오)은 원예사 오월(최수영)과 오랜 기간 연애 중이다. 좋은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던 래환은 고생하는 오월을 위해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맺지만, 자신의 생각과 달리 오월이 원한 게 단순히 ‘주는 대로 돌려받는’ 연애가 아니라는 사실에 당황한다. 뜻하지 않게 대중의 왜곡된 시선과 마주하게 된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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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매력은 앞서 소개했다시피 ‘공감’에 있다. 사랑과 이별, 번아웃 증후군, 세상의 편견 등 누구든지 마주할 법한 현실적인 문제와 고민들을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이끌어낸다는 점은 곧 여러 관객들에게 소위 ‘통한다’는 의미와 같다. 여기에 김강우와 유인나, 유연석, 이연희, 이동휘, 천두링, 염혜란, 유태오와 최수영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이 작품이 단순히 영화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아르헨티나의 이국적인 풍경 또한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과수 폭포, 오벨리스크 등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뿐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 골목 곳곳에 숨어있는 매력적인 장소들을 탐방하는 듯한 느낌은 시국으로 인해 여행에 나서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상당한 대리만족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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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스토리가 익숙하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러브액츄얼리], [뉴욕 아이러브유] 등 기존의 옴니버스식 로맨스 영화에서 숱하게 본 것만 같은 전개는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보편적인 고민들을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다룬 건 분명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방식이지만 114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아홉 명의 이야기를 다루려니 갈등과 해결이 가볍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도 있다. 차라리 한 커플이라도 메인으로 삼아서 깊이 있게 다뤘다면 어땠을까 한다.

그럼에도 [새해전야]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역시 영화의 따뜻함 때문이다. 극중 진아의 대사처럼, 현재가 인생의 비수기라 느끼는 이들에게 “아니야, 지금은 그저 한숨 돌리는 시에스타일 뿐이야”라며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야 말로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